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것도 아닌 순간이지만 그게 쉽게 잊히지는 않을 거란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비가 많이 내리던 얼마 전이 그랬다. 외근을 가는 택시 안이었고, 몸은 고되었고 머리는 복잡했다. 이미 해결한 것들과 그럼에도 해결할 것들이 서로 엉망으로 뒤엉켰다. 여전히 해결하지 못했던 것들과 아랑곳하지 않고 다가오는 마감의 압박도 강하게 느껴졌다. 잠시 세상이 멈추기를 바라기도 했다. 상념에 잠긴 건 아니었으나 생각 자체가 너무 많았다. 생각이 너무 많아, 그렇게 비가 퍼부었음에도 그것을 제대로 인지조차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조금 시간이 흘러 창 밖으로 비가 내리고 있음이 보였다. 비를 보며, 나중의 나는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기억할까,라는 쓸데없는 생각 하나를 가뜩이나 복잡한 머리에 하나 더 보탰고 그러다 놀랐다. 지금이 나중에 어떻게 기억될까에 대해 고민한 적 자체가 생경했다. 현재는 언제나 초라할 뿐이었고 다음은 늘 기약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를 되도 않은 사소한 것들에도 참 열심이었던 열정으로 기억할지 한결같이 마음에 여유 없는 사람으로 기억할지 모르겠으나, 이 순간의 훗날을 상상한 순간이 있었다는 진실의 잔상만큼은 오래 남을 것 같았다. 좋아하는 영화들 중 <꿈의 제인>이 있다.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여기 뉴월드에서 불행한 얼굴로 죽지 말고 만나자는 마지막 장면의 대사가 마음에 오래 남은 작품이었다. 뉴월드가 어디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마도 난 불행하고 피곤한 얼굴로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택시에서의 그 순간을 가끔 떠올리게 될 것 같다.
우린 슬플 것이다. 서글픈 단정이지만 가타부타 없는 진실이기도 하다. 슬픔은 삶에서 가장 유리되기 어려운 감정일지도 모른다. 못생겨 일그러지게 태어나는 우리는 무엇인가를 얻으며 성장하고, 손에 쥔 무언가들을 다시 잃으며 조금 더 어른이 된다. 상실과 더 친해진다는 소리다. 그러니 슬픔은 감정이지만, '슬플 것이다'라는 말은 진실에 기반한 비정한 정언이다. 삶이 행복에 겨워 죽겠다는 사람을 아직 만난 적 없다. 많지 않은 표본이겠지만 그래도 세상살이를 짧게만 한 것도 아니니, 행복만 한 삶은 정말 거의 없는 기적 같은 경우거나 스스로가 행복하다고 믿지 않으면 안 되는 안쓰러운 사람들 두 부류가 아니면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상실이 필연인데 슬픔이 외로울 리 없다. 결국 삶은 얼마나 슬프지 않고 행복만 하는지가 아니라 반드시 찾아오는 슬픔들을 어떻게 대하고 달래는지가 중요한 것이다. 내가 가장 처참하게 실패했던 지점이기도 하다. 슬픔을 수용하고 애도하는 데 나는 한결같이 서툴렀고 지금도 버벅댄다. 슬픔을 마주할 수밖에 없는 게 생인 걸 알지만, 막상 다가오는 슬픔에는 종종 잡아 먹히고는 한다. 슬픔은 생의 앞면에 거대한 벽을 내리고, 지난 과거들을 본의 아니게 악의적으로 불필요하게 미화하거나 일그러뜨린다. 결국 현재보단 찬란해 보이거나 그때의 내가 너무 가엾어지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데, 어쨌든 여기서 더 앞으로 나가지를 못하고 옛날의 옛날들만 재생산하는 비생산에 빠지게 된다. 여기에 너무 익숙했던 내게, 택시에서 훗날의 지금을 떠올린 기억은 분명 낯설고 특별했다.
삶이 왜 또 내게 진심어리게 지랄일까 싶었던 어떤 때, 한 영상에서 자신의 슬럼프를 고백하던 누군가가 '우린 다음 영상에서 만나요'라고 의례적으로 말하는 것에 큰 위로를 받은 적 있었다. <꿈의 제인>에서도 그랬지만, 생각해보면 나는 '다음'이라는 것에 대해 선망과 갈급이 있었던 것 같다.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다음에도 다다음에도 무언가가 지속된다는 것에 위로를 받았다는 건, 어떤 슬픔에도 불구하고 나 자신도 그렇게 무심하게 존재하면 좋겠다는 의식의 발현이지 않았을까. 심보선의 시 '청춘'은 '너무너무 살고 싶어서 그냥 콱 죽어버리고 싶었던 때'라고 이 어려운 시기를 정의한다. 상실이 필연이고 슬픔이 당연한 거지만, 동시에 생존에 대한 욕구 또한 그에 못지않게 강할 수밖에 없다. 아주 어린 나이에, 나는 잠시 엄마가 자리를 비우고 돌아와 펑펑 우는 나를 안았을 때 그 작은 손이 쥘 수 있는 가장 강한 힘으로 엄마의 목덜미를 끌어안았다고 한다. 이만하면 됐다고, 내게는 가능성보다 덜 아픈 게 중요하다고 그렇게 얘기를 해댔지만, 사실은 내일이 당연하기를 바라는 마음 또한 있었던 것 같다. 호흡을 의식하지 않고 멀쩡하게 오늘의 과업을 처리하고 내일을 적당히 걱정하며 지난날들을 조금은 후회하고 조금은 추억하며, 그냥 큰 문제없이 살아보고 싶다는 욕구가 이제 와 보면 있었다.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삶이지만, 지극한 평범함은 비범한 노력을 통해 이룰 수 있으며, 나처럼 어딘가가 고장이 난 사람에게는 더 많은 시간과 정성이 필요했다. 그 과정이 나를 참 아리도록 지치게 만들었고, 때론 세상의 멸망 그게 아니라면 나 자신의 사람짐을 소원하기도 했다.
고통은 죽지 않을 만큼만 주어진다는 말은 죽지 않은 생존자들만의 전유물이다. 죽음이 그리 아득하지 않다는 사실을 위태롭게 알게 된 20대 초반의 경험 이후로, 나는 더욱 비관적으로 변했으며 많은 것들을 있는 힘껏 경멸해 댔다. 고상함을 예찬받는 가치들에 더욱 침을 뱉어댔는데, 그 '숭고하다더라'가 내 작은 생 하나를 지켜주거나 보듬어주지 못함에 환멸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하나의 거대한 사건 이후에 사람이 무언가를 배우고 삶의 다음 페이지로 나아갈 수 있다는 말은 그게 가능했던 사람들이나 할 수 있는 소리였다. 삶의 '제 때'들에 해야 했던 과업들을 해내며 얼핏 인생이 전진하는 것처럼은 보였으나 여전히 난 지난 감정들에 천착하며 그 자리에 고여있고는 했다. 여전히 삶은 폐허였고 새로운 슬픔이 들이닥칠 때마다 애써 지은 방공호는 초라하게 무너졌다. 통계적으로 그 시기가 지나면 조금은 삶을 편하게 대하는 이들이 많다는 건조한 의학적 소견을 들어도, 결국 그 경향성에도 낙오자가 되어버릴 것 같다고 한없이 좌절했던 기억도 있다. 그랬던 내가, 나도 모르게, 이 순간이 어떻게 기억이 될까 떠올렸다. '다음 영상에서 만나요' 혹은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불행한 얼굴로 만나요' 만큼 따뜻한 확실함은 아니었지만, '다음을 꾸려는 볼까' 정도는 되는, 일종의 가능성으로 보였다. 어쩌면 내게 절실했던, 희망이 발아하도록 도울 일말의 발견이었다. 내 앞을 가로막았던 거대한 벽에도 사실 문이 하나 있을지도 모른다는, 그런 희망 말이다.
물론 갈 길은 멀다. 옛사랑 하나 빈 집에 가두고 나오면서도 어떤 시인은 장님처럼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었는데, 적지 않았던 슬픔들을 새로운 슬픔들을 껴안으며 살아야 할 나의 삶이 무조건 더 나을 거라는 보장은 없다. 그래도 영원히 이러진 않겠다는, 비가 많이 퍼붓던 세상의 날씨와는 다르게 내 세계에는 잠시 햇빛이 비춘 느낌이었다. 너무 순간이어서 그게 햇빛이었는지 조차 잘 모르겠으나, 착각 속에서조차 본 적 없던 햇살을 그렇게라도 마주한 게 내겐 소중한 순간이었다. 나는 지겹도록 슬플 것이다. 가진 것도 얼마 없는데 그래서 세상이 앗아가는 것들이 더욱 야박하고 원망스러우며 야속하게 느껴질 테다. 상실은 아프다. 아픈 상황에서의 상실은 더욱 쓰리다. 그 반복이 지난 시간 동안의 내 삶이었다. 앞으로도 가늠할 수 없을 만큼의 슬픔들이 내 삶을 침범할 것이고, 나는 무력하게 슬프고 슬프다 또 슬퍼하며 생의 날들을 한 걸음씩 옮길 것이다. 그게 중요하다. 내 입에서, 슬퍼하며 생을 걸어간다는 말이 나왔다는 점 말이다. 슬픔은 슬픔이지만, 슬픔은 슬픔이고 생은 생이라 생 전체가 슬픔에 잠겨버리지는 않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 나는 나를 달래고, 다친 마음을 보듬고, 슬픔을 애도해야 한다. 너무 오래 그리고 많이 실패해 버려 이젠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행위였는데, 그랬던 나도, 이런 나 따위도, 다시 지극히 평범한 삶의 궤에 재진입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희망을 잠시 느꼈다. 희망은 대단하지만 계기마저 창대할 필요는 없다. 그날의 근무는 여느 때보다 지쳤고 많은 숙제를 지금도 안고 있지만, 택시 안에서의 짧은 기억 하나에 가을의 초입에서 오랜만에 생의 봄의 내음을 맡고 있다.
사실 두렵기도 하다. 슬픔이 무서운 걸 알고 있고, 슬픔을 비껴가거나 이겨내거나 그게 아니면 그 자체로 수용하는 데 모두 실패했던 경험이 있어서, 다른 또 다른 슬픔이 이제야 이 정도라도 괜찮아진 나를 망가뜨리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정말 어떻게든 갖게 된 미약한 가능성마저 생은 앗아갈 수 있을 정도로 매정하고 뻔뻔한 존재라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나는 그래도 삶의 순간들마다 효율을 추구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니,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서 너무 깊게 생각하지는 않으려고 한다. 거기에, 내가 그런 생각을 할 정도의 체력은 생겼으니 그 짧은 순간 '다음'에 대한 기대와 궁금증이 들었던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너무 나 편한 생각이다. 그런데 그토록 지겹도록 슬픈 삶이었는데, 이제야 조금이라도 편하게 생각해보려고 하는 게 너무 크게 양심없는 비약은 아니지 않을까. 슬픔이 성장의 자양분이 된 거란 쓸데없는 논리로 나를 다독이고 싶지는 않다. 슬픔은 어디까지나 슬픔이다 다만 현상 그 자체로만 이해하고자 한다. 이제 나도, 조금은 편하게 삶을 대하게 된 의학적 통계의 나이가 된 거라고. 그 시간 동안의 생존자였기에, 이 나이에 이르렀다고. 버틴 것도 견딘 것도 아니고 이겨낸 건 더더욱 아닌 지난 시간 동안 슬픔을 맞이하고 또 맞이하다 보니 여기에 와서, 그래도 다음 비슷한 걸 궁금도 해보게 되었다고. 그냥 그렇게 되었습니다,라는 결론이 허무할 순 있겠지만, 그래도 살아는 있어서, 겨우 이 정도까지는 도착했다. 꼭 모두의 삶이 휘황찬란하게 멋지게 무언가를 개척해 내는 주인공의 운명일 필요는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