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日是好日
지금도 스톰이 출장을 가면 밤잠을 설친다. 나이를 먹는 것이 슬픈 이유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는 근래에 들어 등불 밑에서 책을 오래 읽을 수 없게 되었다는 점이다. 스톰의 빈자리는 밤이면 더 명료하게 그 모습을 드러낸다. 랄라와 저녁을 먹고 집안일을 챙기다 보면 어느새 밤은 우리 곁에 자리하고 있다. 그렇게 밤이 깊어 갈수록 묵직한 고요함이 집 안 구석구석에 내려앉고, 나는 조금은 무섭고 조금은 헛헛한 마음을 달래고자 늘 책으로 손이 간다.
랄라마저 잠든 밤에 드문드문 들려오는 향초의 심지 타는 소리, 어렴풋이 창문 밖에서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 고즈넉한 책장 넘기는 소리는 언제나 내게 심적으로 큰 위안이 되어주었다. 특히 출장이 잦은 스톰과 함께 살면서 밤이면 책과 벗하며 나 홀로 보내온 시간이 올해로 18년째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인가 눈의 피로가 심해지기 시작했고, 결국 밤에는 책을 오래 읽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러면서 시계처럼 규칙적이었던 나의 일상에도 예기치 못한 균열이 생긴 것이다.
유년기 시절부터 내 삶의 커다란 즐거움이었던 독서와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현실이 안타깝고 서글프다. 아직도 좋은 글과 학문에 대한 열망은 가득한데, 눈이 지금처럼 빨리 피로해진다면 나의 독서 습관도 ‘Slow Life’의 흐름을 따라야 하지 싶다. 마치 오래 사귄 벗과 한동안 헤어지는 아쉬움이 스미지만, 이 또한 자신을 위한 배려이자 지금까지 불철주야 열심히 일해준 눈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니, 책을 오래 못 읽게 되는 서운함보다 오랜 세월 애써준 두 눈에 감사한 마음이 든다.
불교에서는 고집멸도(苦集滅道)의 사성제 중, 마지막 도제(道諦)의 구체적 내용으로서 팔정도(八正道)를 제시한다. 여덟 개의 길 가운데 첫 관문은 정견(正見: 바른 견해)이다. 즉 바르게 볼 수 있는 안목을 갖추어야만 정사유(正思惟: 바른 생각), 정어(正語: 바른말), 정업(正業: 바른 행동), 정명(正命: 바른생활)으로 이어지는 수행의 길을 반듯하게 걸어갈 수 있게 되므로 정견이야말로 수행 입문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살아오면서 두 눈으로 많은 것을 보고 읽었으나, 괴로움의 근원인 무명(無明)을 꿰뚫어 보는 혜안을 갖기 위한 노력의 불씨를 꾸준히 살려오지 못했다. 왕성한 지적 호기심으로 배움에 대한 자세는 무릇 진지했을지 모르나, 전도몽상(顚倒夢想)을 떠나 실체를 여실히 볼 수 있는 정견을 아직 갖추지 못했다. 앞으로 책과 건강한 거리 두기를 실천하는 동안 육안에 쌓인 피로의 먼지를 닦아 눈을 맑게 하고, 마음을 밝히는 것에 집중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