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파반느를 보고서
영화는 '모든 사랑은 오해다'라는 요한의 나레이션으로 시작한다. 그 사람은 다를 거라는 오해, 영원할 거라는 오해. 그 말처럼 경록의 부모는 함께할 것을 약속하지만 경록의 아버지가 무명에서 벗어나 유명한 탤런트가 되면서 경록과 경록의 어머니를 떠난다. 경록은 텅 빈 모습의 어머니가 죽지 않기를 바라면서도 자기만 보고 살지 말았으면 한다. 자신이 아버지가 남긴 똥 같은 기분이라고 하면서.
이 영화에 중심이 되는 사람들은 하나씩 결핍을 가지고 있다. 어머니의 자살을 경험하고 외로움을 달고 사는 요한, 탤런트 아버지에게 진짜 딸과 가짜 아들로 스스로 낙인찍는 경록, 그리고 못생긴 외모로 어린 시절부터 배척당해 위축하며 사는 미정.
이 영화는 말한다. 사랑은 동정이 아니라고. 사랑은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며 사랑받을 수 있는 주체임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경록과 요한, 미정은 백화점 지하에서 처음 만난다. 이들의 표정에는 감정이 없다. 어딘가 지친듯한 얼굴만이 남아있다. 요한은 경록의 빰을 때리며 말한다. 웃어봐. 울어봐. 경록은 등장인물 중 가장 주체적인 사람이다. 요한처럼 부모에게 버림받은 기억이 있으면서, 미정처럼 타인과 자신을 경계 지었으면서도 관계를 이어가려 한다. 그렇게 세 사람은 서로의 결핍을 채워주는 사이가 된다.
영화는 빛과 어둠을 통해 이들의 심리 상태를 드러낸다. 경록과 미정의 사이가 가까워지는 시기에 어둠에서 환한 빛으로 나아가는 장면을 여러 번 반복한다. 빛은 나아감을 뜻하다. 이들이 데칼코마니처럼 서로를 닮아가는 모습은 재밌다. 미정은 고개를 숙이고 미안하다는 말을 달고 산다. 고개를 들고 당당하게 있어라는 경록의 말에 미정은 굽은 몸을 세우고 자신을 만만하게 보는 이들에 당당하게 맞선다. 반대로 미정은 현대무용이란 꿈을 포기하고 무기력하게 사는 경록에게 멋있는 꿈이라며 도전해라고 말한다. 경록은 재수생활로 다시 도전해 바라던 대학에 합격한다.
요한은 누구인가. 요한은 영화 후반에 원작의 제목인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의 저자임을 알린다. 경록과 미정의 사랑을 지켜보는 제삼자로서 요한은 작가를 대변한다고 생각한다. 요한은 경록에게 가여운 마음으로 시작하지 말라하지만 그의 진심을 알고 나서는 경록과 미정의 매개체가 되어 둘 사이를 이어준다. 요한은 사랑이란 오해라고 반복해서 얘기한다. 은연중에 드러나는 그의 과거의 영향으로 그는 냉소적으로 변했다. 아니 냉소적인 척하면서 웃음이란 가면을 쓰고서 상처를 감추려 든다. 작가는 요한이란 인물을 통해 결핍된 자신을 투영하면서도 경록과 미정 두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에선 따듯함이 느껴진다. 그는 어쩌면 소설 속에서라도 거리 두었던 사랑을 대신 이뤄지길 바랐던 게 아닐까.
영원할 것 같았던 이들의 사이는 경록의 대학생활을 시작으로 멀어진다. 가장 외로울 때 연락할 친구가 없었던 요한은 약물과다복용으로 병원에 실려간다. 가면마저 벗은 그는 더 이상 웃지도 울지도 않는다. 미정은 꿈을 향해 밝은 곳(대학)을 향한 경록의 모습에 자신은 뒤쳐진 듯한 느낌을 받는다. 마지막 만남에 경록에게 처음 만났던 날처럼 존댓말을 하며 '고마웠어요'와 함께 자취를 감춘다.
끝난 듯한 인연도 다시 붙잡는 사람은 경록이다. 경록은 병원에 찾아가 요한을 만난다. 요한이 처음 자신에게 그랬던 것처럼 그의 빰을 때리며 웃어보라고 울어보라고 묻는다. 미정의 거처를 알고 난 후 편지를 보내고 약속 장소에 다시 만난다. 서울로 돌아가기 전 헤어지고 싶지 않다고 외치며 다음을 약속한다. 경록의 죽음 이후 미정과 요한에게 어떤 고통의 시간이 있었을지 모른다. 영화는 그가 죽은 날로부터 5년 뒤를 향하며 두 사람의 모습을 비춘다. 요한이 집필한 책에는 경록과 미정의 결말을 아이슬란드라는 신비롭고 꿈같은 장소에 놓는다.
아이슬란드 촬영을 할 때 두 배우와 감독만 참여했다고 한다. 아이슬란드에서 장면들은 마치 스냅사진처럼 흐릿하면서 순간의 모습들을 이어 붙인 것만 같다. 그래서 더욱 이뤄질 수 없는 결말을 암시하는 듯했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 이후에도 미정과 요한은 살아간다. 사랑은 영원하지 않다. 하지만 사랑하기 전의 자신과 후의 자신은 다르다. 사랑은 무언가를 남긴다. 영화 파반느는 오해로 가득한 사랑임에도, 영원할 수 없음에도 계속 사랑하라고 말한다. 사랑에 대한 철학이자 사랑을 권유하는 영화다.
영화를 보는 내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누군가에게 경록이기도 미정이기도 요한이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세 사람의 이야기는 조각조각 나뉘어 있던 나의 무언가를 맞물려 놓은 느낌이었다. 반듯이 접은 옷을 서랍장에 넣으며 다음에 올 봄날을 기다리는 것처럼 나는 이 영화를 고이 묻어뒀다가 한 번씩 그리워지면 꺼내보려 한다. 사랑을 주저하는 이들을 위해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해야 할 당신에게 이 영화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