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여행

日日是好日

by Rainsonata

2012년 9월 4일


노동절 연휴가 끝나고 다시 모든 것이 일상으로 돌아왔다. 연휴 동안 밀린 일도 하고, 만나야 하는 사람들도 만나고, 맛있는 것도 먹고, 대청소도 하고, 채마밭도 가꾸고, 나름 일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가을이 오면 바람결에 따라 나뭇잎이 떨어지는 뒤뜰을 바라보며, 책도 읽고 글도 쓸 수 있도록 책상을 2층 창가로 옮겨 놓은 일이 가장 뿌듯하고 만족스럽다. 특히 오늘처럼 가을비와 함께 이렇게 책상에 앉아 빗소리를 들으며 글을 쓰다 차를 마실 수 있으니 참으로 복에 겨운 일이다.


벌써 한국에서 돌아온지도 한 달이 지났다. 시간이 얼마나 빨리 흐르는지 새삼 느끼고 있던 차에 초인종이 울려 내려가 보니, 빗속에 우편배달부가 서있다. 한국에서 보낸 소포 세 박스가 배달되었으니 서명을 부탁한다고 말했다. 이 소포는 다름 아닌 내가 7월 말에 한국에 있을 때 집 근처 우체국에서 선편으로 보낸 우리 집 일상용품이 담겨있는 짐꾸러미다.


랄라는 자기 물건이 들어있는 상자부터 제일 먼저 뜯어 달라고 2층에서부터 뛰어내려오고, 비는 내리고, 나는 조금이나마 우체부 아저씨를 도와드리려 빗속을 뛰고, 갑자기 집안의 고요했던 정적은 어수선함으로 바뀌었다. 유난히 무덥던 올여름, 서울의 우체국에서 내손으로 보낸 소포를 오늘 이렇게 가을비를 맞으며 지구의 반대편에서 받아보니 빗소리와 어우러져 묘한 감성이 피어올랐다.


얼마 전에 내 손으로 직접 꾸렸던 짐인데, 오늘 열어보니 그 느낌이 새롭다. "어? 이런 것도 내가 넣었었나?" "아... 이게 여기 들어 있었구나." 랄라도 잊고 있었던 자신의 소지품과 선물들을 다시 찬찬히 들여다보며 그때의 기쁨을 또 한 번 만끽하고 있는 듯 보였다. 짐 속에서 나온 물건들 중에서 가장 의미 있는 것은 우리 시어머님께서 아버님께 시집오실 때 혼수로 마련해 오신 스텐 밥공기/국그릇 5벌 세트이다. 어머님 연세가 지금 일흔둘이시니까, 이 그릇들은 52년이라는 시간의 여행을 거쳐 나와 만난 것이다. 어머님께서 손수 신문지에 꼭꼭 말아 챙겨주셨던 그릇들의 종이옷을 벗기며, 어머님과 아버님 모두 건강히 오랫동안 우리 곁에 머물러 주시길 기도했다.

이전 12화감사하는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