사람들은 각자의 언어로 말한다

26년 2월 회고

by 꽃비내린

아쉬탕가 요가

새해 목표로 러닝 외에 다른 운동을 찾아보기로 했는데 배드민턴 대신 아쉬탕가 요가를 택했다. 배드민턴은 반드시 둘 이상 있어야만 가능한 운동이다. 나중에 수업을 그만두더라도 지속하기 쉽지 않다. 더구나 아침에 운동 후 출근하는 루틴으로 하기엔 장소가 회사와 반대 방향이라 포기했다. 요가에 대해선 편견이 있었다. 예전에 필라테스를 하면서 지루하고 크게 도움 된다는 느낌을 못 받았던지라 요가도 필라테스와 비슷한 결이겠거니 했다. 하지만 회사 가까운 운동시설에 유일하게 빈자리가 난 수업이니 일단 한 달만 듣고 보자 했다.


아쉬탕가 요가를 몇 번 해보면서 필라테스와는 전혀 다른 매력 있는 운동이란 걸 알게 됐다. 모든 동작은 유연성을 요구한다. 오랜 시간 굳어진 몸이 따라잡기엔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팔, 다리, 허리, 머리 모든 부위를 늘리고 나면 몸이 한 결 가벼워진 기분이 들었다. 최대한 동작을 유지하는 데 온 신경을 쓰면 모든 잡념이 비워진다. 요가를 하고 난 뒤에 출근하면 기분 좋게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3월부터는 러닝과 병행하면서 요가를 꾸준히 해보려 한다. 수족냉증인 분들에게는 특히 추천한다. 온몸에 열감이 오르면서 혈액순환이 잘 된다.


경험은 상대적인 것

한 달에 한 번 지인 만나기 프로젝트는 2월에도 계속되었다. 이번에 만난 K님은 평소 브런치글을 자주 보고 있던 작가님이자 나와 같은 PM 직무로 커리어를 이어가고 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일을 시작했어서 K님의 글에서 드러나는 고민들이 공감도 되고 내적친밀감도 있었다. 링크드인 DM으로 커피챗을 요청드리니 흔쾌히 받아주셨다. (앗싸!) 식사 장소는 라이브 바인 건 알고 있었지만 자리에 앉자마자 공연이 시작해서 30분 내내 인사만 하고 대화는 못하는 난감한 상황이 벌어졌다. 하하. 그래도 어느 정도 공연이 마무리되고 자연스럽게 요즘 커리어 고민에 대해 얘기하게 됐다.


1월에 대학 동문 모임을 다녀왔다. 내가 있던 자리에 HR 관련 업계분들이 많아서 채용과 이직 관련 얘기를 주로 했었다. 주위의 살벌한 업계 얘기를 듣고 나니 스스로 너무 온실 속에서만 살았나 싶은 걱정이 들었다. 이직을 했을 때 잘 적응할 수 있을지 고민이 깊어졌다. K님이 마침 이직을 고민 중인 시기였어서 내가 느꼈던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었다. K님은 여러 곳에 면접을 보면서 느낀 건 경험의 가치는 상대적이라는 점이었다. "같은 회사 사람인데도 1차 면접에선 좋다고 했던 경험이, 2차 면접에선 별로라고 하더라고요." 누군가에겐 긍정적인 경험이 어떤 사람에겐 시큰둥한 경험이라는 걸 알면 면접의 운은 어쩌면 자신의 경험에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냐 없냐에 따라 갈리는 걸지도 모른다. 그러니 내 일에 대해 낮출 필요가 없다고. 그 말을 들으면서 아직 벌어지지 않은 일에 성급하게 움츠리지 말자고 생각했다.


정서적 허기

연휴에 묵호 여행을 떠났다. 묵호의 어느 책방에서 책방주인이 추천한 '마음예보' 책이 마음에 들어 서울로 돌아와 하루 만에 완독 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해결하고 싶은 문제를 발견했다. 바로 현대 사회의 고질병인 '정서적 허기'다. 자존감과 관련한 에세이와 심리학 대중서적이 인기를 얻으면서 자존감은 '상처받지 않기 위해 관계를 끊어내는 행동의 명분'이 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자존감은 자신을 지키고 타인을 멀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타인과의 관계를 부드럽게 만드는 원동력이라 말한다.


사람은 본디 사랑에 대한 욕구가 있다. 이는 타인과의 깊은 관계 속에서 충족된다. 코로나 시기 이후로 비대면 방식이 익숙해졌다. 집에만 있어도 배달로 음식을 시켜 먹고, 생활필수품을 배송받고, 유튜브나 SNS 속에서 경험을 대신 느낀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사람들 간의 접촉은 줄어든다. 우리는 관계에 대한 피로에서 벗어났지만 마음이 허하고 답답하다. 나는 긴 연휴나 주말이면 유달리 공허함이 크게 느껴지곤 했다. 카페로, 바다로, 숲으로 향했던 건 이 허기를 달래려고 했던 거구나. 공허함의 실체를 알고 나자 마음이 편해졌다.


정서적 허기는 개인의 문제에만 그치지 않는다. 정서적 허기로 인해 사람들은 중독에 취약해지고 질병에 걸리기 쉬워지고 사회적인 범죄로까지 이어진다. AI 기술발달이 더욱 사람들을 외롭게 만드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 나를 대신해 AI끼리 소통하고 모든 일이 처리된다는 근미래상을 접하면 섬뜩해진다. 나는 외로운 시대에 다시 사람들 간의 연결을 회복하는 일을 하고 싶다. 정서적 허기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돕고 싶다. 다시 심리학을 제대로 공부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과거에 나는 연구하고 싶은 일이 생길 때 대학원에 가겠다고 다짐했었다. 지금이 대학원에 가야 될 시점이지 않을까. 대학원 준비에 대해 알음알음 알아보고 있는데 다음 회고에선 방향이 정해지면 좋겠다.


위기를 기회로

지지난주 주말에 앱스토어에서 앱이 곧 삭제될 예정이라는 통보를 받았다. 사내에선 말 그대로 비상이 걸렸다. 진행하던 프로젝트는 모두 중단하고 앱 삭제 이슈를 대응하는데 집중했다. 더군다나 소명 기한이 설연휴가 끼어있어 일주일 내에 제품의 핵심 경험을 전면 개편해야 했다. 계획했던 일이 어그러지고 월 매출 목표 달성에 지장이 생기자 잠시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 먹었다. 앱이 삭제될 위기가 있었지만 극복한다면 누구나 쉽게 겪지 못할 경험을 해낸 것이다.


또 그동안 주요 비즈니스 모델이란 이유로 핵심 경험을 건드리기 어려웠다면 이번 문제를 기회삼아 새로운 경험을 유저에게 보여줄 수 있게 된다. 많은 걸 변경해야 했지만 심사 통과라는 목표에서 당장 필요하지 않은 것들은 과감히 제외했다. 팀원들도 이 상황에 스트레스를 받기보다 문제 해결에 모두 몰두했었기 때문에 불가능해 보였던 개발 일정도 모두 시간 내 끝낼 수 있었다. 아직은 현재진행형이지만 해결할 거라 믿는다.


사람들은 각자의 언어로 말한다

앱스토어 삭제 이슈를 대응하던 시기에 데일리 싱크업에서 분위기가 날카로웠던 일이 있었다. 백엔드개발자가 "이런 문제가 있을 것 같은데 괜찮냐"라고 물었다. 나는 그 문제가 유저에게 미칠 영향을 고려해 이렇게 해보자고 답했다. 예상과 다르게 개발자는 "이거 시간 내에 못해요"라고 말하는 거다. "괜찮냐고 묻길래 해결책을 내놓았더니 갑자기 안된다고 말하면 왜 물은 거야?" 순간적으로 이런 생각이 미치면서 예민하게 받아들였다. 싱크업이 찜찜하게 마무리된 후에 왜 그렇게 예민했을까 고민했다. 혼자서는 막막해서 제미나이 도움을 빌려 인지심리 관점에서 생각의 뿌리를 찾아봤다.


첫째는 불안감이었다. 우선순위를 잘 정하는 게 PM의 몫인데 시간이 촉박한 상황에서 드문 케이스를 진행하는 게 맞냐는 것, 성급히 해결책으로 결론 내리면서 우선순위를 제대로 못 정하는 모습이 튀어나온 게 부끄러워서 였다. 둘째는 비효율성에 대한 불만이었다. 개발자가 해결책을 묻는 거라 생각해서 답을 줬는데 알고 보니 해결책을 묻는 게 아니라 이런 상황이 있다는 걸 알려주려고 했다는 거였다. '처음부터 의도를 제대로 얘기했으면 이런 논쟁에 시간을 쓰지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 짜증이 났던 것 같다. 나는 슬랙 채널에서 나의 불안감과 효율성을 중시하는 마음에 이렇게 되었다고 팀에 그 상황을 만든 거에 사과를 했고 앞으로는 의도를 먼저 묻고 답하겠다고 말했다. 개발자분도 자기도 예민하게 굴었다고 하며 의도가 오인되지 않게 얘기하겠다고 말하면서 화해했다.


이 사랑 통역 되나요? 드라마에서 세상의 언어는 세상에 있는 사람들 수만큼 있다고 말한다. 이번 일을 계기로 그 의미를 되새겼다. 타인을 이해하려면 나의 언어를 이해해야 한다. 나는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나는 어떤 방식으로 소통하는가. 그래야 다른 사람의 언어는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나의 경우 문제해결과 효율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었다. 은연중에 다른 사람도 내 관점에 맞춰줄 것을 기대했다. 그래서 상대의 의도와 다르게 이해하고 중요한 가치가 흔들릴 때 감정적으로 올라온 것이다. 백엔드 개발자는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다. 해결하지 못했다는 말 대신 이런 문제를 당장 해결하긴 어렵다는 말로 돌려 말한 것이다. 이번 경험을 계기로 무의식에 있던 관점을 의식 위로 끄집어내어 살펴볼 수 있었다. 앞으로 또 이런 감정적으로 올라오는 상황이 오면 어떤 관점이 무의식에서 올라왔는지 살펴보면서 조금씩 나의 언어를 그리고 타인의 언어를 해석해보려 한다.


좋은 조직 문화 만들기

작은 스타트업에선 HR 담당자가 없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누가 나서서 챙기지 않으면 변하지 않는다. 1월 리더십 회의에서 조직 문화와 관련해 다양한 의견을 냈다. 조직 문화의 중요성에 대해 공감대를 얻기 위해 조직문화 관련 책으로 북스터디를 진행했다. 조직 문화에 가지고 있는 생각이 너무나 달랐다는 걸 알게 됐고 이를 어떻게 하나의 원칙으로 수렴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단계다. 앱스토어 삭제 이슈로 미뤄졌지만.. 이 이슈가 해결되고 나면 두 번째 스터디에서 우리의 인재상에 대해 사례 중심으로 논의해보려고 한다.


지금 회사는 그동안 신규 입사자가 적었다가 작년부터 채용이 활발해졌다. 그래서 입사자에 대한 배려가 상대적으로 부족했다. 신규 입사자분들이 공통으로 얘기했던 아쉬운 점 중 하나가 다른 부서 사람들과 친해지기 어렵다는 거였다. 입사 후에 누가 챙겨주진 않았어서 소외된 기분이었다는 얘기도 들려왔다. 그래서 매달마다 랜덤런치를 진행해 다른 부서와 친해지는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물론 내가 제안한 건이라 시범 운영도 내가 진행했다. 하하. 시범운영이고 회사차원에서 진행하는 건 아니어서 자율로 참여를 요청했는데 반응이 좋아서 3월에 신규 인턴들이 들어오는 김에 추가로 진행해보려 한다. 어느 정도 정착되면 자동화해보기로.


마지막으로 경영지원 담당자 한 분이 격무에 시달리는 문제를 해결했다. 사내규칙은 노션에 잘 정리되어 있지만 일일이 찾아보기 어렵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 문제가 있어 경영지원팀에 문의가 몰렸다. AI로 이 문제를 해결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건의는 했지만 나서는 사람은 없어서 하면 안 되는 이유만 찾는 상황이었다. 필요한 사람이 해야지. 그래서 클로드 코드와 3시간 동안 씨름하며 노션 내 문서를 로컬에 저장하고 슬랙에서 멘션 하면 프롬프트 기반으로 답변하는 형태의 봇을 만들었다. 구현한 결과물을 들고 오니 회의적이었던 대표도 바로 사용하고 개선해 볼 점을 얘기했고, 보안 문제로 바이브 코딩을 멀리했던 CTO도 클로드 코드를 여기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쓴다고 말하며 설치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역시 결과물을 보여주는 게 설득하기 쉽구나 싶었다.

AI를 좀 더 사내에 전파할 수 있도록 클로드 코드 스터디에도 참여했다. 이번 주부터 매주 한 번씩 모여 공부한 결과를 토론할 예정인데 4월까지 열심히 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