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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비내린 Mar 17. 2020

모자가 도로 한복판에 떨어졌다

꺼낸 지 하루 만에 모자를 다시 빨게 된 썰

이사까지는 아직 한 달 남았지만 그전에 미리 짐을 덜어내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난 주말에 시간을 내어 짐을 정리했다. "가장 버리기 쉬운 건 옷이지." 옷장 안에 넣어둔 박스들을 꺼내어 최근에 손이 덜 갔던 옷들을 꺼냈다. 여름옷을 담은 상자를 열자 텀블벅에서 샀던 벙거지 모자가 있었다.


지난 여름에 잘 쓰고 다닌 기억이 있어 날씨가 따뜻해진 요즘 쓰기 좋을 것 같았다. 대충 버릴 옷을 추려내고 나니 모자를 쓰고 나가고 싶어 졌다. 카페에서 문서 작업을 할 요량으로 노트북과 다이어리 등 잡다한 것들을 백팩에 넣고 밖으로 나왔다.


그날따라 바람이 많이 불어 모자를 쓰기가 불편했다. 벙거지 모자는 챙이 눈을 가리기 때문에 바람이 앞으로 불면 챙이 내려와 얼굴에 자꾸 붙기 때문이다. 나는 모자챙을 손으로 붙들며 카페로 향했다.


가는 길에도 불안했지만 그나마 모자를 잡고 있어서 날아가진 않았다. 문제는 돌아가는 길에 생겼다. 모자가 눈을 계속 가려 살짝만 올렸던 게 화근이었다. 머리둘레와 모자 띠 사이가 느슨해진 틈을 타 바람이 내 모자를 날려버린 것이다.


아무리 모자가 가볍기로 하거니 4차선 도로 한복판에 떨어질 줄 누가 알았을까. 차가 달리는 와중에 내 모자를 집기에는 너무 위험했다. 다행히 차가 지나가면서 조금씩 모자를 건너편으로 옮겨줬다. 바람은 병 주고 약 주듯 모자를 한번 더 날리더니 도보 가까이에 내려놓았다.


나는 혹시나 다시 도로 쪽으로 갈까 발을 동동 구르며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렸다.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뀌자마자 건너편으로 뛰어갔다. 차가 주위에 없는지 확인하고 재빨리 모자를 집어 들었다.


모자를 살펴보니 이미 여러 번 바퀴자국에 눌러 더러워졌다. 잠깐 속상은 했지만, 빨면 새것처럼 다시 쓸 수 있으니까. 하나뿐인 모자를 무사히 가져온 것만으로 만족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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