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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생은 처음이 맞긴 한데

나이가 주는 따스한 선물을 이제는 만끽하며

by 사랑의 천문학

'처음'은, 처음 스무 살이 됐을 때 정도 무렵에는 핑계대기에 참 좋은 단어였다. 오죽하면 양형 요건으로 '초범인지 아닌지'를 따지는 게 있겠는가. 빈번한 실수들에 번번이 '처음'이라는 면죄부를 들이밀었다. 처음은 그럴 수 있다고 혹은 처음이니까 그런 거라고, 이해와 용서를 구하는 게 아주 어렵지는 않았다. 한낱 치기와 서툰 허황이 되려 맞는 옷처럼 느껴졌다. 그 무렵의 내 삶은 당시 어른의 티를 내보겠다고 큰맘 먹고 해 버린 어색한 펌 머리카락처럼 우스운 혈기였을 수도 있겠으나, 그래도 그게 '처음'이라서 납득이 되고 헤아려질 수 있었다. 그래서 '처음'이라는 말이 괜히 좋았다. 정확히는, 좋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김연수 소설가는 "스무 살이 지나면 스물한 살이 오는 게 아니라 스무 살 이후가 된다"는 문장을 쓴 적 있는데, 그런 류의 사고방식이 괴랄하게 작동한 나머지 '다신 오지 않을 이 시절'에 대한 심적 강박이 있었다. 그러니 나는 사실 처음이라 모든 게 자유롭고 가벼웠던 게 아니라, 그렇게 느껴야 한다는 묘한 부담을 느꼈던 것이다. 내게 있어서 대부분의 '처음'들은 꿈과 희망의 화려한 놀이동산보다는 부자 친구의 손에 이끌려 앉은 호텔 라운지 바와 같은 느낌이었다. 이런 곳에 와 본 척도 해야겠고 의연함을 흉내도 내야겠는데, 가진 건 없어 그 와중에 싼 메뉴는 뭐가 있나 훑으며 뭐 이런 분위기가 다 있나 싶은 어색함을, 어쩌면 생의 '처음'이라 부를 대부분을 마주하며 종종 느껴야 했다. <타이타닉> 속 디카프리오가 될 팔자는 아니라 그런 상황에서도 마냥 능글맞거나 능청스러울 수는 없었다.


'처음'은 게다가, 무지의 다른 이름이었다. 견지한 세계관이 넓지도 않고 독서량도 얼마 안 되는 나는 내가 경험한 것들에 대해서만 겨우 상상하고 얘기할 수 있을 뿐이고, 어린 내가 상상으로만 간신히 세었던 슬픔과 고통보다 훨씬 많은 수의 그것들이 삶 여기저기에 존재했다. 세상에 나쁘기만 한 것은 없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죽음과 가까워진다는 것이지만, 그만큼 우리가 경험했던 것들에 둔감할 수 있는 축복도 함께 선사한다. 거듭 반복되는 것들에 힘은 겨워도 무너짐은 덜한 이유이기도 하다. 처음의 경험은 내가 가진 전부고 그건 내 세상과도 등가의 언어다. 소중했던 처음의 상실은 그러니 차라리 세상의 붕괴다. 내진 설계가 잘 된 건축물들이 많은 국가들이 보통 역사적으로 지진이 많았던 게 우연이 아니다. 솔직히 아기 돼지 삼 형제 이야기에서도 위에 두 형제가 진작에 풍비박산 나고 막내만이 겨우 벽돌집을 지어서 살아난 거 아니겠는가. 동화는 삶의 어떤 진실을 가장 단순한 우화로 풀어낸 이야기다. 늑대를 삶을 침범하는 고통과 슬픔 그리고 절망이라고 생각하면, 동종의 그것들에 조금은 둔감할 수 있는 건 어쩌면 나이 듦이 선물하는 유일한 축복일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내게 꽤나 많은 처음들은 괴로웠고, 소중했던 것을 잃고 잃다 어느덧 무엇을 잃어도 상관이 없다거나 잃어버릴 무엇도 남아있지 않은 느낌을 받을 때 다소간의 안도감을 느끼기도 했다. 이번 생은 처음이 맞기는 하다. 그러니 서툴렀고, 애를 먹었으며, 종종 비참했고, 많은 게 막막했다.


그리고 이제는 그랬던 날들을 지나 회사 책상에서 마시는 커피와 집에서 홀짝이는 위스키를 낙으로 삼는 회사원 아저씨가 되었다. 엄밀히 말하면, 가끔 위스키를 살 때 손은 조금 망설여지지만 딱 이 정도까지는 벌지 않냐며 나를 설득하고는 한다. 여전히 처음은 많지만, 그 감정의 결을 따라 올라가면 어딘가 비슷한 처음들이 있어 이전처럼 무너지거나 쓰러지지는 않는다. 세상 많은 것들이 아는 맛이라 버틸 수 있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무언가를 열렬히 찾아 헤맸던 나를 많이 잃었구나 싶기도 하다. 비관도 염세도 아닌 담백한 사실이다. 그때의 나를 잃어서, 조금 편해질 수 있는 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 나를 그대로 간직했다면, 이라는 상상은 오히려 당시의 나를 알고 있던 사람들이 더 많이 하는 것 같다. 그둘 중 많은 이들은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의 '앓았음'을 모른다. 사실 작년 초까지 상담을 받았었다. 몇 개월 꾸준히 받던 상담이었지만 돌연 내가 중단을 요청했다. 조금 더 깊은 단계의 이야기를 시작할 찰나였다. 조심스레 이유를 묻는 상담사에게, 나는 세상에 짐작은 가지만 묻고 갈 것들도 있는 것 같다고 답을 했다. 기어코 나를 괴롭게 한 본질적인 무언가의 천진한 맨얼굴을 확인하는 것이 어느 정도의 소용이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소감을 묻는 상담사에게, '꽤 괜찮은 상담 서비스를 덕분에 받았습니다'라는 매정한 말을 일부러 남긴 건 내가 부릴 수 있는 최대한의 위악이었다. 그로써 다소간의 미련을 끊어내고자 했던 미련스러움이었다. 지금의 삶 자체가 그 상담의 페이지를 덮을 때와 비슷하다. 어떤 측면에서 나를 잃은 게 조금은 아쉽지만, 잃음으로써만 지켜질 수 있는 삶도 분명히 있다. 나는 다만 선택을 했을 뿐이다.


반짝였던 시절도 분명히 있었다. 삶의 반짝임을 모르고 지나가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반짝임이 더욱 찬란할 수 있는 시기에 민감할 수 있던 것도 행운이다. 특히 7개월의 긴 여행을 하며 오로라도 보고, 순례길을 완주하며, 아프리카를 몇 십일 동안 캠핑 여행했던 기억은 가장 나중에 잊고 싶은 순간이기도 하다. 머리보다 마음이 앞서도 됐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는 게 이젠 감사하기만 하다. 그것 역시 '처음'이라 가능했던 무모함이었으니, 정말 세상에 나쁘기만 한 것은 없다. 순례길을 걸으며 그 길을 완주하면 대단한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을 거라는 마음이 있었지만, 마지막에 도달했을 때 내가 느낀 감정이 다른 무엇도 아닌 '다 왔구나'였다. 걸음들이 모여서 이곳까지 왔다는 사실에 대한 간증 이외에 다른 무언가가 떠오르지는 않았다. 아프리카 여행에 대해 사람들이 물을 때도 내게 어디가 가장 좋았냐는 질문을 가장 많이 하지만, 정작 나는 하루하루를 마치고 캠프 사이트에 텐트를 칠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는 말을 하고는 한다. 구식 텐트를 처음에는 도무지 어떻게 설치하는지 몰랐지만, 나도 모르게 어느새 혼자 5분도 안 되어 그 큰 텐트를 완성해버리고는 했고, 그래서 아프리카 여행은 남아공에서 나미비아 등을 거쳐 케냐까지 간 게 아니라 텐트를 처음 쳐서 아주 서툴던 한 청년이 텐트 고수가 되기까지의 기행문이라고 농담하고는 한다. 비단 여행뿐 아니라, 뾰족하고 모났던 시절의 내가 예민하기에 더 풍부하게 느껴서 가능했던 추억들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렇게 잊기 싫은 시절도 있었다는 사실 자체에만 만족할 수 있을 정도로까지는 나이가 원만하게 들었다. 아름다운 시절의 재연보다 중요한 건 저속 망각이 됐다.


그러니 이번 생은 처음이고 영원히 이 생의 매일을 처음 살아내는 사람이겠지만, 이제는 조금 아는 체를 하면서 삶을 대하게 된 것 같다. 물론 세상은 우주만큼 넓어서 내가 겪어보지 못했던 것들이 너무 많을 것이다. 그래서 어떤 처음에는 뛸 듯이 기쁠 테고 어떤 처음에는 세상 모든 것들을 놓아도 괜찮다 싶을 만큼 아린 좌절을 느끼면서 살아갈 테다. 그래도, 죽지는 않았던 일들이 죽지 않을 힘을 준다고 믿는다. 그러니 그런 순간에 너무 들뜨거나 너무 무너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제는 많은 것들에 무감한 나이가 되어, 마치 이번 생이 처음이 아닌 것처럼 살아갈 것도 같은 느낌이다. 어떤 측면에서는 오만이다. 당장 내일 먼 옛날 대공황의 그날 같은 하루가 찾아와 내가 공들여 부어놓은 투자 자금이 모두 날아간다고 생각하면 그저 아찔할 뿐이다. 하지만 그래도 나이가 주는 축복을 이제는 기쁘고도 씁쓸하게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싶다. '처음'이 너무 많던 나이는 내게 정말 이것저것들의 처음을 마구 던져댔고, 어떤 것들엔 환호를 보냈고 어떤 것들로부터는 상처를 입었다. 이제는 정착한 것처럼 보이는, 다소 안온하고 꽤나 지루한 삶의 일상에서, 더 이상의 '처음'은 가급적 피하며 내가 아는 범주의 무언가 들만 담담히 마주하고 싶은 마음이다. 그러다 가끔의 소소한 발견들에 기뻐하기도 하며, 크게 넘어지지 않으며 조금씩 남은 여정을 걷고자 한다. 재치가 쉬지 않았고 권태를 참을 수 없었던 '처음'의 순간이 있음을 마냥 부끄러워하지도 자랑스러워하지도 않은 채로, 지금을 담담히 견디고자 하는 마음이다.


너무 졸작이라 언급조차 민망한 내가 쓴 책이 하나 있다. 아마도 나만 기억하는 <우리가 우리였던 날들을 기억해요>라는 도서다. 장작 구이 용 불지핌으로의 쓰임이 훨씬 더 바람직했을 그 종이들의 헛된 쓸모가 이제 와 애틋하다는 건 아니다. 다만 워낙 읽은 게 없어 인용을 내 글에서 해야 할 뿐이고, 다소 차용하자면 '내가 나였던 날들을 기억한다'다. 말 그대로, 기억하고 기억은 한다. 그때 나는 조금은 지나치게 뾰족했고, 모났고, 섬세했고, 날카로웠던 사람이었다. 그런 내가 이런저런 이들에 마모되고 뭉툭해지고 있다. 진심으로 의탁한 종교는 없지만, 세계의 뒤편 어딘가에는 우리가 잃은 기억과 자신들이 모인 커다란 작별의 무덤이 있다고 믿는다. 매일 조금씩 그곳으로 애도의 무언가를 보내며, 나는 나를 잃고, 나를 지키며, 이번 생을 이제는 덜 처음인 것처럼 살아갈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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