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고 있단 말이 위로가 되지 않는 이유

자신에게 한없이 실망하는 완벽주의자에게

by 꽃비내린

어린 시절 나는 쉬는 시간에 소설을 펼치기 바빴던 학생이었다. 수업시간에 선생님의 말씀을 듣다가 꼬리에 꼬리를 물어 딴생각에 빠지기 일쑤였던 그런 아이 말이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인가, 어느 순간부터 수업이 끝나면 책을 펼치는 대신 직전 수업을 복습하기 시작했다. 중간 수준의 성적은 상위권으로 올라서 상위권 학생들만 모아 방과 후 자습하는 반에 들어갔다. 성적이 좋을수록 주위의 시선이 달라졌다. 선생님들도 공부를 잘하는 학생에게 부드러웠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강박이 생긴 것 같다. 실패는 곧 자신에 대한 형벌로 이어졌다.


취업준비가 길어질 때, 회사에서 부끄러운 실수를 했을 때 나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렸다. 속에 담고 또 담다가 친구들을 만나면 눈물을 쏟아내기 바빴다. 그러고 나면 친구들은 항상 내게 이렇게 말했다. 지금 너 잘하고 있다고. 친구들이 건넨 위로는 잠시나마 불안했던 마음을 진정시켰지만 어쩐지 그 말이 와닿진 않았던 것 같다.


작년 말에 친구에게 무언갈 시작할지 말지 고민하고 있다는 얘기를 했다. 해봤는데 뜨뜻미지근할까 걱정돼. 친구는 그런 내게 말했다. "만약 했는데 결과가 안 좋으면 1월에 밥 먹자고 연락해. 같이 먹어줄게."


그 한 마디에 나는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그동안 받았던 위로보다 훨씬 와닿았다. 무엇이 달랐을까. 완벽주의자는 자신의 완벽한 모습이 세상에 인정받기 위한 필수 조건으로 인지한다. 하지만 완벽주의의 이상향은 언제나 현실보다 멀리 있어 스스로 낮춰 생각한다. 그러니 누군가가 아무리 잘하고 있다고 해도, 마음속으론 '네가 나를 잘 몰라서 그래, 난 너무 부족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완벽주의자에게 정말 필요한 위로는 "네가 설령 부족하더라도 곁에 있어줄게"라는 말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잘하고 있다는 말보다 밥 한 끼 같이 먹자는 말이 좋다. 완벽주의로 한없이 실망하는 이들에게 위로의 한 끼를 함께 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