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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과 평온

追慕

by Rainsonata

2010년 8월 13일


할머니의 장례와 사십구재를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오자마자, 나는 할머니와 찍은 사진을 작은 액자에 담아, 우리 집에서 가장 해가 잘 드는 벽난로 선반에 놓아두었다. 두 돌을 넘기지 않은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할머니 옆에 서있다. 나와 눈높이를 맞추시기 위해 몸을 낮추어 앉은 할머니의 모습. 그리고 유난히 고운 할머니의 피부가 눈부시다. 우윳빛을 띄는 피부를 가진 우리 할머니야 말로 피부미인의 원조시다. 할머니의 살은 보드랍고 촉촉하고 포근한 냄새가 났다. 그래서 자꾸 비비고 있으면 스르르 잠이 쏟아지고는 했다. 할머니를 보내드려야 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내 손이 더듬어 찾던 할머니의 살. 이제는 꿈이 되어 버린 나의 할머니.


꿈에서라도 할머니가 보고 싶어 기다리고 또 기다린 지 63일째.


드디어 할머니께서 내 꿈에 찾아오셨다. 그런데 할머니의 얼굴은 보이지 않고 할머니께서 주고 가셨다는 선물만 랄라 손에 들려 있었다. 랄라가 가지고 온 이쁜 바구니 안을 들여다보니 핑크빛 꽃다발 한 묶음, 내가 좋아하는 적색 체리 한 봉지가 담겨 있었다. 그리고 거실 한편에는 할머니께서 놓고 가신 기품 있는 앤틱 괘종시계 하나가 놓여있을 뿐이었다. 혹시 할머니의 뒷모습이라도 볼 수 있을까 하고 현관문을 열고 살폈지만, 칠흑 같은 어둠만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다 깨서 스톰 한데 꿈 이야기를 했더니, 평소 할머니 성품과도 같으시다며 마음을 추스르고 조금 더 잠을 청하라고 했다. 명치가 얼어 버릴 것 같은 고통 속에서도 잠시 내 마음에 평온이 깃들 때가 있다. 할머니의 영혼이 나와 함께 한다고 느껴질 때가 그렇다. 할머니께서 내 어깨를 다독다독 해주시며 "아가, 피곤하니 그만 잠들거라" 하고 말씀해 주실 때 나는 30분이라도 아주 달콤한 휴식을 취하곤 한다.


어려서부터 죽음에 대한 공포가 유난히 많았던 나. 할머니께서는 마지막 가시는 길, 오랜 시간 나를 부여잡고 있던 죽음에 대한 무서움과 두려움을 거두어 가셨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죽음을 떠올릴 때 정체모를 블랙홀로 빠져들지 않는다. 나에게 죽음은 꿈과도 같다. 할머니께서 그곳에 계시기 때문이다. 결국 죽음도 할머니와 나를 갈라놓을 수는 없다. 우리의 사랑은 시공간을 뛰어넘고, 생사를 초월하는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많이 슬프기는 하되 절망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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