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되는 꿈'을 읽고서
어떤 소설은 일기와 같다. 툭툭 내뱉은 문장들은 독자를 끌어당겨 이건 너의 이야기라고 말한다. 이 책이 바로 그런 이야기다.
어떤 그림에서 나란 사람을 오려 낸 다음 바람이 부는 대로 날려 가도록 내버려 둔 것 같았다. 난데없는 곳에 뚝 떨어진 나는 기억을 잃은 사람처럼 두리번거리며 여기는 어디지, 난 왜 여기 있지, 원래 난 어디에 있었더라, 당황하는 것이다. 나는 늘 어딘가로 가는 도중 같았고, 어디에도 나만의 자리는 없는 것 같았다.
'내가 되는 꿈'에서 태희는 어린 시절에 부모의 별거로 엄마가 있는 곳도 아빠가 있는 곳도 아닌 할머니의 집에서 중학교 시절을 보낸다. 어른들은 아이에게 무정하다. 어른의 사정이라는 이유로 에둘러 넘긴다. 그렇게 남겨진 세계에 아이는 한 자리에 붙들리기보단 어디론가 날아가버릴 것만 같은 기분에 빠지고 만다.
어른이 된 태희가 자존감을 갉아먹는 회사에 참고 견디고, 바람을 핀 남자친구와 헤어지지 못하고, 엉망진창인 상황에 스스로를 몰아놓는 모습은 예전의 나와 닮아있었다. 자신의 불운에 먹혀버린 사람은 자기 파괴적인 행동으로 악순환을 자처한다. 그것이 원래 주어진 삶처럼 다가오는 이를 피하고 아픔을 참는다. 불운의 고리를 끊고 나서 그때를 돌아보면 그 쉬운 고리를 뭐 그리 붙들었나, 고집을 피우며 한 길만 걸었나 싶다. 그리고 여전히 그것을 벗어나지 못한 이들이 눈에 밟힌다.
엄마는 형편없어.
나는 고개를 들지 않고 엄마의 글자가 이어지는 걸 바라봤다.
아빠도 형편없지. 형편없는 우리를 위해서는 뭔가를 할 자신이 없어. 그래서 핑계가 필요해. 지금보다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는 핑계. 네가 핑계가 되어 주면 좋겠어.
우리 시절은 한부모가정이 부끄러운 단어였다. 아빠와 엄마 그리고 아들, 딸이 있는 단란한 가족. 그게 대부분의 가족이 갖춘 모습이었다. '네 엄마가 좋아하시겠다', '엄마는 학부모의 날에 오시니?' 주위 어른이 내게 물으면 흠이라도 될까 엄마가 있는 척 대답하기 바빴다. 거짓말쟁이가 된 나는 나쁜 아이였다.
본심을 드러내는 건 가장 연약한 부위를 내놓는 거라서 무언가를 핑계 삼아 에둘러 표현한다. 어린 태희는 하고 싶은 말을 못 하는 건 어른이어서라는 엄마의 말에 미안하면 그냥 미안하다고 하라고 말한다. '미안하다고 말해 봤자 달라지는 건 없잖아.
그건, 미안하다고 말한 사람이 달라져야지.'
어린 태희는 일찍이 안 것이다. 미안하다면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 게 옳다고.
점점 검어지다가 아침이면 밝아질 하늘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부산으로 가는 길은 무수히 많고 나는 지금 그 길 중 어딘가에 서 있을 뿐이라고. 과정 속에 있으니 아무것도 결정된 건 없다. 나는 내가 되고 있다. 이 길 끝에서 나를 맞이할 사람은 나일 것이다.
앓던 이를 빼듯 어른인 태희는 미뤄둔 숙제들을 하나씩 정리해 간다. 회사를 나오고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이사를 준비한다. 불운 속에 있으면 영원히 그 자리에 머물 것만 같다. 시간이 지난다 해도 해결되진 않는다.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로 일어서야 한다. 무수히 많은 선택지에서 과거의 선택은 현재가 되고, 지금의 선택은 미래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