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운동화

육아일기

by Rainsonata

2004년 7월 30일

어젯밤 랄라도 잠들고 난 후, 스톰이 자꾸 먼저 들어가 자라고 권하길래 침대에 누워 책을 읽고 있는데 방문이 열리면서 스톰이 조그만 소리로 물어왔다.

"혹시 우리 못쓰는 칫솔 있어?"

'이 밤중에 웬 망가진 칫솔을 찾는담...' 하는 생각과 '근데 뭐에 쓰려고 하지?' 하는 궁금증에 못 이겨 발딱 일어나서 스톰이 있는 곳으로 가봤다. 근데 아니 이게 웬걸! 우리 랄라의 손바닥 만한 운동화가 세면대에 담겨 있는 게 아닌가.

"오잉? 이건 왜?"

"응... 랄라 운동화 좀 빨아놓고 자려고…"

"어어..." (이때 별달리 할 말이 없는 게, 사실 엄마가 꼼꼼했었다면 미리 깨끗하게 빨아 줄 수도 있었는데 하는 스스스로에 대한 자책 + 스톰이 랄라를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이 느껴져서 나의 사고능력에 '일시정지'를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그렇게 말을 얼버무린 나는 칫솔보다는 손잡이가 달린 욕실 청소용 브러시가 닦기 편할 거라며 스톰의 손에 쥐어주었다. 그러고는 옆에 있는 변기 뚜껑을 닫고 그 위에 폴딱 올라앉아 '쓱쓱 싹싹' 랄라의 운동화를 세탁하는 스톰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랄라는 참 좋겠다. 이렇게 좋은 아빠가 있어서..."

"뭘... 별것도 아닌데... 우리 랄라 발이 꽤 컸어, 그지? 옛날에는 발 크기가 내 손가락 만했었는데... 제법이야. 이제는 두발로 점프도 할 줄 알고 말이야."

팔을 열심히 움직이면서 랄라의 조그만 운동화를 이리 보고 저리 보는 스톰의 얼굴에는 뿌듯함이 가시지 않았다. 세면대 앞 거울에는 랄라 운동화에서 나온 묶은 떼가 섞인 뿌연 거품이 안개꽃처럼 방울방울 달려있고, 그 앞에서 스톰은 어마어마한 힘으로 랄라의 운동화를 닦기에 여념이 없었다. 스톰은 어느새 뽀얗게 변신한 운동화를 들고 몇 차례 물에 헹구더니, 탁탁! 털어서 베란다 빨래 걸이 위에 얌전히 걸쳐놓았다. 그리고 다시 욕실로 돌아와 세면대 거울에 튄 거품을 타올로 싹싹 닦아놓고는 "내일이면 마르겠지?" 하며 싱긋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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