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드시

日日是好日

by Rainsonata


마흔의 문턱을 막 넘었다고 호들갑을 떤 지가 그리 오래되지 않은 듯한데, 시간은 흘러 흘러 나도 어엿하게 사십 대의 중심에 서 있다. 얼마 전 스톰과 함께 호숫가에 앉아 핑크빛으로 물들여지는 저녁 하늘을 바라보다, 그 분위기에 젖어 자연스럽게 살아온 삶을 뒤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순간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평온하게 다가왔고, 하늘도 구름도 노을도 모두 조화롭게 어울려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는 결혼을 하기 전까지 내가 좋아하는 것과 관심 있는 것을 즐기는 삶을 살았기에, 구태여 마음의 편안함과 불편함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 던질 필요조차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나는 '반드시'라는 정언 명령을 내 가슴에 안고 생활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리고 한 번 켜진 '반드시' 스위치는 결코 쉽게 꺼지지 않았다.


만약 그 당시 '반드시'가 지닌 어마어마한 장악력과 영향력을 스스로 알고 있었더라면 나 자신을 멈출 수 있었을까? 역사도 우리의 인생도 ‘만약’이라는 가정은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삼십 대 초반의 나는 지금보다 훨씬 어렸고, 미숙했고, 지혜롭지 못했으니, 아마 누군가 곁에서 '반드시'가 가져올 부작용에 대해 미리 조언해주었다 해도,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처럼 '반드시' 스위치를 아무 생각 없이 눌렀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좋은 아내가 되기 위해선 내가 그동안 배우고 들어왔던 '반드시' 해야 하는 행동지침이 있었다. 좋은 며느리가 되기 위해서도 마찬가지였고, 더군다나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한 '반드시'의 영역은 지금까지 나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훨씬 더 넓고 깊은 것이었다. 대학원 공부를 시작하면서는 가사와 육아도 빈틈없이 해내고 싶다는 욕심을 앞세워 몇 단계 업그레이드된 '반드시' 앱이 하루도 빠짐없이 작동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반드시'의 노예가 되어 참 오랜 시간 용케 버티고 살았다. 그러다 대학원 졸업을 코앞에 두고 내 몸은 결국 침몰했다. 그 결과 나는 그해 여름 내내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하지만 당장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던 순간에도 나는 '반드시' 랄라가 18세가 될 때까지는 살아야 한다며 우주의 모든 신에게 기도했다.


다행히 나는 죽지 않았고, 무사히 졸업했고, 일 년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에는 감사하게도 송두리째 잃어버릴 뻔했던 건강을 되찾았다. 그러면서 이전보다 더욱더 소소한 일상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고, 그러한 삶의 변화가 '반드시' 바이러스로부터 나를 지켜주는 든든한 백신 역할을 해주기 시작했다. 그러자 마음도 차츰 편안해지기 시작했고, 조금은 느리게 보내는 시간 속에서 서서히 자유를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무수한 '소확행: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의 순간들이 빛으로 돌아왔다.


지금도 어디에선가 이전의 나처럼 '반드시' 바이러스로 고생하고 있을 수많은 우리에게 이 글을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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