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언

日日是好日

by Rainsonata

2007년 10월 25일


<상실과 애도> <실존주의 심리학>에 대한 공부가 깊어갈 무렵, 교수님께서 모두에게 내주신 과제가 있다. 그건 다름 아닌 미리 쓰는 유서. 아직도 그날 느꼈던 강의실의 술렁임을 기억하고 있다. 더욱 흥미로웠던 점은 교수님께서 주위의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유서를 써보도록 적극적으로 권유해보라고 말씀하셨던 부분이다. 나는 수업이 끝나자마자 스톰에게 교수님의 말씀을 전했고, 스톰은 한 번 생각해보겠다고 말한 게 전부였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 스톰이 아래의 유언장을 내게 내밀었다.


삶이 멈출 어느 순간에 꼭 남겨야 하는 마음속 말들을 이제 하나씩 적어 나가야 할 것 같아, 이제부터 가끔씩 말을 남기려 한다.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들, 하늘이 맺어준 인연들. 내가 숨을 쉬며 세상에 나갈 수 있게끔, 그리고 삶의 의미를 하나씩 채워 주었던 이들에게 나의 삶의 의미를 남기려 한다.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한 나의 아내 그리고 영원한 친구,


시간은 자꾸 흘러가고 있었는데, 차마 못다 한 말들이 있을까, 여기에 적어야 할 것 같다. 일상이 주었던 지친 삶이 마음속 말들을 다 못 전했구나. 눈을 감으면 맴도는 소리가 눈을 뜨면 참으로 마음속 깊이도 가라앉아 버렸구나. 사랑한다는 그리고 함께 있음이 가장 편했던 여자, 내 여자!


많은 다름으로 인해서, 더 많이 얘기하고 시간을 보내야 했던, 그래서 결국 찾은 건 다름으로 인해 더 아름다웠다는 걸, 그리고 그 다름이 결국 하늘과 땅처럼 함께 있어 더 성스러웠다는 걸. 아마 처음부터 느끼고 있었던 것 같아, 비록 그 다름으로 인해 많이 아파했었지만.


내 생이 가장 충만할 수 있었던 그대가 주었던 사랑, 그리고 나누었던 영혼, 내가 마지막 마셔드린 공기와 함께 영원히 나와 함께 할 거라 믿어. 나의 아내가 되어, 즐거웠던 많은 시간들 감사하고 더 함께 할 수 없음이 더없이 아쉽지만, 아마 어디선가 다시 만나 못다 한 인연 함께 할 수 있을 거라 믿어. 함께 나누었던 지난 시간들... 고마워!


랄라가 태어나던 날, 나를 좀 더 많이 닮았던 랄라의 눈망울 속에서 그대를 보았어. 나에게 가족을 안겨주었던 그대, 해서 새로운 삶의 의미를 보여준 그대, 고마워. 우리 랄라 아빠로 랄라 엄마로 충분한 노력을 했는지, 나중 랄라의 삶 속에서 알 수 있을 거야. 랄라에게 좋은 엄마로 많은 노력 해주어서 고마워.


랄라야! 아빠가 더 이상 이 세상에 없을 때, 이 편지를 보겠구나. 이제 아빠가 세상과 마지막 인사를 준비해야 하는데, 우리 랄라 한데 꼭 할 말이 있어. 우리 랄라 참으로 씩씩하고 건강하게 자라주어서 너무 고마웠다. 이제 랄라도 많이 커서 헤어짐이 무엇인지를 이해할 수 있어서, 아빠 좀 편하게 적을 수 있겠어. 우리 랄라가, 아빠가 없어도 세상을 헤쳐 나갈 수 있을 거라고 믿어. 옛날 랄라가 아빠 목에 앉아서 길을 찾아가던 것과 똑같을 건데, 아빠의 영혼이 그래도 랄라와 함께 있을게. 아빠가 우리 랄라에게 행복과 건강한 삶이 무엇인지 스스로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했었는데, 충분했는지 모르겠구나. 할아버지가 아빠에게 주신만큼 다 주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충분하지 못했다면, 아빠 용서하길 바란다.


엄마가 많이 외로울 거야. 아빠가 없어서 운전하기도 힘들 거고, 장보고 물건 옮기기도 힘들어할 거고, 밤에 혼자 있어 무서워할 거고, 매달려서 비빌 아빠가 없어서 또 힘들어할 거야. 그리고 엄만 누군가 말벗이 필요한데, 좀 큰소리로 얘기해도 무던히 들어줄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것도 힘들 거고. 우리 랄라가 엄마 가끔씩 찾아가서 함께 밥도 먹고, 나들이도 가야 한다.


그렇구나. 우리 랄라가 엄마가 되겠구나. 참으로 아쉽구나. 아빠가 함께 할 수 없어서, 우리 랄라의 아가를 볼 수 없겠구나. 건강하게 아이 잘 키우고, 엄마 아빠가 알려준 행복한 길을 갈 수 있도록 알려주어야 한다. 아이를 키우는 건 많은 참을성과 이해가 필요하단다. 아빠가 랄라 아가들과 함께 할 수 없어서 참으로 미안하고 서글프구나. 건강한 랄라가 건강한 엄마가 될 수 있을 거야, 아빠가 기도해 줄게.


그럼, 이제 아빠 가슴속에 있었던 말 이것저것 다 한 것 같아. 함께 가족으로 있어줘서 너무 고마웠고, 죽음 다음에 또 무엇이 기다리고 있다면, 우리 다시 꼭 다시 만나자.


Rainsonata, 함께 해주어서 고마워.

나의 딸 랄라야, 너무 슬퍼하지 말아야 한다.


그럼 즐거운 생을 기원하며 아빠가 그리고 Storm 이...


2007년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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