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어릴 적 책을 읽을 때에는 책을 빨리 읽는 것에 집중했던 것 같다. 마치 “내가 그 책을 읽었다”라는 것을 자랑하고 싶은 것처럼. 그러나 지금 책을 읽을 때에도 그런 마음도 없지 않아 있으나, 지금은 좀 더 책을 반복적으로 계속적으로 읽는 편이다. 그렇게 하는 방법 중 하나는 책을 천천히 긴 기간에 조금씩 읽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같은 책을 영문판과 번역판으로 같이 읽는 것이다.
책을 여러 번 읽다 보면, 이 책이 과연 내가 읽었던 책인지 의심스러울 때가 많은데, 그것은 과거의 내가 지금의 나와는 조금 더 성숙해졌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내가 달라졌다는 표현보다는 과거의 내가 지금의 나로 물이 흐르듯 흘렀다고 해야 할까.
지금은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를 다시 읽는 중이다. 주인공인 양치기였던 산티아고는 이집트의 피라미드에 있는 보물을 찾으러 대상들과 사막을 건너는 중이다. 그러던 중 야자나무 숲을 발견한다.
“드디어 도착했어!”
영국인이 외쳤다. 그 역시 막 잠에서 깨어난 참이었다.
하지만 산티아고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는 이미 사막의 침묵을 배웠고, 눈앞에 펼쳐진 야자나무 숲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족했다. 피라미드까지는 아직 갈길이 멀었고, 언젠가는 이날 아침의 풍경도 그에게는 한낱 추억으로 남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이 바로 현재의 순간이고, 낙타몰이꾼이 말한 잔치의 순간이기도 했다. 그는 과거의 교훈이나 미래의 꿈을 살아내는 것처럼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해 살고 싶었다. 수천 그루의 야자나무가 늘어선 이 광경 또한 언젠가는 추억의 자리로만 남을 터였다.
- 파울로 코엘료, 연금술사(1988) 중
감격의 순간을 맞는 순간도 어쩌면 자연의 일부이고 순간이며 또한 영원이다. 그는 그 순간을 침묵한다. 이제 마음속에는 어떠한 흔들림이나 동요보다 고요함과 침묵이 존재한다. 그는 곧 그 감격의 순간도 과거요, 추억이 될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과거나 추억이라 해도 쓸모없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그렇게 과거와 추억을 켜켜이 쌓아가 우리가 되고 계속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