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걷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랄라야,
오늘 아침은 봄비가 촉촉하게 내리고 있어. 우리 집 한편에 피어있는 아이리스의 향기가 정말 그윽하고 좋지? 랄라도 맡아보고는 향기롭다고 좋아했던 거 기억하지? 엄마가 어릴 적에 우리 집 마당에 넝쿨나무 밑으로 새장이 달려 있었는데, 노랑새 두 마리가 정말 예뻤어. 아침에 일어나면 왕할머니께서 엄마 손을 잡고 새 구경을 시켜주시면서, 새 깃털도 만져주게 해 주시고, 모이도 주시고, 물도 갈아주시고 그러셨었어. 그때는 아무 생각 없이 지나쳤던 일과가, 지금은 너무도 감사하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단다.
이 시는 정호승 (1950.1.3 - ) 시인의 작품이야. 엄마는 애잔한 슬픔이 서려있는 아름다운 이 詩를 좋아해. 그리고 나이를 먹을수록 이 詩가 지닌 진실성에 깜짝깜짝 놀라곤 한단다. 랄라야. 엄마가 이전에 이야기했듯이, 엄마는 <어린 왕자>를 중학교 때 처음 읽었는데, 그때는 학교에서 세계명작이라고 해서 읽은 게 다였거든. 그런데 20대에 읽은 <어린 왕자>와 30대에 읽은 <어린 왕자>는 또 다른 느낌이라는 것을 경험을 통해서 깨달았어. <수선화에게>도 그와 비슷한 경우라고 할 수 있지.
처음에 이 詩를 만났을 때, 엄마는 아련한 비애를 마음에 그리며 읽어 보았던 게 전부였지만, 시간이 흐르고, 엄마에게도 크고 작은 슬픔이 스쳐 지나간 뒤에 읽은 이 작품은 아프더라고. 많이 아팠지... 그런데 랄라야. 엄마가 시인이라면 이 詩의 첫머리를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에서 "울어라/ 맘껏/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라고 바꾸었을 거야.
랄라야. 슬프고 아플 때 우는 건 나쁜 게 아니야. 반드시 눈물을 참을 필요는 없단다. 명심하렴. 엄마가 늘 말했지? 울고 싶을 때는 우는 거라고... 그래 랄라야. 지금 내리는 봄비처럼 싱그러운 너는 아직 정호승 시인의 이 작품을 이해하기에는 너무도 맑은 영혼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엄마는 감사한다.
"눈이 오면 눈길을 걷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눈이 오면 눈길을, 비가 오면 빗길을 걸을 수 있는 사람은 그만큼 매 순간에 충실한 삶을 살고 있다는 징표와도 같은 거란다. 그리고 눈과 비를 음미할 수 있는 사람의 가슴은 아직도 말랑말랑한 마시맬로처럼 부드럽다는 증거이기도 해.
랄라야! 갈대숲의 도요새처럼 엄마가 늘 너를 지켜보고 있다는 거 잊지 마. 그렇다고 너를 스토커처럼 따라다니거나 파수꾼이 되어 너를 지켜보겠다는 뜻이 아니니까 오해는 하지 마렴. 그냥 늘 엄마가 너의 곁에서 너를 응원하고 있다는 뜻과 비슷해. 이미 바람도 햇살도 그렇게 우리 곁에 머물고 있잖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