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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비내린 Apr 17. 2020

'유발 하라리: 코로나 바이러스 이후의 세계'를 읽고서

파이낸셜 타임스에선 유발 하라리의 칼럼이 무료로 공개됐다. <호모데우스>, <사피엔스>,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등 과거 역사부터 미래 사회까지 그려낸 학자인 만큼 그의 견해가 흥미로웠다. 주요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많은 단기적 위급 대응방식이 일상적이게 될 것이다. 정상적인 상황(Normal time)에서 결정을 내리기까지 몇 년의 시간이 걸렸다. 이제는 그 결정이 단지 몇 시간 내에 내려질 것이다. 이는 아직 성숙하지 않고 심지어 위험할 수 있는 기술들이 서비스에 곧바로 투입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때의 위험이 더 커졌기 때문이다.


> 미국과 유럽은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추적기술을 사용하지 않다가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증가하자마자 추적기술을 사용하는 것으로 방향을 돌렸다. 윤리적, 도덕적 문제를 따지기 전에 기술을 일단 사용하는 방식이 정착될 수 있다.


모든 국가는 거대한 규모의 사회적 실험 대상이 됐다. 모든 사람이 집에서 일을 하고 먼 거리에서만 소통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모든 학교와 대학이 온라인으로 향하면 어떻게 될까?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정부, 기업 그리고 교육당국은 결코 이런 실험을 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다.


위기 속에서 우리는 두 가지 중요한 선택을 마주하게 된다. 하나는 전체주의 감시와 시민 권한 부여 사이의 선택이다. 다른 하나는 국가적 고립주의와 세계적인 연대 사이의 선택이다.


>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기에 완전히 새로운 방식(오프라인이 아닌 온라인, 사회적 거리두기)을 실험대에 올릴 수 있었다. 우리는 새로운 방식과 이전의 방식을 비교해보면서 어느 것이 효율적인지, 적합한지를 따져보게 될 것이며, 새로운 방식으로 완전한 전환 혹은 부분적인 전환이 일어날 수 있다.


전체주의 감시와 시민 권한 부여 사이의 선택


전염병을 멈추기 위해선 모든 인구가 특정 가이드라인을 따를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한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정부가 사람들을 감시해서 규정을 지키지 않는 경우 처벌하는 것이다. 


최근 몇 년 간 정부와 기업은 사람을 추적, 모니터링, 조종하는 고도의 기술을 사용해왔다. 그러나 우리가 조심하지 않으면 전염병은 감시의 역사에 주요한 분기점이 될 수 있다. 그동안 거부되어 온 감시 기술이 국가에서 대량 배포되는 것이 정상적이게 될 뿐만 아니라 심지어 '피부 위'에서 '피부 아래'로의 감시로 극적인 전환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감시 기술이 이전에는 어떤 사이트의 링크를 눌렀는지 보는 것에 그쳤다면, 우리 신체를 감지할 수 있게 되면 어떻게 될까. 감시 기술은 신체 온도, 혈압, 심장박동수 등을 측정하고 우리가 언제 웃고, 울고, 화를 내는지도 감지하게 된다. 생체 인식 데이터를 통해 우리가 우리를 아는 것보다 기술이 우리를 더 잘 알게 된다. 이는 우리 감정을 예측할 뿐만 아니라 특정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는 의미이고 하다.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자 수가 0으로 종식되어도, 일부 데이터에 굶주리는 정부는 생체인식 감지 시스템을 유지하도록 요구할 것이다. 제2의 코로나 바이러스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만약 우리가 프라이버시와 건강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우리는 두말할 것 없이 건강을 선택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선택 방식은 잘못됐다. 우리는 프라이버시와 건강 둘 다 지킬 수 있다.


중앙집권적인 감시와 잔혹한 처벌은 사람들이 가이드라인을 따르도록 하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과학적 사실을 듣고 그 사실이 공적인 권리를 신뢰한다면 시민들은 빅 브라더의 감시 없이도 올바른 일을 선택한다. 


> 생체 데이터 수집에 대한 거부감이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와 같은 전염병으로 인해 줄어든 것 같다. 다만 이런 생체 데이터를 수집함으로써 초래될 수 있는 프라이버시 문제들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있다. 감시가 없어도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가이드를 지키고 올바른 일을 한다면 생체 데이터를 수집할 필요가 없다. 기술을 곧바로 적용하기 전에 시민이 스스로 지킬 수 있는 방법을 논의해야 한다.



국가적 고립주의와 세계적인 연대 사이의 선택


전염병과 그로 인한 경제위기는 세계적인 문제이다. 두 가지 문제는 오직 세계적 연대를 통해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바이러스를 무찌르기 위해선 국가들은 정보를 공유해야 한다. 또한 우리는 의료기기를 생산하고 분배하는데 세계적인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 전염병 확산에 덜 영향을 받은 국가들은 의료진을 상황이 심각한 국가에 보낼 수도 있다. 


안타깝게도 현재 국가들은 이런 일들을 거의 하지 않는다. G7 정상대표들이 비디오 콘퍼런스를 진행했지만 어떤 계획도 만들지 못했다. 그 이전에 세계적인 위기(2008년 경제위기, 2014 에볼라 바이러스)에선 미국이 글로벌 리더의 역할을 맡았다. 그러나 현재 미국 정부는 리더 역할을 하지 않는다. 이는 미국 정부가 인류의 미래보다 미국의 위대함에 더 신경 쓴다는 것을 분명히 나타낸다.


인류는 선택해야 한다. 우리는 불화의 길을 걸을 것인가? 아니면 세계적 연대의 길을 걸을 것인가? 우리가 불화의 길을 선택한다면 위기가 지속될 뿐만 아니라 미래에 심각한 재난을 맞게 될 것이다. 우리가 세계적 연대의 길을 선택한다면 코로나 바이러스를 종식하는 것뿐만 아니라 21세기에 인류를 공격할 미래 전염병과 위기에 대한 승리를 가져올 것이다.


> 국가적 고립이 심화될 것이라는 예견 가운데 유발 하라리가 주장한 '세계적 연대'의 필요성은 그 자체로 의의가 있다. 세계화의 흐름을 멈추긴 쉽지 않다. 이미 우리는 먼 나라의 이슈를 실시간으로 접할 만큼 가까이에 있고 일부 국가를 제외한 대부분 국가의 삶의 양식은 비슷해졌다. 세계를 여행하고, 사람을 만나고, 일을 하고, 사업을 확장하고자 하는 욕구는 쉽게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인류의 미래를 위해선 국가적인 고립주의 대신 세계적인 연대로 위기를 극복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원본 링크: https://www.ft.com/content/19d90308-6858-11ea-a3c9-1fe6fedcca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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