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2월 25일
태어나서 처음 해본 '마음 결제'가 겨울이었음을 감사드리며 동안거 해제일을 맞았다. 사실 수계까지 받아놓고, 너무 염치가 없다는 생각에 나로서는 행동하는 양심이 되고 싶어 시작한 마음 결제였다. 고요한 새벽에 일어나 내가 아끼는 향꽂이에 향을 피우면서 참선을 할 수 있었던 지난 3개월은 혼자일 수 있었기에 더욱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즐거움 속에, 어느 순간만큼은 철저히 혼자일 수 있어 너무 행복한 나는, 영어 단어 중에 “Solitude”와 “Tranquility”를 특히 좋아한다.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꽃과 나무들은 겨울을 나면서 가장 많은 수고를 한다는 것을 잘 알기에, 요즘 나에게 봄기운을 선물해주고 있는 목련, 라일락, 수선화, 벚나무, 복숭아나무 그리고 겨울 내내 잘 견디어준 파와 허브 가족들에게도 토닥토닥해주었다. 자연과 함께 할 수 있는 환경에 다시 한번 감사하며, 지난 세 달 동안 읽은 독서목록을 확인해보니 J. Nehru의 를 시작으로 열세 권의 책을 읽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한 곳에 가지런히 놓인 책들을 바라보며 “積學非他術 只要攝我心”라고 말씀하신 서산대사의 깊은 뜻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겨본다.
동안거가 끝나면 무언가 마음이 충만하고 홀가분하리라 생각했던 나는 지금 이 헛헛한 마음을 달랠 길이 없다. 이 마음의 빈자리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눈을 감고 누워도, 음악을 들어도, 책을 읽어도, 글을 써도, 대화를 해도 지금 느끼는 이 애잔함의 근원과 정체성의 수수께끼는 아직 풀리지 않고 있다. 동안거가 끝났다고 해서 아무 생각 없이 나태하게 살지 말라는 새로운 화두를 동안거 해제일 선물로 받았나 보다.
2월의 끝자락에 서있는 우리. 이제 곧 봄이 도래하고, 한국의 매화는 고울 것이며, 3월에는 법정스님 입적 3주기와 우리 할머니 83세 생신이 찾아올 것이다. 할머니께서는 차를 타고 가시다가도 길섶의 예쁜 꽃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차를 세우라고 하실 정도로 꽃을 사랑하셨다. 아침이면 새로 핀 꽃들을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게 낙이셨고, 이웃이나 지인들이 포기한 화초를 살리시는 마법의 손을 가지신 분이셨다.
나무들이 새로운 꽃망울을 터뜨릴 때마다 할머니가 사무치도록 보고 싶어 지는 3월은 아름다워서 더 슬픈 그런 달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