以病爲師
2013년 1월 8일
동안거 동안 새벽 좌선을 하기로 스스로에게 약속한 이상, 나는 꼭 그 약속을 지키고 싶었다. 며칠 전 새벽 좌선 시간, 고열과 근육통으로 밤새 시달린 유리조각 같은 몸을 일으켜 세워 몇 번이고 바르게 앉아 보려 했지만, 허리 끝이 끊어질 것만 같아 도저히 앉은 자세로 몸을 지탱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무래도 오늘은 좌선을 포기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자, 한 달간 쌓아온 나만의 작은 공든 탑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 상실감이 엄습해왔다.
왜 나는 아직도 이렇게 형식이라는 틀에 스스로를 끼워놓고 얽매이고 집착하는가? 좌선을 포기함에 있어 느끼는 상실감의 내면에는 무화과 열매의 씨앗처럼 꽉 들어차 있는 나만의 아상(我相)이 존재한다. 꼭 좌선만이 참선의 방법은 아니지 않은가. 실제로 좌선, 행선, 입선, 와선 모두 참선의 한 울타리 안에 존재하고 있지 않은가. 성철스님은 선종사상에 대한 법문에서, "선은 활동하는 힘입니다. 우리가 참선을 한다는 것은 좌선한다고 말하는 이가 많은데 좌선만이 참선이 아닙니다. 참선은 곧 선을 참구 하는 것인 만큼 일체시( 一切時) 일체처(一切處)에 오로지 마음을 순일하게 자기가 의심하는 화두에 몰두하는 것이 참선입니다."라고 말씀하셨다.
더불어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라고 거듭 강조하시면서 행주좌와(行住坐臥) 응기접물(應機接物)이 모두 도(道)라고 하셨다. 평상심은 시비나 조작, 집착과 번뇌가 없는 마음을 말하는 것이지, 과거 속에 머물거나 미래에 빼앗긴 마음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결국 나는 온몸에 퍼진 통증과 몽롱한 의식조차도 온전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우선 포근한 이불 위로 몸을 누이고, 뼈 마디마디의 아픔을 느끼며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것을 몇 차례 반복하다 보니 한결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렇게 나는 며칠 동안 시름시름 앓으며 겸허해졌고, 여전히 견고한 나만의 틀 속에 갇혀 자유롭지 못한 넋과 조우했다. 내가 덮어두었던 불편한 진실들이 하나둘씩 고개를 내미는 모습을 바라보며 2012년은 저물었고 2013년 새해가 밝았다. 시간의 흐름과 함께 고통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던 나의 육신도 조금씩 조금씩 뭍으로 빠져나오고 있었다. 손끝의 통증이 견딜 만 해지자 나는 침대에 등을 기대고 앉아, 몸이 아플 때 가장 나를 슬프고 무기력하게 했던 것들에 대해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첫째: 눈 언저리까지 열이 올라, 눈을 뜨고 있는 것조차 힘들었던 순간. 나는 숨을 내쉴 때마다 뿜어져 나오는 열기를 느끼며 동화 속의 드래건을 떠올렸다. 머리에 커다란 핑크리본을 달고 눈은 웃고 있으나 입에서는 연거푸 불을 뿜고 있는 용이 된 나를 상상하면서 피식 웃기도 한 것 같다. 그리고 이내 또 깊은 잠에 빠져들었더랬다. 그나마 누워서 즐길 수 있는 독서라는 유일한 취미조차 허락될 수 없었던 현실. 책상 위에 읽고 싶은 책들 몇 권이 가지런히 놓여있는데, 그들에게 눈길조차 줄 수 없는 건, 마치 사랑스러운 자식들을 곁에 두고도, 몸이 따라주지 못하여 제대로 한 번 안아주지 못하는 엄마의 마음과도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둘째: 내가 가장 아팠던 날. 잔뜩 흐린 하늘에서 벚꽃 같은 흰 눈송이가 하염없이 내렸다. 책상 위에 앉아있던 루피는 창밖에 내리는 눈을 한참 응시하다, 누워있는 나에게도 한두 번 눈길을 주었던 것 같다. 구슬같이 맑은 루피의 눈을 바라보다 나는 또 잠이 들었다. 눈은 펄펄 나리고, 이런 날에는 집안의 정적과 하나가 되어 Andre Gagnon의 Les Jours Tranquilles를 연주하고 싶었는데, 손가락 마디마디까지 스며든 통증 때문에 도저히 피아노 앞에 앉을 수가 없었다. 내 친구 어머님께서 류머티즘으로 고생하신다는 소리를 몇 년 전부터 들어왔는데, 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손가락들을 바라보며 그 친구 어머님을 떠올렸다. 평소에도 깔끔하시기로 유명하신 분이신데, 류머티즘이 심한 날은 집을 치우지 못한다고 몹시 괴로워하신다는 친구 어머님의 마음을 비로소 공감할 수 있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늙는 것은 두렵지 아니하나, 손가락이 말을 듣지 않고, 시력이 많이 나빠져서 더 이상 악보를 볼 수 없거나, 피아노를 칠 수 없게 된다면 슬플 것 같다는 생각. 그리고 몸이 다시 좋아지면, 거실이 떠나갈 만큼 큰소리로 피아노를 치며 맘껏 자축하리라 다짐했다.
셋째: 침대에 누워 천장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할머니 생각이 나서 혼자 훌쩍이기도 했다. 나보다 훨씬 오랜 시간, 깊은 육체적 고통을 견뎌오셨던 우리 할머니. 당신 혼자 침대에 누워 할머니는 어떤 생각을 하시면서 하루를 보내셨을까. 하루에 한 번, 한국시간 오전 9시, 내가 할머니께 드렸던 문안전화가 어쩌면 나의 상상 이상으로 할머니의 일상에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가슴을 스치고 지나갔다. 할머니께서 즐기시던 유일한 놀이는 일명 '효도 고스톱'이었는데, 돌아가시기 일 년 전부터는 그 고스톱마저도 허리가 아파서 칠 수 없다며 사양하셨다. 난 그 순간 가슴이 미어지는 슬픔을 느꼈다. 난 그때부터 화투를 보면 눈물이 난다. 박범신 작가의 <은교>에 등장하는 시인 이적요는 말한다. “뾰족한 연필은 슬프다. 내게 연필은 눈물인 거지.” 오랜 시간 할머니와 나의 손길이 마주 닿았던 화투. 모서리가 닳아 없어진 화투에 더 이상 새 살은 돋지 않는다. 그래서 난 화투를 보면 슬프다. 내게 화투는 눈물이다.
넷째: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좀 더 적극적으로 보듬어 안아야겠다고 각성했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물질적 풍요와 정서적 안락함 속에서도 몸이 아픈 것은 이처럼 괴로운데, 하물며 보금자리를 잃고, 집과 세간살이를 갖추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춥고 배고픈 열악한 환경 속에서 웅크리고 잠들어야 하는 이들과, 아프다고 하소연하는 것 자체가 사치인 이들에 대해 생각했다. 그런데 이 순간 갑자기 이상의 <날개>의 프롤로그에 적힌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라는 질문이 떠올랐다. 왜일까? 한 편의 소설로 알려진 이 작품이, 누군가에게는 처절한 현실을 그려낸 수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그/그녀에게 이 세상살이라는 것은 상당히 불공평하고, 암담하고, 골치 아픈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진지하게 해 보았다.
어릴 적 감기나 배앓이로 고생하는 아이들을 보고, 그렇게 한 두 번 심히 아프고 나면 몰라보게 부쩍 큰다고 어른들이 말씀하시는 걸 들은 기억이 있다. 나의 육체적 성장은 이미 이십여 년 전에 멈췄다. 하지만 난 이번에 꿈결같이 몽롱한 나날들을 보내며, 내 마음 구석구석에 아직 새로운 움이 돋을 수 있는 여지가 존재한다는 기분 좋은 경험을 했다. 삭신이 쑤시는 몸살의 아픔이 한차례 머물다 간 자리에는 성찰의 새싹이 물기를 머금고 파릇파릇 움트고 있다. 누구나 아프면서 크는 거라는 어른들의 말씀이 비단 육체적 성장에 국한된 것이 아닌, 내면적 성장을 아우르고 있었다는 깊은 뜻을 마흔이 돼서야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