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日是好日

by Rainsonata

2012년 9월 18일


랄라가 5학년이 된 지 한 달이 지나서야 처음으로 함께 점심을 먹으러 학교로 향했다. '구쉬구쉬 엄마' 사건이 있은 후, 5학년이 된 랄라의 홀로서기가 시작되었고, 나는 우리의 관계에 있어서도 어떤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늘 내가 먼저 랄라에게 다가가서 이야기를 시작했던 대화의 방식을 버리고, 랄라가 스스로 나에게 무언가를 제안하고 이야기해올 때까지 기다리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좀 유치하게 보일 수는 있지만 모녀관계에서, 특히 사춘기를 앞둔 랄라와 나의 관계에서 '밀당'은 좋은 특효약의 효험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얼마 전부터 엄마는 나를 별로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고 혼잣말처럼 투덜대는가 하면, 요즘은 왜 구쉬구쉬 하지 않은 거냐고 실망스럽게 몇 마디 내뱉기도 하고, 급기야 지난주에는 5학년 시작한 지가 한 달이 지났는데 어쩌면 점심 먹으러 학교에 단 한 번도 오지 않을 수가 있냐고 나한데 불만을 토로했다. 그리하여 따님의 공식 초대를 받고 이 유치한 엄마는 따뜻한 도시락을 챙겨 랄라의 학교를 찾았다.


카페테리아에 앉아있으니 랄라 저학년 때의 담임선생님들께서 한 분 두 분 인사를 나누러 내 자리에 오시기도 하고, 몇몇 아이들이 나에게 손 흔들어 아는 척을 하기도 하고, 낯익은 학부형들과 안부를 나누느냐 생각지도 않게 분주해졌다. 더군다나 작년에 비해 부쩍 늘은 학생수 때문에 실내는 아이들의 목소리로 술렁거렸다. 그렇게 나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가고 있을 무렵, 시계를 보니 점심시간을 한참 넘겼는데도 랄라네 반 아이들의 모습은 깜깜무소식이었다. 언제 우리 랄라가 모습을 드러낼까 하며 복도를 향해 활짝 열려있는 문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문득 '문(門)'이라는 화두(話頭)와 조우했다.


첫 번째. 단단히 닫혀있는 문을 바라보고 있으면 단절 또는 고독과 함께 기쁨과 반가움의 환희가 공존함을 느낄 수 있다. '모 아니면 도'라는 표현처럼, 닫혀있는 문은 영원한 단절의 의미로 남을 수 있는 가능성과 어느 순간 갑자기 힘차게 열릴 수 있는 가능성 두 가지를 모두 손아귀에 쥐고 있다. 그러기에 나는 닫힌 문에서 반전의 묘미를 느낀다. 이건 비단 손으로 만지고 눈으로 볼 수 있는 '문(門)'에만 국한된 표현은 아닐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 문화와 문화 사이, 국가와 국가 사이에도 소통과 교류가 철저히 단절된 경우를 우리는 쉽게 접할 수 있다. 하지만 베를린의 장벽이 한순간에 무너져, 분단 민족이 통일국가를 이루고, 나아가 유럽공동체와 국제 정치의 흐름을 바꾸는 모습을 내 눈으로 똑똑히 보았기에, 닫혀있는 문이라고 쉽게 포기하고 돌아설 수 이유는 없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통일의 문' 역시 이렇게 힘차게 열리길 나는 간절히 소망한다.


두 번째, 활짝 열려있는 문을 보면 격식 없는 편안한 일상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동네 어린아이들이나 어르신들 할 것 없이 스스럼없이 오가고 쉬어갈 수 있는, 그런 쉼터 같은 시골집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오랫동안 서로를 알고 지내온 친구, 이웃, 가족들의 마음의 문은 아마 이렇게 너털웃음 지으며 두 팔을 활짝 펼친 채 열려있을 것이다. 그 열린 문을 통해 시원한 바람이 드나들고, 귀여운 강아지들이 꼬리를 흔들며 문턱을 뛰어넘고, 반가운 소식과 슬픈 소식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들이닥친다. 그리고 비가 오는 날에도 열린 문은 우리를 반기고, 눈이 오는 날에는 툇마루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문 앞마당에 소복이 쌓이는 탐스러운 눈을 바라볼 것이다. 열려있는 문은 바라만 보고 있어도 생기가 있어 좋다. 열려있는 문에서는 가슴이 따뜻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냄새가 난다.


세 번째, 반쯤 열려있는 문을 보면 명치끝 언저리에서부터 무언가 꼬물꼬물 요동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것은 기다림일 수도 있고, 그리움일 수도 있고, 여운일 수도 있다. 우리는 컵에 물을 반쯤 채워놓고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성향이 낙관론자인지 비관론자인지 이야기하곤 한다. 그에 빗대어 말한다면, 난 낙관론자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반쯤 닫힌 문이라는 표현 대신, 반쯤 열려있는 문이라고 이미 표현했으니까. 반쯤 열린 문 저편에서 스르르 문이 열리면, 빼꼼히 고개를 내밀고 오랜만에 소꿉친구의 집을 찾아온 또 다른 소꿉친구의 얼굴, 열린 문 틈 사이로 몰래 첫사랑을 훔쳐보고 있는 모습, 조심스레 앞발로 열린 문을 밀어보는 야옹이의 소심한 야~옹~, 그리고 좁은 문 사이를 사뿐히 휘감는 한복 치맛자락, 화사한 시폰 원피스가 일렁이는 물결, 아직 문 틈에 남아있는 떠난 사람의 향기.


잠시 나 홀로 생각놀이에 빠져있는 사이, 복도에서 아이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카페테리아로 들어온다. 작년에 비해 부쩍 성장한 아이들이 대견스럽다. 대부분 사내아이들의 키는 이제 나보다 더 크지 싶다. 그리고 저 멀리 랄라가 보인다. 나의 아가. 나의 사랑.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내 강아지가 나를 보며 환하게 웃고 있다. 나의 랄라가 엄마의 활짝 열린 마음의 문으로 들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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