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초반의 시간이 무한히 애틋하기를 바라는 마음
지금도 너무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내게도 더 어렸던 시절은 당연히 존재한다. 좋아하는 단어는 아니지만, 소위 '청춘'이라고 불리는 날들이다. 청년이라는 가치중립적인 단어 대신 청춘을 굳이 사용함으로써 젊은 날들을 푸르다고 강제하는 듯한 불편함이 들어서인데, 다시 청년은 너무 긴 시간을 함의하고 있어 20대 초반의 시간을 정의할 마땅한 말은 청춘 외에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겪어낸 그 시절이기에 다양한 정의들이 존재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겪어버린 그 시절이기에 대부분의 정의들은 왜곡 및 과장되거나 혹은 미화되었다. 우린 우리가 지나 온 대부분의 사람들이 겪는 공통의 날들에 대해 자신의 정의만이 정답인 양 생각하는 버릇이 있다. 11월의 어느 날만 되면 이름 모를 전국의 수험생들에게 이런저런 말들을 감상에 젖어 전하는 이들이 많아지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개인의 구체적 경험과 감정은 어디까지나 개인 자신에게만 귀속되는 것이라, 자신이 느낀 교훈과 보람을 보편의 진리인 듯 전파하려는 마음은 솔직히 말하자면 무책임한 오만이다. 그러니 나 역시 20대 초반의 젊은 날들을 지나는 왔지만 그 시절을 '정답'으로 규정할 자신은 없다. 더더욱 현명하고 지혜롭게 그날들을 견디는 법에 대해서는 더욱 무지하다. 그렇지만 최소한 내가 겪었던 그날들은 이랬다, 정도의 '기술'은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어디까지나 회고로, 내게 흔히 말하는 '청춘'은 '과잉의 날들'이었다.
그땐 모든 게 앞섰고 넘쳤다. 물론 돈은 그때나 지금이나 넘친 적 없으니, 그걸 빼고는 정말 많은 것들에서 결핍을 찾기 힘들었다. 시간도 많았고, 시간이 너무 많아서 무언가에 더욱 몰두하기도 했다. 그 무언가는 어쩔 때는 하고픈 일이었고 어쩔 때는 사랑이었다. 이제 나는 슬픈 일을 겪어도 밤이 되면 다시 다음 날 출근을 걱정하고 출근해서는 밥벌이를 해내야 한다. 무한정 슬픔에 잠식되어 있을 겨를이 물리적으로 없다. 우울도, 우울할만해져야 부릴 수 있는 여유다. 젊었던 시절엔 마음은 비었고 채울 게 많았다. 그러니 매사에 과잉이었다는 건 너무 많은 것들에 여백이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삶은 꼭 소중하고 애틋한 것들로만 채워지는 게 아니었다. 여린 마음엔 상처도 불쑥 종종 찾아왔다. 아픔도 기쁨도, 모두 필요이상으로 많이 느꼈다. 그 시절로부터 조금만 지났을 때도, 나는 한 사건에는 동원돼야 할 적절하고 적당한 양의 감정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20대 초반의 내가 능숙하게 조절하기에는 너무 어려웠던 게 감정이었다. 서글프지만, 감정도 결국 통계를 따른다. 정확히는 어떤 일에 대한 기댓값이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며 예측 가능한 범주 안에 들어오고, 그러니 감정 역시 대부분 견딜만한 정도에 머무르게 된다. 20대 초반의 시간으로 다신 돌아가기 싫은 이유이기도 하다. 이제야 나는 너무 많은 마음을 소진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겪지 않은 일들에까지는 모르겠지만, 겪은 적 있는 동류의 경험에 대해서는, 20대 초반 때보다는 정제되게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정도다. 세월이라는 굳은살이 준 소중한 선물이다.
매사에 서툴고 불안한 시기이기도 했다. 서툴렀기에 불안했다고 말하는 것도 틀리진 않을 테다. 지금도 대단하지 않고 앞으로도 그럴 리 없겠지만, 그러니 그때의 나는 더욱 별로였던 존재였다. 그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조급했다. 10대 후반까지 매 순간 나를 증명하면서 살아오려고 애썼기에 그 관성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스물 초반의 날들부터는 너무 보통의 존재가 되어버린 스스로였고, 어디에서도 반짝임을 찾을 수 없었다. 빛나는 시기라는데 하나도 빛나지 않아 조금이라도 겨우 빛나기 위해 부질없는 광만 자꾸 내려고 애썼다. 지금은 전혀 기울이지 않을 노력이지만, 그래서인지 그때의 내가 애틋하다. 쓸데없이 마음이 급했다. 삶은 살아야만 알 수 있는 것이었고, 선행학습은 불가능하다는 걸 그 시절의 나는 몰랐다. 생에도 정해진 진도가 있다고 여겼다. 그게 무엇인지 몰라, 일단 스스로가 뒤처졌다고 간주했다. 어디로 뛸지 모르는 레이스에서 후발주자가 되었다는 느낌은 괜히 마음만 초조하게 할 뿐이었다. 안쓰러운 노력을 허탈하게도 많이 기울였던 시간이었다. 그때 내가 중요하다 생각했던 것들 중 지금까지 같은 비중의 가중치를 가진 영역은 없다. 하지만 성장이라는 걸 제대로 겪은 적 없는 당시의 내게 많은 것들이 변할 거라는 진실이 제대로 전달될 리 없었다. 사랑, 일, 인간관계 등 모든 것들이 버겁고 벅찼다. 시간이 지나며 너무 서투르고 모자랐던 영역들이 조금씩 익숙해지고 손에 익을 수 있었다. 많은 노력의 산물이라기보다는 자연스레 익힌 작은 기술들이었다. 시간은, 가끔은 거의 거저 주는 것들이 있다.
과잉이 너무 많았던 스물 초반의 날들이 그리울 리 없다. 실수도 많았고, 성급함에 많은 걸 그르치기도 했다.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마음을 도무지 가져보기 어려웠던 시간이었다. 그때의 나는 모자랐지만, 그 모자람을 탓하고 싶지는 않다. 그때 내 세계는 좁았고, 그럴 수밖에 없었다. 돌아가고 싶지는 않지만, 그날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존재한다는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다. 예쁜 시간은 아니다. 마치 영화 <가장 따뜻한 색, 블루>의 마지막 장면에서 엠마에게 일그러진 얼굴로 펑펑 울며 간청하던 아델의 당시처럼 많이 못생긴 얼굴의 날들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만큼이나 진심뿐인 날들이기도 했다. 너무 진심뿐이어서 때론 마음을 많이 앓았지만, 어쨌든 최소한 삶의 한 페이지 정도에는 진심들의 얼룩들이 날적처럼 많이 남아 있게 되었다. 이제는 커버린 나는, 마치 영화에서의 엠마처럼 나의 지나온 그날들에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무한한 애틋함"을 느낀다고. 엠마를 지독히도 사랑하던 아델은 자랐을 테다. 멜로 영화에서 아린 실연을 겪은 한 인물이 얼마간의 성장을 보이거나 그랬을 거라 추측하는 건 자연스럽다. 그러나 우린 보통 실연을 '안긴' 이의 마음에는 무관심한데, 엠마 역시 자신을 지독히도 사랑했던 아델을 보며 많이 자라고 변했을 테다. 굳이 상대방의 시선이 서보려는 건, 내 어린 시절을 잘 기억해 내기 위해서다. 지난날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된 것도 맞다. 그러나 그 시간을 어떻게 기억하냐에 따라 앞으로의 나도 달라질 게 분명하다. 어린 시절의 나는 마치 두 사람이 사랑했던 시간처럼 재연될 수 없는 무엇이지만, 그날들을 '애틋하다'라고 기억함으로써 살면서 쉬이 버리지 못할 온기를 구할 수 있을 것이다.
나를 제외하고 다들 어디서 회의라도 했는지, 유독 이 시기에 20대 초반을 함께했던 이들의 결혼이 많다. 삶이 많이 달라진 우리들은 언제나 그때의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재탕한다. 그 시절이 죽어도 못 잊을 정도로 재밌어서가 아니라, 그 외에는 별다른 공통분모가 없기 때문이라는 게 솔직한 핑계다. 가뜩이나 자주 모이기 힘든 사람들이었으니, 이제 더욱 소원해질 게 분명하다. 나이가 들고 맡고 견디고 해내야 할 삶들이 있기에, 당연한 귀결이다. 꽤나 많은 결혼식에 참석했지만, 여전히 스물 초반 무렵 만났던 이들의 결혼은 다소 애상적이다. 언제 그들은 저렇게 자라고 언제 우리는 이렇게 달라졌나 싶다. 자연스레 20대 초반의 날들을 떠올릴 수밖에 없고, 그렇게 생각해 낸 그 시절은 '참 많이 넘쳤던 시간'이었다. 그중에 머뭇거림 역시 넘쳐버려, 소중한 걸 놓칠 때도 있었다. 그래도 사람은 배우는 동물이다. 지난날들에 소중했던 무언가를 애도하며 가슴 깊이, 말하자면 너무 많이 울었던 경험은, 이젠 그 소중함을 너무 쉽게 놓아버리지는 않을 나로 자라게 했다. 때론 누수되고 범람될 정도로 많은 감정들로부터 나 역시 변할 수 있었다. 그때 매사에 진심이었던 나를 잃은 게 자란 것인지는 모르겠으니, 굳이 '성장'이라고 표현하기에는 주저함이 든다. 그러나 그 넘치던 감정들에 애틋함을 느끼고, 이제는 나를 먼저 지키고 보듬으려는 어른이 되려고 하고 있다. 노력 중이고 앞으로도 노력해야겠지만, 그 시절의 기억을 함부로 훼손하거나 불필요하게 미화하지 않고, 담백한 따뜻함으로 간직하려는 이유다. 앞으로의 나 또한, 그 기억을 어떤 온도로 바라보냐에 따라 달라질 거라 믿기 때문이다.
그러니, 고이 안녕히, 이젠 지나가버렸지만 그럼에도 남아있는 스물 초반의 날들에 안녕하기를 비는 안부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