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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hemian Writer Mar 23. 2023

성시경, '한 번 더 이별'

그대는 그대로 행복하세요

'그대'라는 말을 잠시 머금어봅니다.

사랑과 이별을 이야기하는 노랫말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대'라는 말이 참 많이 나와요.

하지만 제가 누군가를 '그대'라고 부른, 혹은 누군가로부터 들은 기억은 없습니다.

연애를 하며 '그대를 사랑합니다'라고 말을 한다면, 어쩐지 겸연쩍은 느낌이 먼저 들 것 같아요.

편지로든 구어로든지요.

'너' 혹은 '당신'이라는 호칭과는 분명 다른 느낌입니다. 좋은 말로 하면, 조금 더 진중함이 느껴지는 단어라고 해야될까요. 그러나 확실히 '그대'라고 말을 하거나 글을 씀에 있어 얼마간의 불편함이 드는 건 사실이네요.

그럼에도 굳이 '그대'라는 단어를 찾아내고 응시하게 된 건, 며칠간 무척 혼란스러웠던 마음을 정리하면서였습니다.

애석하게도 끝내 친구로 남게 된 우리 두 사람의 지금을 받아들이고, 서툴고 부질없는 욕심을 애써 누르는 시간을 가져야 했어요.


저는 글쓰기를 좋아하고, 필요한 단어와 문장을 발견하기 위해 애를 씁니다.

저는 무엇보다 제 곳에 적확하게 쓰이거나 놓인 단어와 문장들로 이루어진 글들을 아낍니다. 글을 쓰는 사람의 책무는 이 단어와 문장들이 들어갈 자리를 잘 찾아주는 일이라 생각해요.

그렇게 단어 하나, 문장 하나를 빼어서도 더해서도 안 되는 글이 좋은 글이라 믿습니다. 사족이 많은 저는 아직 그런 글을 쓰기에는 한없이 멀고 부족하죠.

아무튼, 제 모자란 글쓰기 실력처럼 어리숙한 마음을 애써 정리하면서, 저는 '그대'에 기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대'라는 단어가 가진 무게와 온도가 필요했어요.

그대가 있어서 제 삶이라는 수필이 짧은 시간이었지만 '즐거운 글'이 되었어요. 그대 아닌 그 어떤 사람도 줄 수 없는 소중함을 그대로부터 받았죠. 과분하게 고마웠습니다.

마치 정말 좋은 글과 같았어요. 필요한 단어나 문장처럼, 그 자리 그 시각 온전히 그대만이 절실했던 순간에 그대를 발견했으니까요. 그런 점에서 저는 어쩌면 행운아였네요.

우리가 공유한 삶과 우연, 그리고 인연이 꼭 나쁜 식으로만 낭비되지 않아서 참 다행이었어요.


실은, '그대'라는 꿈을 꾸는 게 매번 즐겁지 만은 않았어요. 어떤 때는 시린 악몽처럼 한없이 서글퍼지고는 했죠.

누군가를 깊이 좋아하고도 아리게 외로울 수 있음을,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새삼 느꼈네요. 이건 나이를 먹어도 '그러려니'가 능숙하게 되지는 않네요.

높은 확률로 우리 둘은 앞으로도 별일이 없다면 긴 시간을 살아낼 테고, 그만큼의 가능성으로 기억 안 서로는 상각되고 사라질 것입니다.

서로가 서로 아닌 누군가에게 반드시 필요한 단어와 문장이 되어, 주어진 만큼의 생을 무탈히 써내려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둘의 삶이 모두 언제나 행복하지는 못해도 초라하거나 불행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먼 훗날이 돼도 제가 그대의 삶이라는 책을 자유로이 읽어낼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으니, 다만 그대를 응원하겠습니다.


부디 건승하세요, 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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