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日日是好日

by Rainsonata

2005년 3월 22일


이곳에도 서서히 봄기운이 돌기 시작한다. 쌓여있던 눈도 하루가 다르게 녹아내리고, 겨울 내내 숨어있던 다람쥐들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잔디밭과 나무 위를 달리곤 한다. 오랜 추위로 마치 퇴색된 듯한 느낌을 주던 주위 풍경들은 하나둘씩 연둣빛을 발하기 시작했고, 공원과 산책로에도 생명감이 돌기 시작한다. 쇼윈도에는 봄옷으로 새롭게 꽃단장을 한 늘씬한 마네킹들이 하루 종일 눈웃음을 띄고 손님을 반긴다. 이제는 방한복이 부담스럽게 느껴져, 돌아오는 주말에는 겨울옷과 봄옷의 순서를 바꿔 정리해 놓아야 할 듯싶다. 늘 그렇듯이 춥다고 움츠려 있는 사이, 봄은 생각보다 우리 곁에 성큼 다가서 있곤 한다.


봄기운을 느끼며 문득 이런 생각을 해본다. 계절의 변화를 뒤늦게 깨닫게 되듯이, 우리는 바쁜 일상을 핑계로 변화하는 과정에 눈길을 주기보다 그 결과에 놀라게 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에 대해서.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라는 우리 아가들이 그렇고, 한 해가 다르게 건망증이 심해지시는 엄마, 작년보다 야위신 아빠의 어깨, 하얀 눈꽃 같은 할머니의 머리카락, 하늘을 올려다보시는 할아버지의 그윽한 눈빛, 조금씩 옅어지는 남편의 머리숱, 눈가에 머무른 채 지워지지 않는 아내의 잔주름, 변성기가 찾아온 아들, 어느새 소녀에서 숙녀가 되어버린 딸.


그렇게 우리 주위에서 조금씩 그리고 서서히 생겨나는 작은 변화의 움직임들을 우리는 바쁘다는 이유로 충분한 관심을 보이지 않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변화의 과정보다는 그 결과에 더욱 민감하게끔 이미 길들여져 있는 건 아닐까. 아무런 성찰도 없이 목적과 결과만을 중시하는 사고방식으로 삶을 계속 꾸려나간다면 나도 훗 날에는 "아이 낳아 기르고 남편 뒷바라지하다 보니 어느새 환갑이야." 하는 쓸쓸한 넋두리를 하게 되겠지.


우리의 인생이 하나의 모자이크 작품을 완성해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면, 주위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변화나 움직임에 지금보다 더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갖게 되지 않을까.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씩 하나씩 조각을 맞추어 나가는 과정이 없이는 삶의 행복이라는 작품의 완성은 없을 테니까. 평소에 최선을 다하는 삶. 말처럼 쉽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최선을 다하기 위한 노력은 해보고 싶다. 평범하게 산다는 것 또한 결코 쉽지 않음을 알고 있는 사람은 최선이라는 단어가 주는 그 무게 또한 이해할 수 있으리라.


시간이 흐른 어느 날, 희끗희끗해진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스톰과 함께 노을 지는 바다를 바라보며 지나온 날들을 이야기하고 싶다. 그날이 오면 단지 늙어버린 서로를 위로하기보다 평생 함께 나눠온 작은 일상들이야 말로 우리의 행복의 거름이 되었노라고, 당신과 함께여서 행복했노라고 두터워진 그의 이마에 조용히 입맞춤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