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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의 장롱

追慕

by Rainsonata

2013년 3월 14일


나는 오랫동안 외국에서 학교를 다녔지만 여름방학은 늘 한국에서 보냈다. 내가 집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 한 숨 돌리고 있을 무렵, 할머니께서는 늘 변함없이 나를 장롱 앞으로 부르셨다. 장롱문을 열면 하단에 긴 서랍장이 있었는데, 할머니께서 그 서랍을 여실 때면 아주 비밀스러운 표정을 지으시곤 하셨다. 같은 경험을 매년 여름마다 해서 익숙해졌을 법도 한데, 나는 이 순간을 마주하면 심장이 콩당콩당 뛰면서, 눈동자는 더 커지고, 이번에는 어떤 물건이 할머니의 보물상자 안에서 나올까 하는 설렘에 미열이 느껴졌을 정도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나는 할머니께서 내가 없던 일 년 동안 정성껏 모아두신 외제 사탕이나, 향기 좋은 비누나, 예쁜 머리핀이나, 선물로 받으셨다는 화사한 손수건이나, 곱게 말려 놓으신 행운의 네 잎 클로버 같은 물건을 받는 것을 좋아했다기보다, 할머니께서 유독 나만을 위해 이 모든 것을 은밀히 보관해 두신 그 마음, 그래서 나는 특별하다는 우월감, 할머니의 나에 대한 사랑은 끝이 없다는 믿음, 그런 뿌듯한 기분을 더 즐겼던 것 같다.


장롱 앞에 쪼그리고 앉아 할머니의 움직임을 바라보고 있는 동안 나의 온몸이 뜨거워진 이유도, 우리 할머니의 나를 향한 사랑을 확인하는 이 아름다운 의식이 주는 벅찬 감동 때문이었을 것이다. 난 할머니가 마법의 장롱에서 꺼내 주신 비누향이 밴 사탕을 먹으며 할머니의 사랑을 먹은 것이다. 이 세상 어느 고급 백화점에서도 구입할 수 없는 우주에 단 하나뿐인 가장 특별한 사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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