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日是好日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를 만난 이후로 나는 마음이 산란해지면 흐르는 강물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곤 했다. 그렇게 얼마 동안 강물이 흘러가는 모습을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노라면, 강물은 고요히 흐르고 흘러 나의 얼룩진 마음까지도 씻어주었다. 그리고 이 의식은 나의 오래된 습관이 되었다. 노자의 도덕경 8장에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상선약수>에 대한 내용이 구체적으로 담겨있다.
상선약수(上善若水)
수선이만물이부쟁(水善利萬物而不爭)
처중인지소오(處衆人之所惡)
고기어도(故幾於道)
거선지(居善地)
심선연(心善淵)
여선인(與善仁)
언선신言善信)
정선치(正善治)
사선능(事善能)
동선시(動善時)
부유부쟁(夫唯不爭) 고무우(故無尤)
도올 김용옥 선생님의 말씀을 따르면 그 의미를 아래와 같이 해석할 수 있다.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
물은 만물을 잘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는다.
뭇사람들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처하기를 좋아한다.
그러므로 도에 가깝다.
살 때는 낮은 땅에 처하기를 잘하고,
마음 쓸 때는 그윽한 마음가짐을 잘하고,
벗을 사귈 때는 어질기를 잘하고,
말할 때는 믿음직하기를 잘하고,
다스릴 때는 질서 있게 하기를 잘하고,
일할 때는 능력 있기를 잘하고,
움직일 때는 바른 때를 타기를 잘한다.
대저 오로지 다투지 아니하니 허물이 없어라.
요즘은 흐르는 강물을 떠올리기보다는 산책로를 걷거나 뒤뜰에 앉아 나무를 스치는 바람 소리를 듣는 것을 더욱 즐기고 있다. 그렇게 나는 나무와 바람이 만나는 소리를 듣는다. 바람이 나무를 스치고 지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비단 강물만 흐르는 것이 아니라 바람도 흐른다는 생각이 마음을 스친다. 그 스침이 시원스럽기도 하고 위안이 되기도 한다. 내가 윤동주 시인의 <서시>를 사랑하는 이유도 이 시의 마지막 행이 지닌 여운 때문이지 싶다.
<서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기원전 6세기 무위자연(無爲自然)의 도(道)를 설하며 흐르는 물을 노래한 노자. 20세기 초, 일제강점기를 살며 고뇌에 찬 감성으로 바람을 노래한 시인 윤동주. 그리고 19세기 후반 독일에서 태어났으나 나치의 탄압을 피해 스위스에 머물며 진리를 탐구했던 헤르만 헤세.
이 오랜 역사 속에서 물과 바람이 늘 회자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각자의 답을 찾아 잠시나마 물소리 바람소리에 귀 기울이기 참 좋은 봄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