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노력하게 했던 한 사람

by 사랑의 천문학

2015년 가을, 아주 빡센 연애를 하고 있던 두 사람이 있었다. 남자의 이름은 '우진'이었고, 그의 애인은 '이수'라는 여자였다. 누군가의 이분법에 따르자면, 세상 모든 연애는 두 분류로 나뉜다. 빡센 연애와, 존나 빡센 연애. 이들은 후자였다. 남자의 얼굴이 매일마다 변했기 때문이었다. 남다를 것 없이 살아오던 남자의 삶은 18세 어느 날을 기점으로 하루 아침에 모든 게 바뀌었다. 남자 '우진'은 자고 일어나면 전혀 다른 사람으로 겉모습이 변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의 인생은 연속적이었지만, 그건 전혀 다른 분절된 하루들로 이루어진 불연속 함수와도 같았다. 어제는 여자였고, 오늘은 아이고, 다시 내일은 어떤 모습으로 변할지 모른다. 내면과 외면이 짝을 이룰 때 한 개인의 정체성은 '인상'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각인될 수 있다. 하루가 지나면 소멸해버리는 그의 겉모습 때문에, 남자는 지속적인 사회적 관계를 쉽게 맺을 수 없었다. 세상에서 그와 연속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었던 건 그의 어머니와, 절친한 친구 '상백'이 두 사람 뿐이었다. '연애'란 그에게 있어 아주 요원한 단어였다. 그는 다만 꽤 괜찮게 생긴 얼굴로 잠에서 일어난 어느 날, 클럽이나 바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 짧은 사랑을 나누고, 아침에 일어나서는 다시 도망을 치는 서글픈 인생을 반복한다.


그렇게 '우진'은 사랑에 자포자기 한다. 그런 그의 앞에, 꾸준한 관계를 맺고픈 욕심이 자꾸만 드는 '이수'라는 여자가 등장한다. 우진은 매일마다 다른 모습으로 이수를 찾아가고, 고백되지 못할 마음만을 속절없이 키운다. 불면의 시간들로 그녀와의 불멸할 날들을 이루어보려고 노력하지만, 잠을 안 잔 다는 건 처음부터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잠깐이나마 함께 나눴던 무박 3일 간의 데이트는 그렇게 끝이 난다. 우진은 이수를 포기해야 하나 싶지만, 사랑을 단념하는 것만큼 어렵고 아픈 일이 또 어디 있을까. 결국 우진은 '이수'에게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토로하고, 매일 바뀌는 겉모습에도 결코 변하지 않았던 단 한 가지, 그의 열렬한 사랑을 담담히 고백한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사연을 들은 이수는 한참동안 불신과 고민, 그리고 갈등을 거듭하다, 이윽고 우진의 고백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하고 두 사람은 연인이 된다. 이수의 입장에서 보면 매일같이 우진을 만나면서도, 결국 마음속에 기억될 뚜렷할 얼굴 하나 남기지 못 하는 사람을 사랑해야 했고, 이건 상상 이상으로 고달픈 연애였다. 헤어짐 후에, 이수는 언니에게 안겨 '어딜갔는지, 뭘 먹었는지, 식당 반찬까지 다 기억나는데 그 사람 얼굴이 생각이 안나'라고 말하며 펑펑 울기도 했다. 우진과 이수 두 사람의 연애는 <미녀와 야수> 이상으로 어마어마한 사랑이었다. 사랑이 커져가면 설렘과 궁금함이 있던 자리에 편안한 익숙함이 피어난다. 성숙한 형태로의 사랑의 성장이다. 그러나 이수의 연애는 그러지 못했다.


그녀는 매일마다 새로이 그녀의 남자 친구에 '적응'해야 했다. 우진에게 항상 익숙한 듯 반가운 웃음을 지어보지만, 그녀에게 있어 '새로운 모습'의 우진은 아무리 되뇌어도 '처음 보는 낯선 사람'이었고, 또한 바뀐 그의 모습에 그나마 적응이 되려고 하면 어느새 하루가 끝나버렸다. 그러니 이수는 늘 얼마간의 스트레스를 받고 말았다. 우진이 그녀에게 말을 걸거나 그녀를 만질 때마다, 이수는 그가 우진이라는 주문을 수도 없이 스스로 외워야 했다. 매일같이 바뀌는 얼굴로 살아가는 우진도 어마어마한 스트레스를 받았을 테지만, 그런 그를 사랑해야 하는 이수의 고됨도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이수는 행여 우진에게 상처가 될까봐 이를 전혀 티내지 않았고, 결국 그녀는 미쳐버릴 것 같은 지독한 스트레스를 겪게 되어, 정신의학과의 도움까지 받고 말았다. 이수는, 그녀 자신이 곁에 없다면 우진은 다시 끝없이 외로운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사랑은 여전히 유효했으며, 그렇기에 이수는 우진에게 헤어짐을 먼저 이야기 할 수 없던 사람이었다. 이후 그녀의 외로운 분투를 알게 된 우진은 그녀에게, 그녀를 위해, 이별을 고했다. 그들의 이별은 무척이나 담담하고, 슬펐다. 이들이 나눴던 사랑은 실로 엄청난 연애였다. 정말로 '존나 빡센' 연애였다. 그랬던 사랑도 결국 끝이 나고 말았다. 헤어지자는 말을 듣는 순간 안도감을 느꼈다는 이수의 나레이션은 그들의 이별을 더욱 가슴 아프게 만들었다. 커다란 짐이 되어버린 사랑을, 여전히 사랑하면서도 그렇게 덮어야 하는 두 사람의 모습은 그 만큼이나 애처로웠다.


이는 물론, 현실의 이야기가 아니다. 영화 <뷰티 인사이드>의 줄거리다. 지금이야 혼자서 영화를 관람하는 게 아무렇지도 않지만, 당시 개봉했던 이 영화를 볼 때만 해도 나는 어쩐지 설명 못 할 꺼림직함을 느꼈다. 아마 멜로 영화 <뷰티 인사이드>라서 더욱 그랬던 것 같다. 그래서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모두 커플들인 것만 같은 이질감을 느끼며 영화를 관람하다, 이내 그들의 이별 장면에 이르러서는 대책 없이 꺼이꺼이 울고 말았다. 우진과 이수의 연애는 '존나 빡센 연애'의 상징이었다. 애인의 외모, 성별, 나이 등 모든 겉모습들이 하루마다 변하는 연애보다 더욱 '빡센' 형태의 사랑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니 두 사람이 나누었던 관계는, 사랑이 극단으로 빡세다는 건 어디까지 가능한 걸까, 라는 하나의 사고실험이었다. 물론 영화의 결말에 이르러서는 동화적인 해피엔딩을 맞이했으니, 그건 좀 다행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이별 장면까지는, 영화는 사랑이 잉태되는 설렘부터, 그 사랑이 유효한 상태에서도 기어코 마침표를 찍어야 하는 슬픔까지를 섬세히 그려냈다. 그래서 그들의 이별이 너무도 마음 아팠다. 저렇게나 대단한 사랑을 나누던 그들 역시 얼굴이 매일 바뀐다는 현실적 어려움을 이겨내지 못하고 서로를 보내는 것이 아주 가슴 저렸다.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볼 때, 당시의 나도 이별한 지 그리 오래 되지 않은 상태였다. 우리 두 사람도 그리 쉽지 만은 않은 연애를 했다. 그래서 결국에는 지쳐서 헤어져버렸다. 헤어지는 순간에는 저미는 아쉬움과 동시에, 미안할 정도로 부끄러운 안도감과 해방감이 들었다. 그래서 영화에 더욱 몰입이 됐고, 이내 극장에서 울어버리는 추태까지 부리고 말았다. 그건 좀 혼자 가서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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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 크래딧까지 자리에 남아있던 영화는 오랜만이었다. 눈물이 완전히 멈추는 데는 시간이 꽤 필요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영화 <뷰티 인사이드>는 제목 때문에, 그리고 한효주라는 배우의 영화 외적 논란 때문에 필요 이상의 비난을 받았던 영화였다. 박서준이나 이진욱, 혹은 유연석 같이 잘 생긴 배우가 중요한 장면마다 등장하는데, 그게 어떻게 내면의 아름다움을 찬미한 영화냐고, 오히려 외모지상주의 아니냐는 불필요한 지적이 존재하기도 했다. 제목이 '뷰티 인사이드'만 아니었어도 비판이 조금 덜 했을 것이었다. 나는 오히려 그런 지점들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더 잘 보이고 싶던 한 남자의 간절한 마음이라고 생각했다. 스스로가 생각했을 때 조금 더 잘생기고, 멋지고, 또 이왕이면 내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여자친구가 남들에게 '내 남자친구야'라며 으쓱할 수 있는 모습이 되고 싶은 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순애보 아닌가. 그렇게 매사를 귀찮아 하는 나도, 연애를 하던 시기에는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더 괜찮아보이기 위해 부던히도 노력했다. 물론 모든 노력이 꼭 잘생김으로 이어졌던 건 아니었다. 어쨌든, 크게 달라질 게 없더라도 그래도 좋은 모습을 약간이라도 더 보여주고 싶은 게, 바로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 아니겠는가. 그러니 주인공 '우진'이 스스로가 생각할 때 괜찮아 보이는 날에 비로소 고백하고, 또 그녀의 파티에 아주 멋진 모습의 남자 친구로 찾아가기 위해 오지도 않은 잠을 청하여 억지로 모습을 바꾸는 건, 사랑하는 사람의 당연한 욕심이었다. 우진은 그만큼 참 많이 노력하던 사람이었다. 열렬히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이 그에게서 보였다. 조금 더 감정이입해서 말하자면, 우진에게서 나의 지난 날이 보였다. 그래서 아마 더 울었던 것 같다. 그렇게나 노력했던 두 사람 모두의 사랑이 끝나버렸다는 동병상련이었달까.


영화가 끝나고, 그 사람이 참 많이도 보고싶었다. 그래서 영화관을 나오자 마자 그 사람이 있을 법한 곳으로 찾아 갔다. 신촌 몇 군데를 돌아다니다, 내가 아주 많이 사랑했던 그 사람의 얼굴을 찾아냈다. 예쁜 사람, 내가 정말 많이 좋아했던 그 사람. 항상 최선이고 싶어 언제나 스스로를 노력하게 만들었던 그 사람. 무지하게 미웠지만 그만큼이나 그리워했던 그 사람. 한 때는 내 모든 꿈이었고, 또 그 꿈을 부풀게 했던 그 사람. 그랬던 그 사람이 거기 있었다. 영화를 보다 네 생각이 많이 났다고, 아니 실은 매일처럼 네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빌어먹을 한 영화 때문에 오늘은 눈물까지 흘렸다고, 그러다가 남들이 들을까봐 아주 많이 쪽팔렸다고. <뷰티 인사이드>는 우리의 날들과 많이 닮은 영화라고, 그래서 두 시간이란 시간 동안 아주 큰 공감을 받았다고, 그런데 그 두 사람은 결국에는 다시 만나 행복하게 거리를 손 잡고 걷는데 왜 우리는 그럴 수 없는지 그게 너무 억울했다고, 우리를 닮은 이야기인데 왜 우리 두 사람은 이렇게 끝내 멀어져야 하는 걸까 이게 너무 슬펐다고, 나는 얼굴이 바뀌는 것도 아닌데, 그래서 우리의 사랑이 저렇게까지 빡센 것도 아니었는데, 너무 많이 분했다고. 그러니까 너도 혹시 이 영화를 보지는 않았는지, 그럼 영화를 보며 어떤 생각을 했는지, 그래서 나와 비슷한 마음을 갖지는 않았는지, 영화가 마친 후에는 너도 나처럼 내가 보고 싶지는 않았는지, 사실 그건 다 상관 없고, 그냥 참 많이 보고 싶었다고, 그렇게 열심히 사랑했던 너라는 사람이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다만 그게 정말 궁금했다는, 그런 말을 그 사람에게 건네고 싶었지만 힘겹게 삼켰다. 나에게 어쩐 일로 왔는지 물어보는 그 사람에게, 차마 글로는 적을 수 없는 부끄러운 대답으로 얼버무렸다.


그게 벌써 몇 년 전의 가을이니, 시간은 어느새 이 년 하고도 한 계절이 더 지났다. 그 이후로 나는 <뷰티 인사이드>라는 영화를, 거짓말 안 하고 정확히 스무 번 이상은 더 보았다. 이제는 심심할 때마다 영화 채널에서 종종 방영되곤 하는데, 그때마다 다음에 무슨 대사가 나올 지 줄줄이 외우고 있을 정도다. 이런 수준의 열정으로 영어 공부를 했다면 앞으로의 미국 오스카 시상식을 자막과 통역 없이 생생하게 볼 수 있을 텐데, 그런 정열과 노력은 학습에는 유독 소홀해진다. 대신 사랑에는 조금 지독하게 많이 노력했다. 어쨌든 이만큼의 시간이 흘러서일까, 이제는 그 사람이 내 인생에서 어떤 의미였는지 조금 명징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소중했고 고마웠던 마음은 우선 차치하고라도, 그 사람은 내게 사랑을 노력하게 했던 한 사람이었다. 그 노력의 결과가 마냥 행복한 해피 엔딩이 아니었다는 건 나를 사랑하기 이전보다 조금 더 회의적인 인물로 만들었다. 가뜩이나 원래부터 조금 비딱했는데, 노력과 열정에 대해 이제는 기대치가 거의 없는 정도가 되었다. 어쨌든 그렇게나 진심과 최선을 다 하여 노력했던 한 사람과의 관계가 아주 허탈하게 끝이 났으니, 이제는 뭐든 '열심히' 한다고 다 되는 게 아니라는 약간의 허무주의까지 느끼고는 한다. 평생 이럴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세상에서 가장 미워하고 저주했던 그 사람에게마저 이제는 뒤늦은 미안함과 고마움까지 느끼게 되는 걸 보니, 다시 언젠가는 노력하는 사랑을 할 지도 모를 일이다.


사람마다 사랑을 바라보는 관점은 다르다. 누군가는 사랑을 노력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나의 경우는, 치사한 양비론 같지만, 반 반이다. 관계의 길이에 있어서 만큼은 나는 운명을 더욱 믿는 편이다. 한 생명이 태어났다 죽는 것처럼, 모든 사랑에도 나름마다 유효한 삶이 있고, 따라서 그 종착점이 처음부터 정해진 운명에서 크게 벗어날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마음에도 없는 억지 노력으로 사랑을 이어 보려거나 구멍을 메우려고 해도 연애에서의 가변성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우진이 이수에게 그랬고, 이수가 우진에게 그랬고, 내가 그 사람에게, 또 그 사람이 내게 그랬던 것처럼, 노력은 사랑을 더욱 깊고 풍요롭게 만들도록 일조한다. 물론 그 끝에 다다를 때 목격하게 된 노력의 결과가 지나치게 허무하여 어마어마한 무력감에 휩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랑하는 그 순간만큼은, 노력하는 사랑으로 두 사람 사이의 온기와 간절함, 절실함과 소중함이 더욱 배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서툴고 이른 판단일지도 모르나, 충분한 시간이 흐르고 돌이켜 보니 한 사람에게 더욱 노력하지 못 한 게 아쉽고 후회되기는 해도, 그 날들에 내가 쏟아부었던 열정이 그렇게 아깝지는 않다. 많이 아프고, 힘들었고, 또 외로웠지만, 그토록 열심히 사랑할 수 있던 사람을 만난 건 진심으로 고마웠고, 내 인생에서 참 중요하게 기억될 만한 연애였다.


이제는 서로를 위해 노력할 일 같은 건 다신 없으니, 다만 우리 두 사람 각자의 행복과 무탈한 안녕을 소망한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밴드 보컬의 말처럼, 불행하지 않은 날들을 성실히 살아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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