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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

日日是好日

by Rainsonata

2012년 11월 10일


이제 입동(立冬)을 지나 본격적인 겨울의 시작을 알리기 시작한 첫 주말. 아침 일찍 일어나 빨래를 하면서

잠시 생각에 잠긴다.


여유란 무엇일까? "정신적/경제적/물질적/시간적으로 넉넉하여 남음이 있음"이라고 사전에는 쓰여있다. 세탁기가 돌아가는 동안 커피 한 잔을 내리며 나의 하루를 시작한다. 할머니 영정에 향을 피우고, 장미 몇 송이를 손질해 화병에 꽂아두고, 야옹이 밥과 물을 챙기고, 야옹이 화장실 정리를 하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커피를 따르고, 읽고 있던 책을 펼친다. 내 주위를 맴도는 건, 엘리와 루피뿐이다. 그렇게 나는 나만의 시간적/공간적/정신적 여유를 만끽하고 있다.


조금 더 시간이 흐르고 삐-삐- 세탁기가 나를 부른다. 건조기에 넣어 말릴 빨래와 햇볕에 말려야 할 빨래를 분류하면서, 또 한 번 '여유'에 대해 생각해본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생각하는 여유란,


젖은 옷을 대충 툭툭 털어 건조대에 널기 전에, 옷에 잡힌 주름을 두 손으로 탁탁 반듯하게 매만져주는 것.

매일 밤 신세 지는 베갯잇에 라벤더향 다림질용 스프레이를 한번 슈욱- - 뿌려준 뒤 천천히 다림질해 주는 것.

야옹이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 주는 것.

커피를 마시기 전에, 커피 향을 먼저 느껴보는 것.

새벽과 아침이 자리바꿈을 하는 동안 빛의 변화에 관심을 가져보는 것.

좋아하는 노래 한 곡, 오로지 나 만을 위해서 틀어주는 것.

그리고 음악에 맞춰 흥얼거리면서 미소 지울 수 있는 것.

사과를 예쁘게 깎는 것.

빨간 사과는 어느 그릇과 가장 잘 어울릴까 한 번 생각해 보는 것.

할머니 영정 사진에 뽀뽀해 주는 것.

벽난로의 춤추는 불꽃을 바라보는 것.

잠시 시간을 잊는 것.


행복도 그렇지만 여유라는 것도 각자 만들기 나름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우리가 '만족의 담'을 너무 무리해서 높이 쌓지 않는다면, 바로 담장 너머에 살고 있는 '여유'라고 불리는 친구를 삶으로 초대하기에 훨씬 수월하지 않을까.


"Save apart time to read,

it's the spring of wisdom.

Save apart time to laugh,

it's the music of your soul.

Save apart time to love,

for your life is too short."


- Robert Brow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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