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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hemian Writer Mar 11. 2024

이소라, '바람이 분다'

세상은 너무도 그대로여서

세상이 너무도 그대로여서


    사랑이 끝났다고 세상까지 멈추진 않았다. 일상의 공전은 여전했다. 그 별일 없음에 나는 다소 감탄했다. 허무함도 몰려왔다. 정말 모든 게 그대로였다. 아침에 일어나서는 여느 때처럼 하루를 시작했다. 그렇게 여느 때처럼 할 일을 하도록 강제하는 세상이었다. 일상의 지리멸렬한 반복이 선물한 축복이기도 했다. 덕분에 사랑의 상실에도 불구하고 몰두하거나 집중할 무언가가 있었다. 그 날 나는 노트북을 켜서 이런저런 공지사항을 확인하고, 강의를 들었으며, 중간중간에 딴짓들로 조금 했다. 해야 할 일들을 마치고는 한강으로 향했다. 아주 익숙한 길을 역시 아주 익숙한 속도로 걸었다. 중간에 야구 결과를 확인하기도 했다. 그렇게 전혀 남다를 것 없는 하루를 보냈다. 작별할 때 참 많은 눈물을 흘렸는데 세상은 그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흘린 눈물의 양이 일상을 정지시킬 만큼은 못 됐나 보다. 많이 울어 탈진에 가깝도록 지친 몸을 제외하고는, 정말 모든 게 똑같은 하루였다.


    사랑이 끝나고 미친 듯이 울고 불며 상실을 애도하는 일은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만 가능한 듯했다. 물론 언젠가의 이별 때는 나 역시 식음을 전폐했던 적이 있었다. 또 어떨 때는 친구 한 명을 불러 폭음을 하기도 했다. 그런 짓들이 다 부질없다는 걸 나이를 먹다 보니 몸으로 느끼게 된 것 같다.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 불가역적인 결정도 세상엔 있는 법이다. 끝이라고 단정 지어진 사랑이 그런 부질없는 행위들로 다시 부활하지는 않는다. 그냥 몸만 해칠 뿐이다. 마음까지 지옥인데 몸마저 아프다면 서러움만 증폭된다는 걸 경험적으로 깨닫게 되었다. 삶은 참 부조리해서, 그렇게 아프고 괴로웠던 일들로, 더 적확히 말해서는 그런 일들에도 죽지 않고 견뎌냈던 지난 경험으로, 다음 비슷한 일을 조금 더 현명히 대할 수 있는 세월의 굳은살을 얻는다. 나이를 먹는다는 게 마냥 나쁘기만 한 건 아니라는 증거다. 그렇다고 이게 성장인지는 모르겠다. 성장의 기저에 존재하는 게 소중한 무언가의 상실과 이별 그리고 그로 인한 아픔이라면 그것 만큼 또 부조리한 진실이 없어 보인다. 굳이 그 따위의 성장을 해야 하나 싶기도 하고.

    한강을 걷고 집에 돌아와 씻고 책상 앞에 앉았다. 그제야 그 날의 '할 일'들에 눌려있던 감정이 조금씩 터져 나왔다. 소주를 한 병 샀다. 혼자서 맥주는 자주 마시는데 홀로 소주를 마시는 건 생전 처음 있는 일이었다. 헤어졌으니까, 이 정도의 처량함은 괜찮겠지. 한 잔 한 잔 소주를 삼켰다. 함께 했던 일들을 돌이켜보았다. 함께 하지 못했던 일들, 그리고 함께 했어야 했던 일들도 같이 떠올렸다. 우린 술을 자주 마셨다. 주종은 다양했다. 거의 모든 데이트의 끝은 술자리였던 기억이다. 참 많이도 서로 잔을 부딪혔다. 항상 기분이 좋은 술자리였다. 그 사람과 나누는 적당한 취기가 좋았다. 술 한 잔을 앞에 두고 같이 나눈 진솔한 이야기들도 생각이 났다. 그 사람이 내 삶에서 아주 큰 질량과 부피였음을 한 번 더 실감했다. 우린 매일 밤 전화를 했다. 하루도 그냥 거르지 않았다. 혼자서 소주를 마시고 있던 그 새벽은 원래 전화를 하고 있어야 할 시각이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감정이 조금 통제와 감당이 안 됐다. 결국 다시 울음이 터졌다. 세상은 분명 그대로였다. 그대로인 세상을 살아야 하는 어쩌면 나는 서글프게도 너무 많은 것들을 참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세상이 너무도 그대로여서, 술을 제법 마신 새벽 다음 날 아침에도 어떻게든 멀쩡해야 했다. 전 날의 눈물은 전 날의 눈물로 묻어둔 채 다시 하루가 시작됐다. 아침을 먹었고, 다시 할 일들을 했고, 역시 저녁에는 한강을 걸었다. 나는 늘 음악을 틀어놓고 지내는 편이다. 그 날 마침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가 랜덤으로 재생됐다. 잠시 해야 할 일들을 미루고 이 노래에 집중했다. 이소라는 '바람이 분다'에서 '세상은 어제와 같고/시간은 흐르고 있고/나만 혼자 이렇게 달라져있다'라고 노래 부른다. 그 가사가 몹시도 마음에 걸렸다. 너무도 어제와 같은 세상. 똑같이 흐르는 시간. 결국 달라진 건 나 자신 하나.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는 주문을 몇 번 되새겼다. 괜찮을 리 없는 일에 애써 괜찮은 척하지 않아도 된다고 스스로를 달랬다. 얼마간의 차분한 애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느꼈다. 하지만 나는 영화나 드라마의 주인공이 아니라서 일상을 정지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이별은, 일상을 셧다운 시킬 만큼의 충분한 명분이 되지는 못한다. 어떻게든 다음 날을 맞이해야 하는 세상. 어떻게든 살아지고 살아내야 하는 삶. 그런 세상이 조금 고맙고도 꽤 많이 원망스러웠다.


    이별을 했음에도 아직 많은 것들을 지우거나 버리지 못했다. 받은 선물과 편지들도, 함께 찍은 사진들도 모두 '제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 있다. 이젠 제 자리가 아닌 '제 자리'다. 그러던 와중에 헤어짐 후 탈퇴해버린 한 서비스로부터 자료 보관기간이 곧 만료된다는 메일을 하나 받았다. 그 자료들이 다 삭제되면, 마치 영화 <이터널 선샤인>에서의 라쿠나사가 그러했듯 그 사람과의 기억도 지워질까 싶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잊힐 일들은 잊히고, 얼마 안 되는 한 줌의 추억과 기억만 남겠지. 그래도 이 사람과의 기억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그저 애틋하다는 걸 위안 삼아야 하는 걸까. 모르겠다. 그 기억들이 마음 안 따뜻한 온기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지만, 그게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니까. 다만 그럴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아무튼 한 사람이 겪은 상실 따위에는 너무도 멀쩡한 이 세상이다. 이제 다시 역시 너무도 멀쩡할 내일을 보낼 준비를 해야지. 그런데 이 모든 게 조금은 애처롭게 느껴지는 새벽이다. 



    2020, 이별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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