謹弔
2010년 5월 21일
금요일 오전 비가 촉촉이 내리고 있다.
이제 비가 내리면 감상에 젖기보다, 지난달에 심은 아기 잔디들의 생존에 모든 신경이 쏠린다. 조금은 농부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된 것도 같고, '단비'가 주는 해갈(解渴)의 느낌을 피부로 느낄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요즘 흙과 가까이 사는 삶에 충만함을 느낀다.
손길이 닿은 만큼 정성을 기울인 만큼 그에 맞는 결실을 보여주는 땅. 뿌린 만큼 거둔다는 극히 당연한 이치에 이제야 조금씩 눈을 뜨고 있다. 그리고 인간의 유한성과 자연의 무한성 사이를 오가며 '공존'과 '조화'라는 단어를 가장 많이 떠올리고 있다. 작은 씨앗이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우고, 잎을 내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다시 씨앗을 떨구는, 한편으로는 단조롭고 또 한편으로는 경이롭기 그지없는 과정을 모든 육감을 통해 관찰할 수 있음은 더없이 소중한 경험이며 아름다운 일상이다.
물론 나의 연상 심리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흙과 함께 하는 삶 속에서 배우고 있는 교훈들이 도화선이 되어 나의 인간관계에 불을 지피고 있다. 아마 살면서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하고 사는 건 처음이 아닐까 싶다. 어떤 목표나 새로운 도전을 위한 계획이 아닌, '나'와 '너' 그리고 '우리'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며 지내고 있다. 결국 "나는 누구인가"라는 화두로 되돌아오지만, 그렇게 돌고 도는 생각 속에서 한동안 잊고 지냈던 수많은 나의 잘못과 말빚이 새록새록 움트는 소리를 듣는다.
이번 주 월요일, 내 친구의 친구가 목숨을 잃었다. 2년 동안 힘겨운 병마와 싸우다 이제 그녀는 새로운 곳으로 여행을 떠났다. 직접 만나서 얼굴을 본 적도, 목소리를 들어본 적도 없는 친구지만, 우리는 분명 보이지 않는 내 친구의 영혼을 통하여 한 순간이나마 함께 했을 것이다. 순수하고 맑았던 그녀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