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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hemian Writer Jan 30. 2023

해낸 건 쥐뿔도 없지만

지난 크리스마스의 단상

    크리스마스도 두 시간이 채 안 남았다. 어느덧 내 20대 마지막 크리스마스다. 물론 내년부터 만 나이로 바뀐다고 하니, 정말 엄밀하게는 20대 마지막 크리스마스는 아닐 테다. 그러나 사람은 관성이라는 게 있다. 나이와 연월을 가늠할 수 있게 된 다음부터 2023년은 줄곧 나의 30대가 시작되는 해였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고, 만 나이가 시행되면 지금의 고리타분한 나이 시스템이 있었다는 걸 생각보다 빨리 망각할 수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꽤 오랜 시간 2023년이 나의 30대 시작이라는 인식은 쉽게 잊히지 않을 테고, 올해와 내년 두 번의 20대 마지막 크리스마스가 있었다는 걸 조금은 겸연쩍어 할 수도 있다. 아무튼 이렇게 크리스마스도 저물고 있다. 크리스마스는 하필 연말에 있어서, 남은 한 해가 일주일도 안 된다는 것과 한 해가 일주일도 안 남을 만큼 벌써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는 점을 동시에 상기시킨다. 이를테면 시험 종료 5분 전에 울리는 안내 멘트 같은 기능이다. 지금까지 얼마를 풀었든 몇 문제가 남았든 일단 OMR 마킹을 시작하라는 메시지와 일맥상통한다. 꽤 많은 문제가 남았다고 OMR 마킹을 하지 않는다면 그보다 망한 시험 점수를 받을 수 없겠지만, 그렇다고 여지껏 준비한 시험의 문제들을 더 이상 풀지 못하고 OMR로 넘어가야 하는 마음도 썩 속 시원하지는 않다. 시험에 응시하다 이런 상황이 되면 나는 보통 나지막이 욕을 내뱉고는 했다. 20대라는 시절의 OMR을 옮겨 써야 하는 이 시점에도 후련한 마음이 들지는 않다. 되려, '해낸 건 쥐뿔도 없지만'이란 생각이 지배적이다.


    해낸 게 없다. 이 사실이 내게 저밋한 열패감을 안겨준다. 정리하고 치워낸 숙제들은 있는데, 그걸 통해 내가 더 나은 사람으로 발전했다는 '해냄의 뿌듯함'은 결여된 상태다. 운이 좋게 대학을 한 번에 붙으며, 나는 스무 살을 재수학원이 아닌 학교에서 시작할 수 있었다. 자존감이 낮은 내가 재수를 하며 느꼈을 열등감을 생각하면 이건 정말 천운이었다. 아무튼 그동안의 학창 시절과는 전혀 다른 성질의 고등 교육 기관에서 생활하고 공부하며 시작된 나의 스무 살이었고, 그 20대는 생각보다 밝지만은 않았다. '생각보다'라는 말을 써도 되는지에 대해 조금 마음이 걸렸다. 생각해 보면 10대 학창 시절에 나는 나의 20대를 고민해 본 적 없었다. 내가 가장 후회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대학 합격 증명서를 받는 순간까지가 내 상상력을 최대로 동원한 지점이었다. 그 이후를 생각할 여유야 있었겠지만, 딱히 필요는 느끼지 못했다.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해결해야겠다는 근시안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비교 준거가 되는 '생각'이 전무했기에, '생각보다 밝지만은 않았다'라는 표현을 써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쉽지만은 않은 지난 10년이었다. 쉽지 만은 않았던 것에 '해냄'의 부재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 '맡은 일을 능히 처리하다'라는 사전적이고 협소한 의미에서의 해냄은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게 '해냄'이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진취적이고 나아가려는 듯한 역동성은 없었다. 10대 학창 시절의 그저 닥친 걸 치워내는 습관은 20대에도 계속됐고, 지금 와서 드는 생각은 이제껏 그래서는 안 됐다는 점이다.

    사실 '해냄'까지 가지도 않아도 '처리했다'라고 말하기도 애매한 지점들이 많은 20대이기도 했다. 학점은 땅을 기었다. 공부가 전부는 아니지만 꽤 오랜 시간을 그래도 나름대로 '배울 학'을 쓰는 학생으로 살아왔는데 처절할 정도로 직무 유기를 한 셈이었다. 그렇다고 별다른 이력을 만들지도 못했다. 거기에 뭔가를 열렬히 원하고 준비하지도 않았다. 그러니 흘러가는 대로만 살아왔고, 거기에 안간힘을 써서 한 회사에 들어갔으나 큰 성취를 이루지 못했음은 물론 아직도 적응기를 겪고 있다. 대학 입학 이후의 삶에 대해 준비가 전혀 없었던 나는, 그냥 때가 될 때 졸업하고 때가 될 때 직장을 얻어 내가 어디서 일을 하든 개처럼 벌어서 루이 16세처럼 펑펑 써대자는 생각을 가지고도 있었다. 삶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게 될 '직장' 및 '진로'에 대해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다. 20대 중반을 넘어오면서 나는 '때'에 대해 깊이 고민하기 시작했다. '제때'라는 것만큼 어려운 게 참 없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제때'는, 역시 다른 모든 것들이 '제때'에 준비되어야 가능한 단어였고, 이는 평소의 꾸준하고 일관된 성실함을 요구했다. 20대를 살아오며 부족했던 게 한두 개였게냐 만은, 나는 정말 성실하지 못했다. 학창 시절 그리고 그보다 어렸던 나이 때부터 치열하게 살았으니 잠시간 성실함을 유보했다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오래 불성실했다. 했던 노력에 비해 과분했던 보상이었다. 성실함은 종종 평가절하당한다. 재능에 비해 노력은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부당하게 기소당하는 경우들이 많다. 마음을 먹고 오랜 시간 노력을 한다는 것은 숭고한 일이다. 재능 못지않게 노력 역시 아름다운 가치며, 나의 20대에는 이것이 완벽하게 배제되어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어딘가에 탁월한 재능을 가진 사람도 아니었다. '게으른 천재'조차될 수 없었다는 의미다. '게으른 범재'가 인생의 중요한 과제들을 '제때'에 맞춰 준비하는 게 썩 쉽지만은 않았다. 많은 시간을 후회하고 지난 시간들을 원망했다. 그리고 지금은 이를 역시 원망하고 있다. 지난날들을 저주하는 시간에 어서 빨리 앞으로 나아갈 준비를 했다면 좋았을 텐데, 이런 걸 보면 범재조차 못 되는 어리석은 사람이 바로 내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다. 인생을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려주는 지표들이 있고, 누구나 크고 작은 도전과 모험을 겪으며 채점을 받는다. 해냄의 영역에서 나의 20대는 낙제점이다. 물리적인 상황으로는 그래도 이것도 했고 저것도 했으니 20대 전체에 F학점을 주는 건 너무 가혹한 짓 아니냐는 감사한 반론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경험의 가짓수와 '해냄'의 진취성에 아주 강력한 연관성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이 비극의 기저에는 20대 이후 삶에 대한 빈곤한 상상력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고 확신한다. 내가 가장 후회가 되는 지점은 내가 뭘 할 때 행복한가에 대한 질문을 단 한 번도 스스로에게 던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나태함으로 인하여, 나는 그저 흘러가는 대로만 살았었고 별다른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했으며 스스로를 동기부여할 방법을 몰랐고 그에 따라 해낸 건 쥐뿔도 없게 되었다. 숨 막히게 올라 겨우 턱걸이를 하는 치열함을 비하하는 건 아니나, 내가 나 자신을 궁금해하고 상상했더라면 조금은 더 단단한 사람이 되어 보다 즐거운 인생을 살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움이 있다. 30대의 마지막에도 같은 후회를 하기는 싫다. 그래서 미래를 떠올려보려고 가끔 노력하지만, 이 토대가 될 20대의 삶을 너무 정처 없이 살았다는 것이 그럴 때마다 아프게 다가온다.

    물론 내게도 변명의 사유들은 존재한다. 나도 꼭 그렇게 무기력하려고 최선을 다하고 애써서 이렇게 된 건 아니라는 항변도 가능은 하다. 그러나 또 생각해 보면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나만 있겠는가. 무려 10년의 시간이었다. 10년의 시간 전체를 아우를 거대한 변명 사유는 다행히도 내게는 없었다. 인정할 건 인정해야 된다. 내가 게을렀고, 못 났었고 또 모났었다. 날만 가득 서 있던 지난 10년이 아니었나 싶은 생각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조금은 더 앓았고 아파했지만, 이건 조금 정상참작을 해 줄 만한 정도였다. 그러나 달리 생각하자면 스스로의 아픔을 이렇게 애써 줄여대는 사고방식이 어쩌면 나를 가장 아프게 했던 무언가일 수도 있다. 30대에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나는 좀 나 스스로를 안아주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나를 받아들이고 위로하는 것에서 다른 희망이 잉태될 수 있다고 믿는다. 이상적인 내 모습과 현실의 나 사이에 괴리에 아파하지만 말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먼저 챙기는 것이 전환점이자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 10년이라는 시간을 마치고 이제 OMR 답안지에 나의 결과물을 옮겨 적어야 할 순간이다. 시험 자체를 응시하지 않고 고사장을 나오고 싶었던 순간도, 이 시험의 점수야 어떻게 되든 그냥 쓰러져서 잠이나 자고 싶던 때도 있었다. 열렬히 문제를 풀어댔던 건 20대 초반에만 한정되었다. 그래도 다행이자 불행인 건 이 교시가 마지막이 아니라는 점이다. 중요한 건 총점이다. 내게는 다음 교시들이 남아있다. 실수와 실패가 성공의 어머니라는 소리를 나는 전혀 믿지 않는다. 성공을 만드는 건 지난 성공 경험이다. 그러나 실패에서 배울 무언가가 있다는 점에는 어느 정도 동의한다. 최소한 이때 느꼈던 아쉬움을 반복하지는 않으려 할 테니까.


    이 교시 시험의 OMR을 마킹하며 부족했던 날들을 후회하지만, 그래도 다음 교시에는 이러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도 동시에 하게 된다. 오답노트라는 것을 썩 좋아하지는 않지만, 남은 20대의 날들은 이를 정리하며 보내보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라는 생각이다. 어떻게 기억될지 모르는 잠정적인 20대 마지막 크리스마스에, 그래도 이렇게 다음에 대한 희망과 스스로를 향한 격려를 할 수 있게 된 것이 미약한 선물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런 측면에서 해낸 건 쥐뿔도 없었던 20대의 마지막에, 그래도 해냄을 위한 아주 미약한 설계도라도 그려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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