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日是好日
2013년 12월 8일
혈기왕성하던 시절의 엄마가 청산유수 명연설로 우리를 웃기고 울리셨던 날들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노년기에 접어든 엄마는 뒤끝을 흐리는 설법으로 우리를 대략 난감하게 만드시곤 한다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참 뜻을 알 수 있다고 하건만, ‘용두사미’는커녕 ‘사두인미’로 변해버린 '엄마표 화법'에 숨겨진 속마음을 읽어내기란 결코 쉽지 않다.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얻은 엄마의 속마음 독해법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
<예문>
엄마: 바쁘니? (오늘 너와 할 이야기가 있는데, 너만 괜찮다면 오랫동안 전화통화 좀 편하게 하고 싶구나.)
엄마: 바쁘면 끊자. (생사를 오고 가는 급한 일이 아니라면, 지금은 엄마를 위해 시간을 좀 내어줄 수 없겠니?)
엄마: 그래 아침은 뭐 먹었니? (어느 누구도 이제 나에게 아침식사는 잘했는지, 뭘 해서 먹었는지 물어보지도 않는단다. 너라도 한 번 물어봐 주렴.)
엄마: 시댁에는 전화 자주 드리지? (시댁에도 물론 잘해야 하지만, 이 엄마도 잊지 마렴. 때로는 엄마는 너희 시댁 일보다 더 뒷전으로 밀리는 것 같아서 슬퍼지곤 한단다.)
엄마: 날씨는 어떠니? 여긴 오늘 비 온다. (이렇게 비까지 청승맞게 내리는 날은 네 생각이 더 나는구나. 하지만 네가 있는 곳은 따뜻하고 화창하길 바란다. 만약 그곳도 비가 내리고 있다면, 너도 빗소리 들으며 엄마 생각을 하는지 궁금하구나.)
엄마: 아이 키우랴 살림하랴 힘들지? (가끔은 너도 아이 키우며 엄마가 너를 어떤 마음으로 키웠는지 헤아릴 수 있었으면 하고 바랄 때가 있단다. 너도 물론 네 새끼 예뻐 죽겠지만, 나도 너를 그렇게 끔찍하게 여기며 키워왔다는 것을 잊지 마렴.)
엄마: 하는 일은 어떠니? (너의 일도 물론 중요하겠지. 하지만 때로는 엄마의 취미생활에도 관심을 갖고 이것저것 물어봐 줬으면 좋겠구나. 내가 먼저 이야기 꺼내는 것보다, 네가 물어봐 주면 엄마는 더 신이 나서 수다를 떨 수 있을 것 같거든.)
엄마: 아, 맞다. 엄마 내일모레 정기검진 있어서 병원에 간다. (네 눈에는 엄마가 아직도 건강한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엄마도 이제 이곳저곳 아픈 곳이 늘어나고 있단다. 네가 조금 더 각별히 신경을 써줬으면 고맙겠구나. 그날 별일 없으면, 네가 엄마랑 같이 병원에 가주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사실 이 나이가 되고 보니 엄마는 혼자 병원에 가는 것이 무섭단다.)
엄마: 그래 언제 집에 오니? (나는 네 얼굴 보는 게 유일한 낙이란다. 어서 빨리 와서 같이 맛있는 것도 먹고 밀린 이야기도 나누고 하자.)
엄마: 뭐 먹고 싶은 것 없니? (넌 엄마가 해준 음식 중에 뭘 제일 좋아하니? 가끔은 엄마가 해준 요리가 너무 먹고 싶어지기도 하고 그러니?)
엄마: 퇴근하고 집에 오니 갑자기 피로가 막 몰아치고 쉬고 싶지? (난 오늘 하루 종일 너를 기다렸단다. 피곤하겠지만 십 분만이라도 엄마랑 마주 앉아 있다가 들어가면 어떻겠니? 엄마는 너의 직장생활 이야기도 듣고 싶고, 동료들과는 어떻게 지내는지도 몹시 궁금하단다.)
엄마: 잠자리 건넛방에 마련해 뒀으니 푹 자라. (오늘은 엄마랑 같이 잤으면 좋겠구나. 너만 좋다면 말이다.)
우리는 말 못 하는 갓난아기의 표정을 보거나 울음소리만 들어도 내 아이가 배가 고픈지, 몸이 아픈지, 피곤한지 이내 알아차린다. 반면 나를 낳아주고 키워주신 엄마의 표정은 잘 읽지도 못할 뿐 만 아니라, 쉽게 짜증내고 퉁명스럽게 대응하는 것이 어느새 몸에 배어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는 엄마에게 따뜻한 관심을 보이기보다 사무적인 간섭을 먼저 앞세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 깊이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明心寶鑑> 孝行篇에 보면, 太公曰 "내가 어버이에게 효도하면 자식이 또한 나에게 효도한다. 내가 이미 어버이에게 효도를 하지 않는다면 자식이 어찌 나에게 효도하겠는가?"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