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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hemian Writer Mar 13. 2024

권순관, 'A Door'

우리는 그렇게 헤어졌어요

행복을 빌게요


    그럭저럭 꽤나 괜찮은 날이었다. 중간에 비가 잠시 오긴 했지만 다행히 날씨가 그리 춥지도 덥지도 않았다. 지하철을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됐다. 제 시각에 알맞게 도착한 곳엔 사람들 역시 너무 많지 않았다. 골목은 조용했다. 우린 조용한 골목의 한 와인 가게에 자리를 잡았다. 와인 한 병을 앞에 두고 대화를 나눴다. 오고 가는 말들은 다정했다. 그중에는 미소와 웃음도 있었다. 우린 한참을 그렇게 얘기했다. 가게를 나와서 걸은 공원은 비교적 한산했으며 역시 날씨도 적당했다. 발걸음을 맞추려 애를 썼다. 말하자면 너무 괜찮고 애틋한 날이었다. 그리고 그 날, 우린 헤어졌다.


    서로에게 덕담을 건네고 안녕을 빌었다. 앞으로의 길을 축복해주었다. 따뜻한 포옹을 했고 잠시 손을 잡기도 했다. 잡은 손이 따뜻했다. 익숙한 온도였다. 너무 익숙해서 순간 울컥하기도 했다. 손을 잡고 거리를 걸었다. 오고 가는 말들은 역시 참 다정했다. 다정했기에 아픈 언어들이었다. 그중에는 눈물과 훌쩍임, 그리고 머뭇거림도 있었다. 시간이 가는 게 아쉽고 무서웠다. 역까지의 거리가 너무 짧게 느껴졌다. 무심하게도 지하철은 너무도 제 시각에 플랫폼으로 들어왔다. 마지막 포옹을 했다. 그 사람은 내게 머리를 기대고 있었다. 문이 닫히려 할 때가 돼서야 그 사람은 지하철로 들어갔다. 지하철은 역시 너무도 제 시각에 출발했다. 그렇게 우리 이별은 마무리됐다. 


    그 사람을 그렇게 보내고 나 또한 지하철을 탔다. 신촌, 이대, 아현을 차례로 지나쳤다. 지하철이 을지로와 왕십리, 그리고 강변에 이르렀을 땐 조금 울컥하기도 했다. 우리의 추억들이 진하게 묻은 곳들이었다. 열차는 어느새 집 근처 역에 도착했다. 방에 들어왔다. 그 사람과 서로 무사히 잘 들어갔다는 연락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울었다. 가슴을 부여잡고 울었다. 마음 한 구석을 떼어내는 일은 그저 고통이었다. 그 날 서로 마지막 편지를 주고받았었다. 받은 편지를 다시 읽었다. 작은 점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고 꼼꼼히 읽었다. 편지를 붙잡고도 한참 눈물을 쏟아냈다. 마음이 미어졌다. 허무하기도 했다. 소중한 무언가를 잃는 일은 아무리 반복해도 도무지 적응이 안 됐다. 멀쩡할 리 없었고 멀쩡할 수도 없었다.


    참 소중한 사람이었다. 고마웠고, 고맙다. 미안한 기억들도 너무 많다. 권순관의 노래 'A Door'에는 '평범할 수 없는 내게 기대어 눈을 감고 날 바라봐줘서 참 고마워'라는 구절이 있다. 치유되지 못한 과거의 상처와,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 그리고 두려움으로, 나 역시 그리 평범한 사람은 못 되었다. 나의 모남과 가시 돋침에 그 사람의 착하고 예쁜 마음이 상처 입고 찔려 무척 아팠던 날도 있었을 것이다. 그 사람은 내게 의지와 위로가 됐다. 어쩔 때는 이 지리멸렬한 삶의 유일한 희망이기도 했다. 그랬던 사랑이 더 이상 위안이 되지 않아 우리는 헤어지게 되었다. 현실의 계산들은 서글펐다. 그 방정식의 값이 헤어짐이라는 건 너무도 아팠다. 마지막까지도 그 사람은 나를 걱정했고 응원했다. 내게서 멀어지는 것이, 그리고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진심과 소중함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어리석은 스스로에 대한 자책으로 나는 고개를 숙이고 애꿎은 입술만 깨물었다.

    그저 행운 같았던 나의 사람. 그 사람에게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당부들이 참 많다. 밝고 씩씩하게, 또 조금은 철없이 지냈으면 좋겠다. 우리의 시간이 남겨둔 따뜻함만을 간직한 채로 살기를 바란다. 그 온기가 작은 위안과 축복이 되었으면 한다. 눈물도 참 많은 사람인데, 늘 얘기했듯 눈물은 낭비하라고 있는 것이니, 슬프고 아플 때는 그저 마음껏 울기를. 다만 그런 불행한 날이 너무 많지는 않기를 기도한다. 서로의 앞길에 많은 괴로운 일들이 필연적으로 닥쳐올 테다. 그때 휘청거리더라도 무너지지는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런 일들을 요령 있게 잘 피해가기를 바라는 희망도 있다. 어쩌다 서로의 안부를 듣게 된다면, 그게 너무 아프거나 슬프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무엇보다도 건강하고 어떨 때는 행복할 수 있기를. 나는 행복을 하나의 강박적 환상이라 여기는 사람인데, 그 사람과 함께하며 행복의 실존을 증거할 수 있었다. 이젠 그 사람의 행복을 빈다. 내가 없는 그리고 나와는 무관한 행복이겠지만, 그럼에도 행복하기를 바란다. 나의 모든 진심으로. 잔소리를 싫어하던 사람이었으니, 당부는 이쯤에서 그만해야지. 많이 무섭고 두렵겠지만 어떻게든 잘 해낼 거라 믿는다.


    이렇게 우리의 우리로서의 여정은 끝이 났다. 우리 사랑의 기행문은 여기서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 그리 길지는 않았지만, 과분할 정도로 즐겁고 아름다웠으며 어떨 때는 분명 행복하기까지 했다. 덕분에 불행하지 않을 수 있던 날들이었다. 배우기도 많이 배웠다. 나의 죽지 않고 있음에 고마워했던 사람. 내가 살아있음에 안도하고 기뻐했던 사람. 평범하지 못한 나를, 나라는 존재로 사랑해준 사람. 정말 고마웠다. 함께 나눈 시간들, 약속들, 맹세들, 그리고 다짐들에게 모두 슬픈 작별을 고해야 한다. 이별은 너무 많은 것들과의 이별의 시작이다. 언젠가는 같은 꿈을 꾸기도 했던 우리였다. 끝내 이루어지지 않은 그 꿈들이, 결국 꿈으로서만 남은 꿈들이 참 안타깝고 아쉽다. 여기서 끝나버린 우리 사랑을 애도한다. 많이 아릿하고 아프지만 이젠 우리가 쌓아 올린 집의 문을 잠그고 나와야 할 때다. 빈 집이 될 우리의 기억이 너무 모난 폐허가 되지는 않기를 바란다. 쉽게 끝맺을 수 없는 글이 있다. 마침표가 정말 마침표라서 주저하게 되는 문장도 있다. 그럼에도 걸어내야 하는 길이다. 마지막 문장을 애써 적어보며 글을 마친다.


    우리는 이렇게 끝났지만, 내가 가진 가장 최선의 마음으로 당신의 행복을 빌게요.


    언젠가, 헤어짐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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