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日是好日
아침에 '소녀의 기도'를 연주한다.
어릴 적 다리가 피아노 페달에 닿지도 않았을 때 배웠던 '소녀의 기도.'
그때는 정말 소녀가 앉아 '소녀의 기도'를 연주하고 있었겠지? 앙증맞고 귀여웠을까?
아니면 작은 아이가 더 작은 손으로 피아노 건반을 치는 모습이 안쓰러웠을까?
인생이 아이러니 한 건,
내가 소녀였을 때 열심히 음표를 따라가며 쳤던 '소녀의 기도'가 무미(無味)였다면,
나이를 먹고 연주하는 '소녀의 기도'에서는 다채로운 느낌이 묻어난다는 것이다.
이제는 소녀가 아닌, 그래서 지난날들은 모두 아름답다는 표현처럼,
나의 소녀 시절을 떠올리기도 하고,
내가 사랑하는 우리 랄라의 소녀다움을 떠올리기도 하며,
중년의 내가 '소녀의 기도'를 연주한다.
'소녀의 기도'는 이렇게 맑고 청아한 아침에 어울리는 곡이기도 하다.
인생의 사계절 중 소녀의 시기는 봄에 비유할 수도 있겠고,
하루 중에서는 아침에 비유할 수도 있을 테니까.
올봄은 유난히 늦다.
하지만 봄은 이미 우리 곁에 머무는지도 모른다.
여름이 오면 어느새 봄이 지나갔음을 느끼듯이,
우리도 늦깎이 숙녀가 되고 나서야 소녀의 추억을 떠올리곤 한다.
인생은 늘 그렇게 조금 뒤늦게 깨닫고,
뒤늦게 아파하고, 뒤늦게 미안해하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