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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이야말로, 내겐 성공의 의미

오랜 질문에 대한 작은 소리의 대답

by 사랑의 천문학

아침에 어떻게든 일어나 무심하게 씻고 집을 나선다. 통근 버스에 오르고 자리를 잡은 뒤 모자란 잠을 청한다. 회사로는 출근을 하는 것이지만, 통근 버스에 탄 내 육체는 이송됨에 가까운 경험을 매일 아침 겪는다. 그러다 새삼스러운 승차감에 눈을 뜬다는 건 회사에 거의 도착했다는 소리다. 온갖 짜증이 내려앉은 얼굴로 사무실로 마저 향하고 자리에 앉는다. 통근버스에서의 소박한 잠결로 부족한 취침량을 채울 수 없다. 불쾌함은 필연이다. 업무 시작도 전에 망해버린 기분을 어떻게 달래야 할까. 아차, 내게는 커피가 있다. 오전 중 유일한 행복이다. 참고로 오후 중 유일한 행복도 커피이기는 하다. 그러니 어쩌면 커피 원두는 행복의 열매다. 너무 많은 카페인 섭취는 건강을 해친다고 한다. 건강을 육체 건강으로만 고려한 몰라도 너무 모르는 소리다. 정신 건강도 건강이다. 강한 정신에 강한 육체가 있다고 했던가. 사실 틀릴 말이긴 할 테지만, 나는 또 다른 소중한 나의 건강을 살린다고 궤변 할 뿐이다. 마시면 좋은 음료에서 마셔야만 하는 액체가 되어버린 커피다. 현대인의 3대 영양소는 니코틴 카페인 그리고 알코올이라고 한다. 셋 모두를 열렬히 애용한 시절이 있었다는 게 참 쓰잘 데 없게 느껴지지만, 그나마의 자랑은 니코틴과의 절연에는 성공했다는 점이다. 담배도 끊었지만 커피와의 이별은 상상조차 어렵다. 카페인에 빚진 아침 기분이 참 많다.


회사 생활이란, 좋게 말하면 돈벌이고 나쁘게 말하면 무척이나 지랄 맞은 돈벌이다. 그러니까 이러나저러나 돈벌이다. 나는 노동을 하고 회사는 내 통장에 달마다 돈을 입금한다. 이렇게만 보면 회사와 난 참으로 담백하고 간단한 전략적 공생관계다. 그런데 회사는 자주 나의 삶을 잠식한다. 돈벌이가 아니라 일상 이상의 삶이 된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유한 책임을 지는 일개 종사자가 회사의 흥망성쇠에 그 정도의 진심일 리 없으며 내가 다른 동료들에 비해 극한의 노력을 쏟아붓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회사는 삶에서 직업 이상의 부피감을 지닌다. 취업 전, 나는 이를 간과했다. 회사가 회사로만 머무를 줄 알았다. 나는 노동을 하고 회사는 입금을 하는 명료하고도 단순한 관계로 삶을 영위할 줄만 알았다. 어리석었다. 최소한 나는 일에 대한 생각이 일 이후에도 드는 사람이다. 근로 시간과는 별개로 회사일에 대한 고민은 이어진다. 작은 약속 하나를 정할 때도 언제나 고려되는 건 다음 날의 출근 여부다. 어디 여행 계획을 짤 때야 말할 것도 없다. 삶은 생각보다 회사일을 중심으로 공전하는 것이었다. 모든 입금에는 책임이 따른다. 지불엔 권리가 있다. 내겐 의무가, 회사엔 권한이 존재하는 배경이다. 어떤 일을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한 적 없는 것에 후회했던 이유다. 회사가 이토록이나 내게 중요한 무게일 것이라면, 나는 조금 더 나 스스로와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었어야 했다. 그러나 그런 멋진 고민을 하기에 나는 당장의 일자리가 시급했다. 합격에 대한 갈급은 삶의 본질적 갈증을 잠시 잊게 했다. 그래서인지, 가끔 목이 마르다.


결국, '이것이 내가 원하던 삶인가?'라는 질문으로의 귀결이다. 답이 없는 질문이다. 원했던 삶이 딱히 없었기 때문이었다. 순간을 모면하고픈 욕구만 가득했다. 상황에 대한 탈출만 시급했을 뿐이었다. 수험생 때는 대학생이 되고 싶었고, 취업을 준비하면서는 회사원이 되고자 했다. 삶에 대한 정말 중요한 고민이 결여됐던 것에 후회는 있지만, 다시 돌아가도 지금의 미련을 달래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종종 간과되는 진실이지만, 상상은 지식의 산물이다. 무엇이 있는지도 모르는 미래를 감히 꿈꾸는 건 불가능하다. 어떤 삶의 유형이 있고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 정말 중요한 게 무엇인지 나는 배우지 못했다. 이 부박한 핑계에는 그리도 중요한 건 스스로 깨우치는 것이라는 모진 비난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좀 알려라도 줬으면 안 되는지 나는 뻔뻔하게도 되려 따져 묻고 싶다. 살면서 알게 모르게 가장 빈번히 주입받은 가치는 '노력'과 '극복'이었다. 둘의 지향점은 '성공'이었다. 그럴 수도 있긴 하다. 어쨌든 사회는 영속돼야 하고, 그래도 무엇이라도 해내는 사람을 한 명이라도 길러내는 게 교육의 중요한 책무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성공'의 의미는 무엇인가. 어떤 요소들이 한 작은 인생을 '성공'이라 정의하는가? 볼품없는 경연 대회에도 채점 기준은 존재한다. 하지만 삶은 어떤 측면에서 어떻게 성공과 실패로 평가될 수 있는가. 여기서 보통 우리의 상상력은 더 이상 확장되지 못하며 가시적인 가치들로 자연스레 생을 채점하기 시작한다. 굳이 변을 하자면, 나도 그래서 그랬다. 실패하고 싶진 않아서, 우선 남들 하는 만큼의 삶은 영위해내고자 기를 쓰고 대학을 가고 더 애를 써서 취업했다.


근데 좀 지친다. 무엇을 위해 어디까지 달려야 하는지가 모두 명확하지 않다. 물론 아직까지 어떤 삶이 내가 살고 싶은 인생인지에 대해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스스로가 게으를 뿐이기도 하다. 그런데 어떤 가치로 좋은 삶을 살 수 있을지 나는 고민할 기회조차 받지 못했다. 우리 시대의 교육이 지나치게 학업적 성과만을 고평가 하는 경쟁적인 구조라는 등의 거창한 비판을 하고 싶지는 않고 내겐 그럴만한 식견도 없다. 그러나 실제적 효용을 구하는 것 이상의 가치를 어릴 때부터 배운 적 있냐면 그것도 아니기는 하다. 그래서 나는 되도록 '낭만적'이고 싶다. 현실의 삶에 태만하겠다는 게 아니라, 그래도 가능하다면 현실 이외의 것들을 보듬는 노력을 가끔은 하겠다는 소리다. 가슴에 아무리 멋진 이상이 있든 삶은 현실에서 정체되지 않아야 한다. 이 실제적 삶은 때론 끔찍한 지옥이고 때론 살만한 지옥이겠지만, 지옥에서 발버둥이라도 치며 이 악물고 이어가야 하는 게 삶이다. 그러나 그뿐만이고 싶지는 않다. 현실이 삶에 너무 큰 부분이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기를 바란다. 그래서 겨우 찾은 발견해낸 '낭만'이었다. 내게 낭만은 비현실은 아니지만, 빗긴 현실이다. 실제의 삶과 완전히 괴리되어 아름다움만을 추구할 능력은 내겐 없다. 나는 한강 야경의 아름다움을 찬미하는 마음보다는 그것이 내려다보이는 고층 아파트의 매매가에 대한 동경이 더 큰 사람이니까. 그래도 나는 내가, 돌아서는 길에 오늘 한강이 참 예뻤다는 말 한마디는 읊조릴 수 있고는 싶다. 현실은 감당해야 할 너무 큰 무언가지만, 그게 꼭 나를 짓누를 필요는 없다. 낭만이 현실을 빗겨간 아름다움일 수 있다.

어떻게든, 낭만하고 싶은 마음.

그러니 여전히 답을 찾지 못한 '원하는 삶'이지만, 답안지를 낼 시각이 임박하여 가장 유력하다 싶은 답이라도 굳이 대충 써넣는 마음으로 저 답 없는 물음에 대한 내 답은 '낭만'이다. 먼 훗날 돌이켜 보았을 때, 이 정도면 꽤나 낭만적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을 정도라면, 별다른 뚜렷한 계획은 없었지만 어떻게든 괜찮게 살아냈던 날들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생각해 보면 한창 취업 준비를 하며 자기소개서를 집필해 댈 때, '낭만을 잃지 않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적은 적 있었다. 물론 그 회사는 보기 좋게 나를 탈락시켰다. 겨우 몇 년 차 안 된 내가 생각해도, 자기소개서부터 낭만 타령하는 신입사원 지원자가 있다면 썩 좋아 보이지는 않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다행히 그 회사 아닌 다른 곳에서 먹고 살 방도는 구할 수 있었다. 비록 아침에 온갖 짜증을 내며 출근을 하지만, 어쨌든 현실을 살아갈 토대는 마련했다. 그러니 이제 비겁하게나마 애매한 낭만이라도 조금씩 찾아보려고 한다. 비현실인 아닌 '현실이 조금 덜한 현실'을 잊지 않으며, 효율과 성과에 대한 지표들이 가득한 세상에서 지표와 무관한 삶을 살아보려 애써 볼 생각이다. 물론 지금이나 훗날이나 나를 가장 들뜯게 하는 지표는 나스닥의 빨간색 퍼센티지일 수도 있겠지만, 그런 순간적인 각성 이상의 본질적 즐거움은 낭만에 있다고 믿는다. 아니, 그래야 한다고 억지로라도 나를 세뇌시키기도 할 테다. 삶이 고작 출근부터 퇴근까지의 시간에 잡아먹힌다면 너무 슬프고 애처롭게만 느껴진다. 게다가 훗날 더 이상 출근을 못하게 되는 나이에 나는 어떤 것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시간은 때론 낭비되고 또 가끔은 헛되이 소비될 수 있다. 하지만 아직은 어리다는 건, 그런 시간 속에서도 생에 중요한 질문을 던질 기회가 많다는 말이기도 하다. 생에 당면한 현실의 과제들은 다른 숙제들을 불러오기만 할 뿐이다. 언제까지 오전과 오후 커피 한 잔 씩이 생의 유이한 행복일 수는 없지 않겠는가. 성실히 현실을 버텨내면서도 삶을 지지할 단단한 기둥을 세우는 일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그 기둥이 내겐 낭만이라는 가치다. 내게 있어서의 성공적인 삶은, 다수의 충분히 낭만적인 날들로 이루어진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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