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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hemian Writer Feb 03. 2023

힘이 없어서 힘을 못 내요

    담배가 몸에 나쁘다는 걸 모르고 흡연을 하는 사람은 없다. 술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흡연과 음주는 여전히 이어진다. 담배가 얼마나 백해무익하며 또 어떤 질병들을 야기할 수 있는지에 대해 실컷 떠들어대는 공익 광고들이 전혀 와닿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최소한 흡연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담배가 '백해무익'하지는 않다. 뭐라도 도움이 되니 피는 것이다. 몸에 나쁘다는 걸 너무도 충분히 잘 인지하고도 그들은 흡연을 한다. 흡연이 이들에게 제공하는 어떤 효용들을 탐구하지 않고 또 무시하고서, 건강에 나쁘니 담배를 끊는 게 좋겠다는 순진한 발상과 이야기는 따라서 그저 공허하고 식상하다. 무의미한 권장이기도 하다. 어쩌면 흡연자들의 심리를 '이해'해보려는 노력들이 전무하다는 느낌이 든다. 물론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의 입장을 온전히 느낄 수 없기에 세상에 완벽한 이해란 존재할 수 없지만, 그 근사치에 도달하려 애쓰는 마음이 모이고 모이면 조금 더 입체적이고도 효과적인 금연 캠페인 정책을 세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몸에 정말 나쁘고 가끔은 주변에도 폐를 끼치는 담배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지 않고 계속 피는 이유를 깊이 고민해야 한다는 의미다.


    예전에 어떤 술집에 가니, 21세기의 새로운 3대 영양소를 소개한다는 배너가 있었다. 선정된 영광의 영양소들은 카페인, 니코틴, 그리고 알코올이었다. 피식했지만, 조금 생각해보니 매일 지쳐가는 일상에 저들만 한 에너지원도 딱히 없다 싶어 아예 일리가 없는 유머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셋에 꽤 많이 기대야 할 만큼 힘든 세상이고, 또 힘든 시대다. 출근길에 시청역에서 내려 회사를 가다 보면, 이런저런 전광판들에서 재생되는 간략한 뉴스들이 눈에 들어올 때가 있다. 입사를 한지 얼마 안 돼서 잘 모르겠지만, 최소한 아직까지는 거기서 긍정적인 소식 같은 건 들어본 적이 없다. 어렵지 않은 시대가 언젠가의 세상에 존재라도 한 적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지금이 최악이야'라는 말은 그 어떤 시대든 분명히 발화됐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대 사회 시민 대부분이 겪어본 적 없는, 징글 혹은 지랄 맞은 질병은 그동안과는 다른 결의 힘듦을 창출하는 중이다. 우린 무기력한 무력함을 확인했고, 그러면서 세상은 조금 더 빡센 곳이 되었다. 모든 것들의 난이도가 한 단계 이상은 높아졌음을 체감한다. 질병 때문에 시작된 사회의 성장통은 아직도 현재 진행 중이다. 뾰족한 답도 마땅히 보이지는 않는다.


    오랜만에 비가 참 많이 내리는 오늘이다. 꽤 많은 비가 내리는 게, 그리고 그 빗줄기들이 만들어내는 빗소리가 조금은 반갑기도 하다. 이 비는 늦은 여름비일까 조금 일찍 찾아온 가을비일까. 의외로 오래 계속되는 비의 하강에, 모든 안 좋은 것들이 쏟아지는 저 비에 함께 쓸려갔으면 하는 마음이 잠시 들었다. 그럴 리가 없음을 빨리 깨달았지만. 생각해보면 올해 날이 아주 많이 더울 때는 별로 오지 않더니, 조금 선선해진 이제야 꽤 자주 세상에 방문하는 빗줄기다. 이렇게 날씨조차 우리의 바람과 기대대로 변하지 않는다. 어디 날씨뿐일까. 사실 생각해보면 우리 뜻과 바람대로 이루어지는 일들이 세상에 얼마나 있을지도 의문이다. 되려, 이것만은 피했으면 하는 일들도 종종 우리의 일상을 태연히 침범한다. 21세기의 새로운 3대 영양소를 꾸준히 찾게 되는 것도 그 맥락에서가 아닐까 싶다. 침범당한 삶의 아수라장에서 한숨을 쉬든지 혹은 현실을 잊든지 할 수 있는 그나마 가성비 괜찮은 방법이 저 세 영양소 외에 마땅히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빡센 현실을 피해 도망갈 곳도 마땅히 없다. 여행이라도 갈 수 있다면 참 좋겠지만, 그럴 수도 없는 상황이니 현실에 계속 발을 붙이고 있어야 한다. 분출구 없이 쌓이기만 하는 갑갑함과 답답함이다.


    모두가 어려운 시대니 함께 힘을 냅시다, 따위의 무책임하고 잔인한 말을 하고 싶지는 않다. 무력한 세상에서의 무기력함을 누가 쉽게 비난할 수 있을까. '힘 내'라는 말은 되려 강박이나 당위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죽을 힘을 짜낸 결과물이 반드시 좋을 거라는 확신도 없이 건네는 '힘 내'는, 조금은 무례하고 사려 깊지 않은 언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의례적인 표현이지만, '힘 내'라는 말에 다소간의 거부감이 느껴지는 이유다. 나는 나조차도 소중히 잘 아끼지 못하는 사람이라, 사회와 공동체 전체의 안녕과 회복을 빌고 그 방안을 모색할 그릇은 절대 아니다. 그저 나 스스로와 주위 몇 안 되는 이들이, 자신들의 간절하고 소중한 것들을 애써 지켜내며 잘 버티기를 바랄 뿐이다. 혼자서의 버팀이 괴로울 땐, 가끔은 21세기 3대 영양소의 도움을 받기도 하면서. 불행과 절망이 행복보다는 무척이나 쉽고 가깝다. 그 부조리가 꽤나 서글픈 세상이다. 버티기 위해 필요한 힘을 낼 힘도 마땅히 없다고 느껴질 때가 종종 있다. 많이 지쳐있는 게 사실이다. 버틸 힘이 부족하니 그저 삶이 어떻게든 버텨지기만을 소망한다. 그 과정에서 너무 소중한 것들을 잃거나 잊지는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유의미할 만큼의 시간이 흘러 훗날 지금의 이 날들을 돌이켜 보았을 때, 그렇게 아등바등 버티면서도 지켜냈어야 했던 것들은 잃지 않고 잘 지켜냈음을 확인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 힘을 낼 힘조차 없는 시대에서, 그래도 조금이나마 힘을 낼 수 있다면 그건 이들을 지키기 위한 힘이기를 바란다. 그게 사랑이든, 일이든, 아니면 아주 손톱 같은 희망이든 무엇이든지 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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