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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립지 않은 시절의 그리운 것들

그때의 내가 많이 혹은 조금 더 자라서

by 사랑의 천문학

아주 어릴 적, 북극에 사는 사람들은 흰색을 층위로 구분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었다. 놀랍지도 그렇다고 너무 진부하지도 않았던 소리였는지 아직도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따분한 하루 언젠가의 순간들에 내겐 아주 많은 이야기들이 쏟아졌을 테고 그럼에도 여지껏 기억 안에 존재한다는 건, 그냥 흘려만 듣기에는 나도 모르게 흥미를 느낀 것이었을 수도 있겠다. 따분한 날들을 매일 살아내는 사람들은 하루하루를 덜 따분한 날과 더 따분한 날로 정의할까. 사람들은 자신이 천착하고 익숙해하는 무언가를 다각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슬픔에 몹시 잠겨 있을 때, 나는 마치 슬픔 세계의 원주민이 된 듯 슬퍼하는 마음들을 개별적인 이름들로 호명하곤 했다. 단순하게 힘든 게 아니라, 슬픔의 질량값이 깊이 느껴졌다. 슬픔이란 감정이 무게와 무관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된 시절이기도 했다. 결국 그 질량이 삶에 얹혀서 생이 버거워지니까. 그래서인지 당연하게도 나는 그 시절이 그리 그립지 않다. 사람이 느낄 수 있는 애상들 중 그리움이야말로 가장 애틋한 감정이라고 생각하는데, 슬픔이 역류하듯 쏟아지던 날들까지 그리워하기는 힘들다. 그렇게 나는 그 시간을, '그 시간'이라고 뭉뚱그려 통칭하고는 한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과거를 애써 어설피 기억하며 생의 서사에 부러 공백을 만들었고, 덕분에 가까스로 하나하나의 순간들이 마음 안에 재연되지는 않게 되었으나 삶의 너무 긴 시간을 어두운 베일로 덮어버린 셈이 되었다. 조금씩 더듬어 그 시절을 살펴볼까 하다가 그만두는 일의 지겨운 반복은 이어지는 중이다.


그래도 그 시절을 되짚어보려는 건, 이제는 꽤나 회복이 됐다는 알량한 오만함에서 기인했거나 지금의 나를 되도록 명징히 파악하고 싶다는 한가로운 탐구심에서 기인한 시도일 테다. 그러나 가장 주된 이유는, 삶의 가장 아름다운 날들도 그 시절 안에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어떤 순간들 때문에 한 시절을 모두 검은색으로만 칠해버렸는데, 이제 다시 그 검은 물감을 떼어내는 바보짓을 할 때도 있다는 소리다. 그 아름다운 순간은 오래 간직하고 싶으나, 아름다운 순간이 그날들의 고통이 없었다면 애초에 불가능했기에 맥락에 대한 탐독이 선행돼야 한다. 한 줄 한 줄 읽어내기 괴로운 그립지 않은 시절이나, 그 시절의 그리운 것들을 제대로 마주하고 싶어 조금씩 용기를 내는 중이다. 다신 오기 어려운 축복 같은 순간은 단연코 긴 시간 동안의 여행이었다. 지금 내게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여행이라 더욱 그렇다. 언젠가 돈은 생기지만 시간이 없다는 어른들의 말이 반은 맞고 반을 틀려서, 이제는 돈도 시간도 모두 없는 보통의 직장인이 되었다. 당시 나는 7개월이라는 시간을 쉬지 않고 여행했는데, 자금 조달의 문제는 둘째 치고라도 그 정도의 시간이 내게 다시 생기면 그것도 그거대로 삶이 무언가 삐걱대고 있다는 소리다. 그렇기에 삶에 별일이 없다는 가정 하에 나는 7개월의 시간을 당분간은 낼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고, 아마도 다시금 그 시간을 낼 수 있을 때 즈음에 나는 더 늙고 지쳐있을 테니, 내겐 그때의 여행이 다시없을 아름다운 날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그 여행이 더욱 특별한 건, 떠남이 절실했던 순간에 떠나버린 여행이었기 때문이었다. 오죽하면 편도 비행기 티켓 하나만 들고 이 나라를 떴을 정도로, 나는 현실과의 물리적 거리가 무척이나 필요했던 사람이었다.


그때의 내 현실은 아무리 좋게 말해도 지옥이었다. 지옥 안에서 살다 보니 지옥 역시 층위를 구분할 수 있게 되어, 나의 지옥은 가끔은 살만한 지옥이었고, 가끔은 살아지는 지옥이었으며, 어떤 때는 굳이 살아야 하나 싶은 지옥이었다. 삶을 영위하는 물리적 공간으로부터 잠시 멀어진다고 생의 상처가 완전히 치유될 수는 없지만, 최소한의 단절은 제공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여 비행기표를 덜컥 구매했다. 여행을 하며 나는 내가 영원히 여행할 수 없고 언젠가 현실로 돌아가야 한다는 걸 한 순간도 잊은 적 없었다. 그러나 여행 중 하루하루 동안에는 여행에만 집중했다. 너무 오래돼 제대로 굴러다니지도 않는 낡은 캐리어를 끌고 다니고 한 손에는 지도 앱으로 길을 찾으며, 나는 오로지 눈앞의 것들에만 궁금해하고 최선을 다했다. 그때 여행에서 나는 많은 걸 보고 먹고 마시며 느꼈겠지만, 가장 그리운 건 나의 눈앞 순간의 것들만 보려고 애썼던 노력이었다. 떠나온 곳이자 돌아가야 할 곳은 지옥이더라도, 일단 나는 그와는 무관한 진공 상태의 어딘가에서 그 순간만을 때론 즐기고 때론 견뎠다. 가장 좋았던 도시도 있고 가장 멋졌던 장소도 있지만, 내게 필요한 건 단순한 재방문이 아니라 그 시절 총체에 대한 음미다. 하지만 생의 장부는 꽤나 엄격하게 차변과 대변을 작성하는 구석이 있어, 좋은 게 있으면 내놓을 무언가도 있어야 한다. 내겐 그게 그 시절의, 정확히 말하자면 여행을 떠나기 전과 후의 아픔과 통증을 상기하는 일이다. 많은 것들이 지금의 나와는 무관한 이유가 되었지만, 그러나 그 슬픔은 문득 떠오르는 현재 진행 중이기에 제대로 다 낫지 않은 상처를 건드리고 떠올리는 게 겁이 난다. 여행은 특별했지만, 그 여행은 특별할 수밖에 없었고, 그게 아리는 지점이다.


나는 그 시절 비슷한 무언가라도 절대 내 인생에서 반복되지 않기를 열렬히 소망한다. 지금껏 버텨온 것처럼 다시 그런 일들이 있어도 이겨낼 수 있지 않겠냐고 하겠지만, 나는 지금도 버텼다기 보다기는 버텨지고 있고 이겨낸 적은 애초에 없으니 정말 자신이 없다. 도피와 크게 다르지 않았던 여행은 내겐 다른 이름의 연명치료였다. 그때 조금 더 살아서, 이후 조금 더 살 수 있었고, 그게 모여 지금의 나에게로 이르게 되었다. 그때 반짝였던 날들은 마음 안에서 여전히 찬란히 빛나고, 이 빛이 결코 바래지 않기를 언제나 깊이 바란다. 이제 내 삶에 윤슬처럼 일렁이는 무언가는 그리 많지 않다. 나쁘지 않은 잔잔함이지만, 그 여행만큼의 아름다운 날들이 더 생산되는 건 어려울 거라는 회의에 문득 서글퍼지기도 한다. 그리 많지 않은 나이지만, 이쯤 되면 삶에서 어떤 것들은 이쯤 까지겠구나 싶은 순간이 있다. 나는 반짝임의 측면에서 나는 가장 밝은 빛을 보았다고 생각하고, 아쉽고 그리우면서도 고마운 마음이다. 삶에 찾아오는 역경들을 뚫고 이겨내며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내는 걸 선호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반짝임은 정말 다시없지 않을까 싶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 여행을 가능하게 했던 그 시절의 아픔과 괴로움도 더 이상은 없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때 내가 아팠던 건 어떻게 보면 어렸기 때문이었다. 어려서 많은 걸 처음 느꼈고, 그럼에도 스스로의 가능성을 스스로 소제해 버리는 법을 몰라 되도 않은 희망을 많이도 가졌기 때문이다. 그 당시보다 조금 더 자란 나는 아무리 귀한 것도 용기 있게 포기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니 아마 덜 아플 것이고, 그래야만 한다. 생이 더 많은 걸 앗아가지 않게 하기 위한 나의 슬픈 고육책이지만, 나는 차라리 이 편이 낫다.


무모하게 떠난 여행에서 하루하루들에만 집중하고 그 순간들만을 아끼던 나는 더 이상 없다. 이젠 너무 많이 무언가를 소중히 여기는 걸 지양하려고 한다. 선택도 가급적이면 합리적으로 하려고 한다. 미련스러운 낭만보다는 할 수 있고 해낼 수 있는 것들을 일부러라도 고르는 중이다. 생의 중요한 무언가 하나를 잃어버린 느낌이 들지만, 그건 사실은 떼어내도 아무런 지장 없는 거추장스러움이라고 여기고 있고, 여기려고 한다. 이직을 할 마음은 딱히 없지만 그래도 가끔 생이 너무 무료할 때 경력 구직 사이트를 방문하고는 하는데, 얼마 전 공고 필터에서 한 직무를 선택 해제했다. 내가 최초 지금의 회사에 들어올 때의 직무자, 어릴 때부터 만약에 커서 돈을 번다면 이 일로 밥벌이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직무였다. 인정하게 된 셈이다. 나는 이 분야에 젬병이다. 세상엔 잘할 수 있는 일과 좋아하는 일이 있다. 선호와 적성의 불일치는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이슈고, 다만 이제 나는 망설임 없이 적성을 택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더 이상 미련스럽게 '그래도'라는 아쉬움을 가지지 않는다. 이렇게 되기까지 나는 꽤나 긴 터널 같은 시간을 지나와야 했으며, 나이가 주는 '안온함'이라는 선물을 그 끝에서 한 줌 받게 되었다. 어릴 적 죽어라 달리기를 해서 겨우 얇은 공책 몇 권을 받고 이게 뭐야,라고 했던 것과 비슷한 초라한 선물이지만, 그래도 그 어린 나이보다는 이 소박함의 가치를 더 잘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런 내가 퍽 나쁘지 않게 느껴진다. 이제는 괴로울 날들이 적어 보여서다. 결코 그리울 리 없는 시간을 지나오며 나는 아프지 않은 날들만을 소원했고, 그게 반쯤이라도 인용은 된 것 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시절의 여행이 내게는 더욱 눈물겹게 감사할 정도로의 축복이다. 나는 시간도 낼 수 없고 돈도 여전히 없지만, 아마도 그 여행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었을 삶의 고됨들을 역시 가급적 느끼지 않는 선택을 할 어른으로 더 늙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나 무모할 정도로의 바보 같음으로 순간을 견디고 반짝임으로 삶을 수놓을 수 있던 때는, 아마 그때가 유일할 것이다. 아마 그때의 이야기들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조금의 용기와 시간이 더 필요할 테다. 아직 나는 그 시간을 거스르고 되짚는 데 두려움이 크다. 다만 통째로 유기해버리고 싶은 그 시간 안에 너무 찬란히 빛을 내는 날들이 있다는 게, 그래서 한 시절 자체를 아예 삭제해버리지는 않을 수 있게 된 것과 오래 기억하고 싶은 추억들이 생겼다는 점은 참 감사할 뿐이다. 이제의 나는 그러지 않을 사람이 되었기에 더욱 그렇다. 아마 이 그립지 않은 시절의 그리운 것들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날, 나는 지난날과 화해하고 그 순간들을 수용하며 그때의 누군가들을 온전히 용서할 수 있을 것이다. 여전히 갈 길이 먼 여정일 테지만, 그 빛나는 여행을 지지대 삼아 한 걸음씩 나아가야지. 그저 '트라우마'로만 치부하기에는, 분명히 여태껏 그리고 앞으로 살면서까지를 포함해도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 거기 있지 않은가. 흰 눈의 층위를 구분할 수 있는 북극 누군가와, 서로 다른 슬픔을 다르게 호명할 수 있던 그 시절의 나처럼, 이젠 내가 그때를 단순히 '그 시절'이 아니라 매일들의 의미로 간직하기 시작할 때다. 아마도 그 정도로는, 건강해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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