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조금이라도 양심이 있다면
어느덧 서른이야. 신에게는 아직 만나이 찬스가 남아있습니다, 따위의 소리를 반복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 그냥 서른이라고 하다가, 만나이가 시행되면 남들 눈치 보면서 슬쩍 한 두 살 내리게 되겠지. 서른에 대해 꿈 꾼 적이 없으니 이에 대한 환상도 없었지만, 이토록 무미건조할 줄은 몰랐네. 그저 지극히도 평범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음에 물론 충분히 감사하지만, 잠시 감사 인사를 하는 동안에도 가라앉지 않으려 페달을 돌리고 있어야 하는 세상인라는 건 조금 가혹하게 느껴져. 태어나기 전에 신이든 누구든 ‘이게 네 인생의 시나리오야’라고 내밀어줬다면, 이 재미없는 이야기의 주인공은 결코 될 수 없다고 투정을 부렸을 텐데.
창대한 비상이나 힘찬 전진 같은 건 진작에 없었지. 멋지긴 하지만 모두가 그런 대단함을 추구해야 되는 것도 당연히 아니고. 그냥 나처럼 하루하루 꾸역꾸역 살아내는 사람도 있어. 이에 ‘태어나 겨우 그렇게만 살 거냐며 힐난’할 자격은 누구에게도 없고. 그런데 요즘 자책까지는 아니지만 다소간의 아쉬움은 들어. 조금 더 상상해볼 걸. 너무도 긴 삶을 어떻게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 간단히 그려라도 볼 걸. 빈곤했던 고민이 후회 돼. 내 인생인데, 왜 조금 더 주체적이지 못했을까. 사실 억울한 것도 있지. 그냥 열심히 세상의 커리큘럼을 따라가는 것도 벅찼는데, 그런 막연한 미래를 언제 어떻게 꿈 꿀 수 있었냐고 항변하고 싶기도 해. 어딘가에 미쳐 절실히 도전을 했다가 실패하면 ‘그랬구나’라고 다시 기회를 줄 세상도 아니잖아. 그렇지만 그럼에도, 내가 조금 더 나와 나의 시간을 아껴 나의 내일을 생각했다면, 인생이 조금은 더 재밌지 않았을까 싶어.
벌써 1월도 말일이 됐고, 시간이 너무 빨리 흐른다는 자각에 별 생각을 다 하게 되네. 비범한 삶이 꼭 축복은 아니니까. 누구나 대단할 필요는 없으니까. 평범할 수 있음에 안도하고 오늘은 디딤돌 삼아 내일을 준비하는 삶을 누가 감히 무의미하다고 할 수 있겠어. 목에 칼이 들어오지 않는 이상 별로 시간을 되돌리고 싶지는 않아. 입시든 취업 준비든 쉬운 게 딱히 없었거든. 근데 만약 정말 목에 칼이 들어와서 시간을 꼭 돌려야 한다면, 나는 적어도 내가 무엇을 할 때 행복하고 보람을 느끼는지 정도는 생각해볼 것 같아. 이왕 되돌려진 시간이니, 한 일주일 정도는 미친듯이 나 스스로에 대한 고민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어.
사실 행복이라고 적었지만, 행복은 너무 어렵잖아. 조금이라도 행복을 느끼면 그게 고까워서 금방 뺏어가는 느낌이고. 긴 넋두리였네. 우리 삶에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떻게든 불행하지 않게, 그래서 제 몫 정도 하면서 성실히 살아가자. 삶이 조금 양심적인 놈이라면, 이런 권태뿐만이 아니라 작은 환희라도 언젠가는 찾아오게 해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