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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지난 시간의 나약한 변명

이제는, 나는 그런 사람이라고 받아들이기

by 사랑의 천문학

어렸을 적, 나는 무척이나 어른스러웠다. 어른스럽다고 많은 칭찬을 받았다. 아이가, 어른스러워서, 칭찬을 받았다. 아이는 아이답지 않았고 점점 아이다울 수 없었다. 아무것도 모를 때부터 어쨌든 무언가를 노력해야 칭찬을 구할 수 있다는 것 정도는 배웠다. 서글픈 교훈이었다. 아이는 아이인 게 맞다. 아이가 너무 아이다워서 때론 혼이 나더라도, 아이는 아이여야 한다. 어른이 되어보지 못한 아이가 서투르게 어른스럽다는 건 많은 걸 참고 견딘다는 의미다. 생의 대부분은 인내하고 이겨내야 할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걸 아이일 때부터 할 필요는 없었다. 모르는 사이 눈치를 보았다. 타자에 대한 의식이 너무 빨리 시작됐다. 누군가의 평가에 그 어린 나이부터 나의 자기 효용이 좌지우지됐다. 낮은 자존감의 시초였다. 아이가 의젓했다는 사실이 지금의 일그러진 자존감에 이르렀다는 것까지는 비약이겠지만, 그 사이 하루하루 쌓인 날들이 현재와 무관할 순 없다. 생에 단계별로 주어진 관물들을 헤쳐가며 자라고 어른이 됐다. 그때 가장 인정받을 수 있는 것들에 보통 최선을 다했다. 주로 공부였다. 당연한 이야기고 나쁜 것도 아니지만 입시에 몰두했다. 그때 그 나이의 대부분의 아이들이 시간을 투자하는 분야에서 상위권에 위치하기 위해 노력했다. 수없이 비교하고 질시하다 열등감을 느끼기도 하며 학업을 이어갔다. 하고 싶은 공부는 없었으나 가면 인정받을 전공은 있었다. 대학은 새로운 학문의 장이 아닌 중고등학교 시절 노력에 대한 적절한 보상으로의 간판이었다. 대학을 성취함과 동시에, 더 이상 성취해야 할 무언가를 잃었다. 방황의 시작이었다.


대학을 다니며 공부를 안 했다. 양립해서는 안 되는 두 구절이 모두 참이었다. 학교는 다녔는데 별다른 명분 없이 공부에 소홀했다. 이후 취업 준비를 할 때 형편없는 학점을 기재할 때마다 괜히 마음이 시큰했지만, 그걸 알고 지난날로 돌아가도 나는 공부에 최선을 다하지는 못할 것 같다. 공부가 너무 하기 싫었다. 공부를 하기 위해 대학 준비를 한 게 아니었다. 이 학교의 이 과에 다니는 사람이라는 수식어만 필요했을 뿐이었다. 그래서 많은 시간을 어영부영 보냈다. 어떤 날에는 날이 좋길래, 학교까지 가놓고 수업에 들어가지는 않은 채 카페에 가서 글을 썼다. 낭만을 찾았다기보다는 현실을 유기했다. 어영부영이든 치열하게든, 시간은 흐른다. 어느새 대학의 이름과 학과로 나를 설명할 수 있던 시간은 희석되었다. 이제 다른 수식어가 필요해졌다. 취업 준비를 시작했다. 최선을 다 하여 최선이란 없었던 지난날들에 대한 증빙만 남아있었다. 힘든 세상에 그리 힘들게 살아내지 못한 나를 뽑아달라고 하기가 민망한 수치였다. 나의 자존감이 가장 바닥이었던 날들이었다. 10대 내내 준비해서 들어온 이곳이, 나갈 때가 되니 더 이상 나를 지켜주지 못했다. 태만했던 상상력이 가져온 비극이었다. 나는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대학 이후의 삶을 꿈꾸지 않았다. 무슨 일을 하며 삶을 꾸려나갈지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방향을 잡기도, 겨우 잡은 방향이 흔들릴 때 중심을 잡기도 모두 힘들었다. 내게 남은 게 없어 보였다. 정신적 파산의 상태로 나는 절실하게 일자리를 찾았다.


그래서 붙은 직장에, 한 번 부서를 옮겨 지금까지 일하고 있다. 회사에 들어와서도 한 번 휴직을 하는 등 어려움은 지속됐다. 그 과정에서 많이 포기하고 다시 무언가를 선택했다. 포기에 용기가 동원된다. 현실이라는 톱으로 미련을 단절시켜야 한다. 안정된 무언가를 버리고 가슴 뛰는 삶을 택하는 이들에 '낭만'이라고 칭송하고는 한다. 그렇다면 오래도록 꿈꿨던 무언가를 포기하고 필요한 삶을 선택하는 건 오로지 '비낭만'일까? 나는 이를 '부정의 낭만' 혹은 '마지막 낭만'이라고 되려 칭하고 싶다. 가슴이 이끄는 삶으로 발걸음을 옮길 때의 포부와 희열이 있다면, 뜨겁던 열망과 열정을 애써 누르며 주어진 현실을 묵묵히 살아내기로 한 데에도 알싸한 저밋함이 마음에 피어나기 때문이다. 흔히 말하는 멋진 낭만은 아니더라도, 자신의 한계를 알고 택해야 할 현실을 택하며 원했던 걸 포기하는 마음도 낭만과 아예 무관하지는 않다. 입사 후 많은 것들을 내려놓고 포기했다. 이제는 그래야 할 나이라고 생각이 됐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나는 현실을 살아가고, 또 살아내야 하는 사람이다. 젊은 시절의 성과 없던 호기심 있던 영역에 여태껏 천착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묻고 살아야 할 것들이 세상에는 꽤 있다. 그건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지에 대한 질문일 수도, 나는 어떤 시간을 얼마나 아파했는지에 대한 흐릿한 기억일 수도, 그래도 그 시간 동안 미약하게 꿨던 꿈일 수도 있다. 나는 열망 하나를 묻었고, 그 묘지 위에서 새로운 삶을 성실히 꾸려나가기 위해 애쓰고 있다. 더 이상 아이가 어른스러워지는 것 정도로 삶의 존중과 인정을 받기는 어려운 나이다. 해야 할 일을, 해내야 한다.


다만 아쉬운 건 있다. 아이가 어른스러워지려는 노력으로부터 이어졌던 일련의 강박이나 스트레스를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었더라면, 지금의 삶은 어떻게 달랐을까라는 부질없는 궁금함이다. 그로부터 벗어난 적 없었으니, 그런 모습의 내가 감히 상상조차 안 되기는 하다. 그러니 다시 말하면 나란 사람은 이렇게 살 수밖에 없던 사람이었다. 그 안에서, 나는 충분히 헤맸지만 할 수 있는 한 충실히 삶을 보듬으려고 했다. 죽을힘으로 이겨내고 버텨낸 경험은 없다. 그러나 죽을힘으로 삶을 대하는 몇몇 사람들이 있다고 하여, 그게 삶을 대하는 표준이 되어야 한다는 건 과한 처사다. 나는 나를 오랜 시간 탓했다. 너무 대학 이후의 삶에 대해 고민한 적 없고, 삶의 본질적인 중요성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경험도 전무했기에 이후 삶이 휘청거릴 때 자존감이 함께 뒤흔들렸기 때문이었다. 그 풍파를 한 번 강하게 겪을 때마다, 나는 게을렀던 나를 힘껏 힐난했다. 그러나 이제는 내 안의 변명을 조금 들어보려고 한다. 나는 그럴 수밖에 없던 사람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던 사람에게 왜 다른 삶을 살아내지 않았냐는 비난은 가혹하다. 나는 그럼에도 삶의 단계들을 감당하려고 애썼고, 제때 현실을 받아들이며 오랜 열망도 포기할 수 있을 정도로는 냉철히 생을 대하기도 했다. 엄청나게 가슴 뛰는 삶을 살아왔거나 살고 있지는 않지만, 흔히 말하는 '표준'이라는 것에서 크게 뒤쳐지지도 않게 살아는 있다. 어릴 때부터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해 대던 나였으니, 어쩌면 나는 내가 가장 안전할 수 있는 방법으로 삶을 살아온 것일지도 모른다.


지금도 스스로의 길을 개척하며 가슴이 뛰는 삶을 살아내는 사람들을 보면 무한한 동경을 느낀다. 나의 결핍이 반영된 거울이 그들의 멋진 생이다. 나는 오랜 시간 제대로 된 미래를 그려보지 초자 않았던 나를 탓하고는 했다. 내 삶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이고, 나는 어떤 걸 할 때 그나마 괜찮은지에 대한 탐구가 없었던 게으름이 싫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나는 그럴 시간에 해야 할 것들을 하며 나를 지켰다. 물론 헤매고 방황하던 시간도 있었지만, 대체로 나는 내 삶의 단계에서 요구되는 요건들을 충족하기 위해 노력해 댔다. 그게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삶의 방식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의 개별적 생 모두가 적극적으로 능동적인 존재일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을 잘 지켜내고 보듬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소중한 삶의 행위라고 생각한다. 이제야 나를 조금 덜 탓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능동과 주체성에 대해서는 요령부족인 사람이었던 게 맞다. 그러나 순간순간 필요한 무언가를 해냄에 있어서는 불성실하지는 않았다. 그 관점에서 나의 삶이 너무 많이 평가절하 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 얘기는, 나도 드디어 나의 자존감을 일정 부분은 변호할 방안을 하나 찾았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지독하게 낮은 자존감으로 오랜 시간 힘들었지만, 나는 그냥 그런 사람임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으로 이를 조금은 지켜낼 수 있게 된 것 같다. 원래 내가 그런 사람이라는 무책임한 면죄부가 아니라, 주어진 요건에서 최선을 다했다는 변명의 의견서다. 그동안은 쳐다보지도 않았던 이 간절하고 나약한 변명을, 이제는 조금씩 인용하며 고됐던 시간을 달래주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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