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日是好日
2010년 5월 1일
5월의 첫날.
오늘은 사랑하는 사촌 동생이 아름다운 신부가 되는 날이고, 하지만 함께 자리를 할 수 없어 많이 아쉬운 날이기도 하고, 스톰이 열흘간의 출장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하루 전 날이기도 하다.
요즘 감사하는 건,
지난주 내내 스톰이 없는 동안 잔디밭이며 정원의 나무들과 화초들을 혼자 가꾸어야 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는 점이다. 나는 이른 아침과 노을이 지는 초저녁에 호수와의 싸움을 했다. 100m 나 되는 기나긴 호수를 집 앞, 옆, 뒤를 끌고 다니면서 구석구석에 물을 주는 것은 비비 꼬이는 호수와 그 안에 담긴 물의 무게와의 씨름이기에 처음 며칠은 힘이 부쳐서 정말 힘들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침에는 새소리와 함께 오후에는 내가 좋아하는 재즈를 들으며 맨발로 잔디밭에 물을 줄 수 있을 만큼 즐기는 마음이 커졌다.
잔디에 물을 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생각하는 시간. 요즘 나는 나의 주변의 소중한 인연들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며 지내고 있다. 특히 할머니와 부모님과의 인연에 대해 가장 많이 생각하고 추억하고 있다. 그런데 며칠 전, 놀라운 사실을 새롭게 깨달은 것이다. 다름 아닌 나의 사춘기에 대한 해석이다. 난 솔직히 크면서 그다지 사고를 치거나, 어른들 말씀을 거스르거나, 학교에서 큰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다. 그래서 우리 엄마는 우리 딸은 사춘기가 없었던 것 같다고 주위분들에게 늘 자랑처럼 말씀해 오셨고, 나도 그냥 그렇게 믿고 살아온 듯싶다. 그런데 혼자서 조용히 나의 지나온 시간을 되짚어 보니, 난 올해 들어서야 비로소 기나긴 사춘기의 터널을 빠져나오지 않았나 싶다.
우울증에도 기분부전 장애 (Dysthymic Depression Disorder) - 우울 증상의 정도가 심하지 않지만 그 시발점을 찾을 수 없을 만큼 아주 오랜 기간 동안 지속되어 오는 우울증세의 하나 - 가 있는 것처럼, 나의 사춘기도 그와 마찬가지가 아녔을까 하고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 것이다.
이제는 세상이 조금 더 또렷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지금까지 내가 받은 사랑에 대해 말이 아닌 가슴으로 감사하기 시작했고, 작은 행복들을 느낄 수 있는 여유가 생겨나기 시작했고, 살아가면서 왜 원칙과 양심에 충실해야 하는지 깨닫기 시작했고, 나의 정체성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요즘 울컥하고 자주 우는 버릇이 생긴 것도, 내가 할퀸 상처로 아파했을 사람들, 내가 돌린 등에 외로웠을 사람들에 대한 잔상이 뒤늦게 아무런 예고 없이 가슴에 젖어들어서다.
이제야 수년 전에 읽은 달라이 라마의 <용서>라는 책이 조금씩 여운을 남기고 있다. 그리고 진정한 용서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나를 수용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타인의 개성을 존중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얼마 전부터는 <연금술사>의 주인공 산티아고를 자주 떠올리기도 한다. 꿈을 찾아 떠나는 기나긴 사막에서의 여정이 나의 마음을 일렁이게 한다. 아직 한 번도 직접 느껴보지 못한 사막의 밤. 사막의 바람. 사막의 별들을 상상하며 언젠가는 내발로 모래언덕을 오르고, 오아시스를 만나고, 쏟아지는 별들을 덥고 잠드는 꿈을 꾼다.
사막을 떠올릴수록 설렌다. 그래서 오늘부터 내 손에는 오랜 길 벗 같은 <어린 왕자>가 들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