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

by Rainsonata

2024년 11월 8일 금요일


시(詩)의 계절이 왔다. 분주했던 10월을 뒤로하고 가슴을 활짝 펴고 11월을 맞이한다. 11월은 사색의 달이기도 하고, 시를 읽기에 좋은 달이다. 12월이 시작되면 또 한 번 소란스러워지는 세상을 마주해야 하므로, 11월은 오롯이 고요와 벗 할 수 있어서 좋은 달이다. 11월을 '죽음에 대해 묵상하는 달'이라고 하는 이유도 쉽게 납득이 간다. 11월이야말로 사라져 가는 만물의 애잔함을 고스란히 품고 있어 더욱 아름다운 달이다. 아직 나무는 잎을 다 떨구지 않았으나, 바람에 뒹구는 낙엽이 하루하루 늘어날 것을 우리는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잘 알고 있다.


가을의 끝자락과 겨울의 첫 자락이 맞닿은 그곳에 11월이 숨 쉬고 있다. 11월은 풍성했던 가을의 숲을 지나 하얀 겨울의 호수로 건너가도록 시간의 다리를 놓아주는 배려 깊은 달이다. 그렇게 우리는 11월의 다리를 건너며 침묵과 사유라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한 해를 마무리하기 전에 내려놓음의 지혜를 배우고, 모르는 것에 대한 겸손함을 일깨워주기 위해 11월은 가을과 겨울 사이에서 그윽하게 빛나고 있다. 침실 창으로 들어오는 11월의 아침 햇살은 샘물처럼 맑다.


이 달이 올 때까지 서가에 고이 모셔놨다 11월 첫날부터 읽기 시작한 전영애 교수의 <시인의 집>이 책상에서 나를 반긴다. 독문학자로 평생 살아온 그녀가 시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삶을 대하는 태도 또한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제법 두터운 책을 감싼 노란 표지의 빛깔이 따사롭다. 그녀의 인품을 닮은 언어의 결은 곱다. 하루에 조금씩 아껴 읽는 맛도 11월의 정취를 더해주고 있다. 내게는 익숙하지 않았던 시인들의 작품과 인생을 살짝 들여다볼 수 있도록 아담한 크기의 창을 내어준 고마운 책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11월처럼 고요한 존재감을 가진 사람이 있다. 자주 연락을 하지는 않지만 가끔 전해오는 안부가 반가운 사람이 있다. 매사에 최선을 다하고 남의 실수를 질책하지 않으며, 때와 장소에 맞게 몇 발자국 뒤로 물러설 줄도 아는 사람. 너와 나의 관계를 뛰어넘어, 우리라는 하나 됨을 자연스럽게 끌어내는 사람. 그저 그 자리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많은 사람에게 위안이 되는 사람. 비단 사람뿐만이 아니라 평소에 사용하는 가구, 침구, 책, 문구용품 중에서도 11월을 닮은 것이 있다. '모두 다 사라지지 않은 달'이라는 11월의 또 다른 이름처럼 아직 우리 곁에 남아있어 고마운 존재를 떠올려 보기에도 11월은 참 좋은 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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