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의 햇살

육아일기

by Rainsonata

2004년 7월 26일


지난 토요일은 집안 대청소를 하느냐, 거실의 소파 시트까지 모두 빨아 널고, 부엌장의 그릇들까지 꺼내서 한 차례 목욕을 시키고, 마루 바닥도 말끔히 걸레질을 하고, 벽에 걸린 액자와 거울들도 반짝반짝 윤이 나게 닦아놓았다. 청소는 늘 시작이 머뭇거려져서 그렇지 일단 마치고 나면 그 시원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금쪽같이 아끼는 주말의 하루는 그렇게 지나갔기에, 스톰과 나는 일요일 일찍 아침을 먹고 랄라와 서둘러서 짧은 여행길에 올랐다. 맛있는 커피 두 잔을 가는 길에 사서 마시면서, 우리는 집에서 대략 한 시간 정도 걸려 북쪽에 위치한 호수의 한적한 주택가에 도착했다.


토론토 부유층의 별장들이 띄엄띄엄 들어선 이 동네는 주말을 보내기 위해 찾아온 도시인들이 요트, 제트스키, 카약, 카누 등을 타면서 하루를 열고 있었다. 우리가 자리 잡은 곳 정면에는 넓은 호수가 펼쳐져 있었고, 왼편에는 20평 남짓의 잔디밭이 있어서 한층 평화로워 보였다. 그리고 오른편에는 모닥불을 피어놓았던 자리가 보였는데, 햇살이 가득 찬 잔디밭과는 달리 많은 나무들이 크고 넓은 돌들 위로 그늘을 만들어 놓고 있었다.


한가롭고 조용한 이곳에 가끔씩 배를 띄우러 찾아오는 몇몇 사람들 말고는 어느 누구도 우리의 시간을 방해하지 않았다. 랄라는 챙모자를 쓰고 모래밭에 앉아서 한동안 모래놀이 장난감으로 즐겁게 놀더니, 가재를 잡겠다고 물로 들어간 아빠를 따라 아슬아슬하게 호수에 발을 들여놓고 걸어 다니며 구경을 했다. 그런 둘을 그늘 저편에 앉아 바라보며 가져온 책을 읽고 있으려니, 내가 좋아하는 노천명 시인의 <이름 없는 여인이 되어>의 주인공이 된 것 같았다. 그리고 지금 느끼는 이 행복감이 내 것이되 내 것이 아닌 듯한 묘한 감상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스톰이 낚싯대를 드리우자, 랄라가 그 옆에 서서 앙증맞게 조약돌을 호수로 던지기 시작했다. 랄라가 던진 돌은 일 미터도 채 나가지 못했지만, 물 위에 퐁당퐁당 소리를 퍼뜨리며 떨어지는 그 모습이 재미있어서인지 랄라는 오랫동안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계속 작은 돌들을 물가로 던졌다. 정오가 조금 지났을 무렵, 스톰이 랄라를 번쩍 안아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을 눈으로 따라가 보니, 물가 위에 쏟아지는 햇살이 마치 인어공주의 비늘같이 무지갯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스톰이 오늘 아침 차 안에서 "아이는 부모 혼자 키우는 것이 아닙니다. 자연과 함께 키우는 거죠"라고 말한 지인이 있다면서 그분의 말씀이 진정 가슴에 와닿더라는 말을 했을 때, 나도 "맞아 맞아" 하며 큰소리로 맞장구를 쳤지만, 이렇게 맑은 공기와 유리같이 투명한 햇살과 한나절 벗하다 보니, 그분의 말씀이 내 가슴에도 잔잔한 물결을 일으키고 있었다.


자연에 비하면 우리는 정말 아주 조금밖에 랄라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없다. 그래서 나는 흐뭇하다. 엄마도 아빠도 랄라도 자연 앞에서는 나이와 상관없이 늘 어린아이로 머물 수 있지 않은가. 랄라는 앞으로 스스로 부서지는 햇살을 마음으로 느끼고, 그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몸짓으로 글로 그림으로 또는 우리가 들여다볼 수 없는 랄라만의 상상의 세계로 표현해 나가겠지. 오늘 우리 가족이 함께 바라본 호수의 햇살이 모두의 마음에 일렁임을 남겨 놓았듯이, 랄라도 자연이 가져다주는 신비스러운 아름다움에 매료될 수 있는 숙녀로 성장해 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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