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日是好日
2010년 3월 15일
야호!
오늘 기다리고 기다리던 새로운 세탁/건조기 세트가 집으로 배달이 되었다. 지난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 선물로 스톰이 장만해 준 건데, 배달이 늦어지면서 꼬박 한 달을 기다려야 됐던 나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선물이다.
나는 아직도 결혼 3개월째 우리가 장만한 첫 가전제품인 전기밥솥을 품에 안고 집에 오던 날의 감동을 잊지 못하고 있다. 결혼과 함께 넘치는 편리함보다는 간소함과 검소함을 선택한 스톰과 나. 그래서 내 집 장만을 할 때마다 늘 이전 주인이 사용하던 가전을 그대로 구입해서 사용해 왔었고, 이번에 이사 와서도 그 점은 예외가 아니었다. 그러나 건조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밤늦게까지 잠자리에 못 들고 빨래를 점검해야 하는 나를 안타까워하던 스톰으로부터 생각지도 않은 큰 선물을 덜컥 받게 된 것이다.
뒤돌아보면 스톰과의 결혼생활은 뭐든지 쉽게 사고, 쉽게 주고, 쉽게 버리고, 또 쉽게 사는 삶에 익숙해져 있던 나에게 처음으로 충동구매의 자제력과 건강한 경제관을 키울 수 있는 자양분을 만들어주는 귀중한 시간이었음을 깨닫는다. 처음에는 부족하게 사는 삶이 마치 소꿉장난 같아서, 나는 영화 속의 주인공을 연기하듯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시간이 차곡차곡 쌓이고, 랄라가 성장하고, 주부와 학생 역할을 병행하고, 직장인의 삶을 살게 되면서, 나에게 절약은 더 이상 드라마가 아닌 현실이 되었다.
편안한 마음으로 자기의 분수를 지키며, 과욕을 멀리하여 자신의 처지에 맞게 만족하며 살아간다는 '안분지족'(安分知足)의 가르침처럼, 열심히 벌어서 지혜롭고 계획 있게 돈 쓰는 방법을 배우는 것 또한 살아가면서 우리가 배워야 하는 중요한 항목 중 하나인 듯싶다. 자신에게는 엄격하지만, 남에게는 늘 너그러운 스톰. 오늘 내내 내가 좋아하는 모습만 봐도 자기는 너무 행복하다는 스톰. 이렇게 좋아할 줄 알았으면 진작에 사줄걸 그랬다며 오히려 미안해하는 스톰. 그런 스톰의 마음을 너무도 잘 알기에 나에게는 눈물 날 만큼 고마운 선물이다. 앞으로 한층 더 업그레이드된 뽀송뽀송한 빨래를 신속하게 스톰과 랄라의 옷장에 넣어줄 수 있어서 난 하늘을 날 듯 기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