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른다고 말할 줄 아는 용기
이사를 온 지 며칠 지나지 않았을 무렵 나는 저녁을 간단히 때우려고 근처 김밥집에 들렀다. 매장엔 카운터 대신 키오스크 두 대가 서 있었고 오른편에 주문이 나오면 받아갈 테이크아웃존이 있었다. 주문을 마치고 휴대폰을 보며 기다리던 중에 누군가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저기요, 저희 좀 도와주세요."
목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돌아보니 중년부부가 난감해하는 표정으로 서 있었다. 키오스크를 잘 다루지 못하셔서 주문을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사실을 창피해하거나 혹은 모르는 사람에게 묻는 게 미안한 기색이 없이 해결하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담긴 단호한 말이어서 홀리듯 따랐다.
주문하고 싶은 메뉴를 묻고 결제까지 도와드리고 나자 부부는 고맙습니다 라며 감사해했다. 누군가 당당하게 무얼 못하겠다 도와달라라는 말을 들은 게 처음이어서 그 일이 꽤 인상 깊었다.
최근에 유저와 전화 인터뷰를 했었다. 그는 자신이 별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며 인터뷰에 응했는데 지금까지 한 인터뷰 중에 가장 인사이트가 넘쳤던 분이었다. 이전의 인터뷰와 달랐던 건 제품을 잘 쓰는 유저로서 노하우를 배워가는 느낌으로 질문을 이어갔다는 점이다. 가령, 앱에서 사귄 일본인 친구와 대화를 이어가는데 쓴다는 답을 들었다고 하자. 보통은 그렇군요 하고 넘어갔지만 이전에 일본인과 대화가 끊기는 일이 종종 있어서 어떻게 오래 대화할 수 있냐고 물었다.
인터뷰이는 일본인이 왜 한국인과 대화하고 싶을까 생각해 보면 한국에 대한 호기심이라고 생각했고 한국 풍경 사진을 자주 보낸다거나 대화하다 나온 단어를 한국어로 알려주는 식으로 얘기를 이어갔다고 했다. 여기서 대화를 오래 지속하는 노하우를 제품에 어떻게 녹일 수 있을지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모른다는 말은 마치 이 일의 전문적이지 않아 보일까 쉽게 하기 어렵다. 하지만 내가 다른 사람이 모른다고 도와달라 했을 때 그렇게 느꼈냐 하면 그렇진 않았다. 오히려 잘 알려주려 하기 바빴지 말이다. 모른다는 건 그리 부끄러운 일도 미안한 일도 아닌 것이다.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떡하지 하며 발을 동동 구르는 대신 중년부부처럼 주위 사람에게 당당하게 도움을 구해보자. 혹시 아는가? 다른 이로부터 뜻밖의 기회를 얻을 수 있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