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그러진 모순

日日是好日

by Rainsonata

2012년 12월 10일


지난달 초등학교 상담 교사로부터 앞으로 일 년 동안 멘토가 되어 돌보아 주었으면 하는 학생이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선생님 말씀에 의하면 나의 맨티가 될 학생은 초등학교 1학년 만 여섯 살을 넘긴 여자아이라고 했다. 아이의 이름은 E. 부모님은 생활고로 인한 별거 중이며, 4남매 중에 셋째인 E는 올 초 태어난 남동생이 난치병을 앓게 되면서, 가뜩 네 명의 자녀를 간신히 돌볼 수 있었던 엄마마저도 몇 달째 막내의 병간호를 위해 병원에서 생활중이라고 했다. 그러다 보니 아직 엄마의 관심과 사랑의 손길이 필요한 E는 본의 아니게 꼬마 어른이 되어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아직 아이의 얼굴을 마주한 적도, 목소리를 들은 적도 없지만, 상담교사의 설명을 듣는 동안 가슴이 싸해져 목을 바늘로 찌르는 것 같은 따끔함을 느꼈다. 이제는 익숙해질 만도 한데, 여전히 나는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아이들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매번 통증을 느낀다. 아이러니하게도 랄라에 대한 사랑이 깊어가면 깊어갈수록, 가족으로부터 소외된 아이들, 사랑의 울타리 밖에서 서성이고 있는 아이들, 따뜻한 관심이 오히려 부담스러운 아이들에게 다가가 그들과 눈을 맞추고, 그들의 이야기를 가슴으로 듣고 싶은 마음은 더욱 커져간다.


처음 만나게 될 나의 맨티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며 초등학교 1학년 학급들이 모여있는 복도에 서있는 동안, 어느새 고만고만한 아이들이 점심시간을 마치고 교실로 들어오기 위해 아기오리들처럼 나란히 줄지어 복도로 밀려들기 시작했고, 나는 호기심 가득 E를 찾아보기로 했다. 아직 아이의 얼굴을 모르는 나에게는 어떻게 보면 그녀와의 첫 만남을 은밀히 즐기는 나만의 일방적인 통과의례와도 같았다. 이미 복도에 서 있는 백여 명의 아이들 중에서, 친구의 목덜미를 응시하고 서있는 장난기와 수줍음이 공존하는 눈망울의 주인공에게 나의 초점이 맞춰졌다. 난 순간 분명 그녀가 E 일거라고 예감했고, 아이가 내게 좀 더 가까이 걸어오는 순간, 나는 우리의 만남이 인연을 넘어선 필연이라는 울림을 느꼈다. 그 이유는 불과 그녀를 만나기 이틀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E를 만나기 이틀 전 아침, 나는 캘리포니아에서 여행 온 친구와 함께 산책을 하고 있었다. 친구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자연스럽게 산책로 게시판으로 눈길이 갔다. 평소에는 행사 안내나 광고들로 가득하더니, 이 날은 그 넓은 게시판 중앙에 빛바랜 안내문 한 장만이 나부끼고 있었다. 한 발 더 다가가 보니 안내지에는 막 돌을 넘긴 정도의 두 아이의 사진이 실려 있었고, 그 밑에 <수술 전> <수술 후>라고 각각 적혀있었다. 다름 아닌 '구순열'을 앓고 있는 아이들에 대한 수술비 모금 캠페인 참가 안내문이었다. 사실 난 아직 구순열을 앓고 있는 어린이를 직접 본 적도 없고, 구순열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려는 관심도 부족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날은 꼼꼼히 안내문 머리글부터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고, 마지막 부분에 적혀있는 행사 일정을 보니, 모금행사는 이미 끝난 뒤였다.


친구가 내 곁에 돌아와 조용히 서있는 것도 몰랐을 만큼,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이 머릿속에 어떻게 하면 구순열을 앓고 있는 아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그 안내지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구순열은 안면부에서 가장 흔한 선천성 기형의 하나로 대략 입술이 갈라진 기형을 말하며, 왜 이런 기형이 일어나는지에 대한 원인 파악이 아직 완전히 밝혀지지는 않았고, 조사연구 보고에 의하면 불균형적 영양결핍증, 유전, 약물남용, 내분비 이상, 불안, 긴장 및 공포, 산소 결핍증, 원인불명 순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그래도 감사한 건, 생후 10주 이후에 첫 수술을 하고, 이후 적절한 치료를 병행해준다면 아이의 성장과 함께 상처는 아물고 청소년기 이전에 일반 아이들처럼 밝고 환한 웃음을 되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요즘 세계적으로 성형수술에 중독된 십 대와 성인들이 얼마나 많은가? 과연 성형수술은 누구를 위해 필요한 것일까? 더 이뻐지기 위해, 더 젊어 보이기 위해, 보다 완벽함을 추구하고 싶어서 부자는 큰돈을 아끼지 않고, 여유가 없는 사람들은 빚을 내면서 까지 얼굴을 고친다. 더 높은 콧대, 더 크고 또렷한 눈, 더 탱탱한 피부를 위해 우리는 멀쩡한 얼굴을 깎고, 이물질을 넣고, 약물을 사용하는 것조차 두려워하지 않는다. 아름다워질 수만 있다면 그 비용에 대한 부담도, 수술절차가 안겨주는 공포마저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아름다워지고 싶은 욕망을 채우기 위한 수술과, 한 인간의 삶에 긍정적 전환점을 마련해주는 수술이 있다. 조금만 우리의 관심 범위를 넓혀 세상을 바라보면, 선천적 기형 때문에 환하게 웃을 수 없는 아이들, 사고로 인한 외상과 흉터로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성형수술을 통해 일그러진 자화상을 바로잡고, 나아가 웅크려져 있던 자아존중감을 일으켜 세우는 것이야 말로 진정 아름다운 성형(成形)이 아닐까? 더군다나 성형을 필요로 하는 이가 세상의 먼지 하나 묻지 않은 맑은 영혼들이라면 더욱 가치 있는 일일 것이다.


나는 이미 E에게로 성큼성큼 다가가고 있다. 나는 환하게 웃고 있고, E는 수줍은 미소로 화답한다. 포도송이 같은 눈망울을 가진 아이를 바라보며 나는 작은 다짐을 한다. '너에게 먼저 등을 돌리지 않을 거야. 한번 꼭 안아주고 너를 보낼 거야. 그리고 너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계속 지켜볼 거야. 네가 뒤돌아 보면 내가 지금처럼 환하게 웃고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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