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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터레인 Jul 08. 2021

왜 나는 학교로 돌아왔을까

공공기관을 떠나 박사과정을 밟게된 이유

회사를 다니면서 수도 없이 퇴사 하는 사람들을 보았다. 전 회사의 퇴사율이 20% 정도라는데, 내가 퇴사할 때 쯤 정확하게 동기 20명 중 4명이 퇴사하였으니 얼추 맞는 셈이었다. 코로나 때문에 왜 퇴사하는지, 다음 목적지가 어디인지 공유할 틈새도 없이 지나가 버려 예상만큼 '왜요? 어디 가세요?' 라는 질문을 많이 받지는 않았다. 그런데 '왜 공부를 다시 하려고 하세요?'라는 질문은 상대적으로 많이 받았다. 사람들도 다시 공부할 마음은 있는데, 쉽게 결정하지 못했으리라 짐작했다. 


공부가 그렇게 즐겁지만은 않다. 그저 학교로 돌아가는 것은 나에게 회사보다 안락한 느낌을 주는 것 같았다.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이 느낌도 돌아갈 데가 있어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학교를 그만둬도 회사로 돌아갈 수 있으니까. 그러다가도, 승진을 하고 월급이 오르면서 공부 생각이 안들기도 했다. 또 그러다가도, 회사 일이 힘들고 반복되는 업무를 하다보면 왜인지 석사도 따보고 싶고, 괜시리 안읽던 책들도 들여다 보게 되고, 남들이 다하는 4시 기상을 실천해봐야 하나- 생각도 들고 [열심히 살자 병]이 도졌다. 그렇게 8년이 갔다.  


업무 상 학교에 계신 분들과 마주칠 일이 많았다. 석사연구원, 박사연구원, 교수 등. 사회성이 떨어지는 이상한 연구자들도 있었지만 자기 분야에 열정을 가진 분들도 많았다. 그런 분들을 보면 나와 주변을 둘러보게 되었고, 점차 60살 이후에 은퇴하면 뭐 먹고 살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장이 되고 나니 마지막 올라갈 자리가 팀장까지인게 눈에 보였다. 회사에서 업무적으로 특출나거나, 정치를 잘해서 이사까지 올라갈 확률은 매우 적다고 생각했다. 깊게 얘기하고 싶진 않지만 회사 분위기도 한 몫 했다. 수년 다닌 직원보다 소위 전문인력 전형으로 채용된 사람만 전문가로 대우하는 회사 분위기, 내부 사람이 내부 사람의 전문성을 신뢰하지 못하는 모습이 실망스러웠다.  


지위는 접어두고, 내가 이 업무를 계속 해서 하면 전문성이 쌓일건지에 대해서도 고민해봤다. 공공기관에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2년마다 보직 순환을 해야했고, 어찌어찌 '나는 전문분야가 이것이오!' 동네방네 홍보해도 인사가 내가 원하는 부서로 발령 받을리가 만무했다. 회사를 다니면서 석사를 했지만 걷어 차이는게 석사학위였고, 전공도 제너럴 해서 전문 분야라고 할 것도 없었다. 국내 박사를 하시는 분이 종종 있었지만 그분들도 상황이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기관 내에서 박사 후의 커리어가 마땅치 않았고, 결국 박사 학위가 있는 과장, 팀장님이 되는 것 이상의 의미부여가 가능할 지 의문이었다. 


몇년 후 어떤 모습이고 싶은지도 상상해봤다. 나를 보호해주던 회사라는 갑옷을 벗으면 뭐가 남을까,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에 대해서 말이다. 거창하지만 복붙하는 기안문 말고, 보고서를 위한 보고서 말고, 내가 연구한 결과물을 논문으로 낼 수 있는 자격과 능력을 갖춘 연구자이자 전문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보건 시스템 분야에서의 내 연구가 개발도상국에, 그리고 지금은 한국에도 기여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고 있다. 


이 모든 얘기를 할 수 없어 그냥 공부가 좋아서 그만 둔다고 대답했다. 지금 안하면 후회할 것 같다고, 마흔이 되어서도 그 때 공부 그냥 시작할걸 반성하고 있을 것 같아서 지금 한다고 했다. 반은 사실이고 반은 거짓이다. 그러고서는 안되면 한국 와서 자그맣게 영어 공부방이라도 얻으면 먹고 살지는 않겠냐고 웃었다. 미국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많은 것이 두렵고 새롭다. 나이가 들어가니까 해외에 사는 것이 마냥 설레고 즐겁지만은 않다. 그치만 선택한 길이니, 많은 길을 돌고 돌아서, 생각에 생각을 거쳐 도달한 곳이니 앞으로 그저 감사히 여기면서 학위과정을 밟아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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