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기척 없이 찾아온 불행이 삶을 요란하게 흔들었다. 생각해 보면 불행은 참 험상궂게 생겼었다. 어린 시절 으슥한 골목을 지날 때, "가진 거 줘 봐"라던 못된 청소년들 같았다. 그날들에는 그토록 하찮은 이들에도 쉽게 침을 뱉고 지나가지 못했듯, 별 거 아닐 수도 있는 불행을 대하던 나 역시 속절없었다. 무방비했고, 그래서 무기력했다. 불우와 불행은 달랐다. 분명한 불우한 날들은 없었지만, 그럼에도 생은 불행할 수 있는 것이었다. 너무 괜찮은 날들에도 종종 슬펐다. 그때 마음에 균열이 많이 일어났었다. 메마르고 갈라진 마음들은 폐허였고 그딴 토양에 새로운 희망이 자랄 것 같지 않았다. 불행은 우울을 가속화하고 세계를 부정으로 단정 짓는다. 그러나 매일 발견되는 증거가 슬픔인데 거기서 희열의 반전을 찾아내기도 어려운 법이다. 사고가 협소해지고 슬픔에 침전되는 게 불행의 원인이 아니라 현상 그 자체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버틸 수 있을까 싶었다. 버텨야 하는가 싶었기 때문이었다. 동기가 충당되지 못하는 싸움이었다. 그러니 패배는 당연했다. 우울했던 날들에 가장 많이 느꼈던 열패감은 그렇게 비롯됐다. 그때 내게 필요했던 게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작은 희망의 씨앗을 발견했더라도 나는 그걸 무시하고 짓밟았으니, 사실 뚜렷한 해결책이라는 게 있었을까 싶다. 개인적으로 한 생애는 물론이고, 그 안의 짧은 시절이라도 같잖은 한 두 문장으로 규정짓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그 폭력 안에 얼마나 많은 고민과 감정들이 대충 뭉뚱그려지는지 괴롭기 때문이다. 그러나 굳이 표현하자면, 나는 그 시절로부터 "생존했다."
그러니까 내가 어떻게든 적극적인 삶의 태도를 가지고 긍정의 힘을 믿으며 생을 안간힘으로 버텨낸 결과물이 지금의 나아짐이 아니라는 뜻이다. 나는 그런 적이 없다. 기억 속 나는 긍정에 대한 작은 예찬조차도 있는 힘껏 저주하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토록 열심히도 불행했던 시절을 지나 지금의 조금 편해진 내게 이르게 되었는지, 나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냥 그렇게 되어버렸다. 그냥 그렇게 찾아온 불행이 있었고, 거기서 죽지는 않거나 못했던 내가 살아 버렸으며, 그래서 지금 나는 그래도 내일을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은 되었다. 이 담백한 기술 외 다른 가감은 그 시절을 요약함에 필요하지 않다. 이전에 내가 많이 아팠을 때, 언젠가 그 아픔이 조금 나아지면 다른 이들에게도 위로가 되어주는 글을 쓰는 날이 오면 좋겠다는 누군가의 진심을 들은 적 있었다. 그때는 내가 나아질지 몰랐기에 그 말을 귀 기울여 듣지 않았고, 조금 나아진 지금에는 아무런 방법론을 몰라 여백을 채울 수 없다. 아팠던 사람으로, 그러니 지금 아픈 누군가도 버티다 보면 그중 일부는 운 좋게 조금은 나아진 인생을 10년쯤 후에 마주할 수 있답니다,라는 말을 감히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서글픈 통계에서 우연히 생존자로 분류가 됐을 뿐이다. 겪은 불행에 응당한 행운인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삶은 무언가를 감당하면서 이어져야 하는 거고, 나는 미지의 날들에 대해 그 몫을 수행할 뿐이기 때문이다. 거기서 나는 더 무너질 수도 있을 테니, 이 생존에 대한 평가는 마지막까지 유보돼야 하는 게 맞다. 그래도 가장 최악의 날들로부터는 한 걸음 떨어졌다. 어떻게 그렇게 됐는지도 모르게 말이다.
세상에 낙원은 없다. 낙원에도 낙원은 없을 테다. 불행과 슬픔이라는 감정 자체가 세상에서 소거되지 않는 이상, 누군가는 여전히 불행하고 슬플 테다. 그 누군가가 존재하는 한, 세상을 낙원이라 칭하는 건 그렇지 않은 자의 철없는 자족일 뿐이다. 사실 세상 사람들의 정신 건강에 큰 관심은 없다. 정신 건강뿐만 아니라, 타인의 일들이 내게 큰 관심사는 아니다. 이름 모를 어떤 이의 가슴 아픈 불행한 소식을 기사로 접할 때의 놀람이 내가 가진 미국 주식의 미약한 변동률에 따른 감정의 진폭에 결코 미치지 못하는, 나는 너무 나만 아는 사람이다. 유난한 구석이 있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비윤리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런 나도, 사람들이 내가 아팠던 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괴로워하지는 않았으면 하는 마음은 있다. 나의 날들을 아는 몇 안 되는 사람들이, 시간이 지나 내게 자신의 힘듦을 토로할 때가 있었다. 진심으로, 그들도 괜찮아지기를 바랐다. 하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조언은 초라했다. 나는 어떻게 해서 버텨낸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럼에도 버텼으면 좋겠다는 말만 힘없이 되풀이할 뿐이었다. 그렇게 버티다가, 버텨짐이라는 분류에 해당되는 삶이 찾아오기를 함께 청했다. 세상에 낙원은 없다는 말이, 누군가는 필연적으로 죽는 게 낫다고 싶을 정도로까지 아파해야 한다는 잔인함은 아니어야 한다. 우울에 대한 인식은 많이 개선되어, 그것이 감기처럼 찾아올 수 있는 것이라든가, 혹은 누구에게나 다가올 수 있는 무언가라는 말들이 횡행하는 수준까지는 되었다. 그러나 그런 섣부른 공감으로 그 끔찍함과 참혹함에 대해 충분한 위로나 예방책이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사실 우울에 대한 위로는 어디까지나 가능성의 영역이다. 한 사람이 아무리 누군가에게 최선과 진심으로 선의를 전달하려고 해도, 우울한 이가 그것을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그저 무용한 언어일 뿐이기 때문이다. 나는 예고 없이 내 삶을 찾아온 불행에 힘껏 괴로워했다. 그리고 또 다른 불행이 언제든 다시 내 삶을 찾아올 수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언제든 그 따위의 못난 불행을 겪은 사람이 안전하게 터놓고 소견과 방안을 구할 수 있는 세상이기를 바라지만, 그것도 요원할 것을 모르는 바 아니다. 사람은 자신이 겪기 전에는 대체로 불행은 타자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걸 비난하거나 원망하려는 게 아니다. 언제든 불행이 내게 다가올 수 있다는 불안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는 방어기제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겪는 불행에 비해 대비책은 언제나 뒤늦을 수밖에 없다. 공공의 자원을 투자하는데 이 이슈에 대해 사회적 공감대가 선제적으로 형성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불행이 큰 탈 없이 지나갈 불행에 해당하기를 바랄 뿐이다. 하지만 우울에 대한 면역은 있다고 생각한다. 아니, 그렇게 믿고는 싶다. 한 사람이 지독하게 겪은 슬픔이, 동량의 그것에 대해서는 견뎌낼 힘을 남길 수 있기를 바란다. 나이 듦이 주는 몇 안 되는 축복은 같은 류의 아픔에 조금씩 둔감할 수 있는 미량의 무심함이라고 생각한다. 열심히 불행했던 이들에게만 주어질 수 있는 보상이 하나 정도는 있어야, 최소한 "다음엔 조금 덜 아플 수 있을 거야" 따위의 말이라도 스스로에게든 타인에게든 가능하지 않겠는가.
불행은 너무 못됐다. 못돼 처먹었다는 말로도 모자를 만큼, 불행은 못됐다. 한 사람의 세계를 부정의 절반으로 가둔 채 거기에 한없는 슬픔만 들이붓는 불행이기에, 그 어떤 법정에서든 아무리 기소돼도 모자를 파렴치한이기도 하다. 불행으로부터 비롯된 피해가 쉽게 구제될 수 없기에, 불행은 더더욱 감당하기 어려운 존재다. 그 정도로 큰 불행은, 이겨낼 수 있기보다는 아예 찾아오지 않는 게 우선적인 바람이다. 그러나 소망과는 무관하게 불행은 우리를 방문하고, 우린 불행을 차례로 마주하고, 겪고, 앓고, 무너진다. 무너지고 무너지다 지쳐버린 불행이 한 걸음 먼저 물어나면, 그제야 생존한 나처럼 다시 살아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 재앙 같은 재해 앞에 무엇도 할 게 없다는 게 무기력하고 괴롭고 무섭다. 희망을 믿어 보기에, 증거는 부실하다. 다만 겨우 말해질 수 있는 진실이 하나 있다. 개인의 모든 구체적이고 개인적인 경험이 결코 함부로 일반화되어서는 안 된다는 전제 하에 오직 나에게만 귀속될 경험으로, 내가 나를 괴롭혀대는 불행보다는 겨우 덜 지쳐서 불행으로부터 조금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가감 없는 역사가 그래도 너무 완전히 지쳐버리지만 않는다면 조금은 회복될 수 있다는 위태로운 명제라도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게, 언젠가는 열심히도 불행했던 날들의 경험이 굳은살이 되어 다음 슬픔으로부터는 우리를 지키는 힘없는 방파제가 되기를 희망의 씨앗이면 좋겠다. 그래야, 지난 시간이 너무 부질없지만은 않았다는 위안 하나는 품을 수 있을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