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운전의 시간. 라디오를 켠다. 고속도로를 지나가다 보면 라디오 채널의 주파수가 변하기 때문에 여기저기 채널을 기웃거리게 된다. 한 채널에 고정한다. 그 채널은 1980년대 차트 순위의 노래를 선곡하는 채널이다.
DJ가 공테이프에 관한 이야기를 꺼낸다. 그때는 공테이프가 600원 하는 시절이라고 이야기하면서. 요즘엔 공테이프의 존재를 잠깐 잊었었다. 라디오에서 마음에 드는 곡이 나오면 공테이프에 녹음 버튼을 누르던 시절이 있었다.
무언가 비워진 공간에 그 시간을 60분 90분 120분으로 채우는 음악. 한 곡이 끝나면 한 곡이 시작되고, 어떤 구간은 겹치고 마지막에는 한 곡이 채 끝나기도 전에 끝나거나 무음의 구간이 남아 있기도 한.
요즈음과 같이 무한의 스트리밍 시대에는 얼마나 남았는지 아니면 갑자기 끊기는지 걱정하거나 생각할 필요가 없는.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감정까지도 무한의 스트리밍에 맡기고 있는 것이 아닐까.
어쩌면 깨끗이 비우거나, 삶이 유한하다는 생각은 삶을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고 누가 말했던가. 우리는 죽음을 생각하기에 오늘이 더욱 생생하다. 공테이프에 음악을 한 곡 한 곡 선곡하며 녹음하던 시절에는 DJ의 음악선곡과 함께 fade-in fade-out이 없는 완전한 곡이 재생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이젠 안다. 어떤 곡이 서서히 사라지거나 서서히 등장하더라도, 아니면 완벽한 곡을 내가 잘라내더라도 언젠가는 나에게도 당신에게도 망각되고 지워진다는 사실.
공테이프는 사라지고, 스트리밍은 또 다른 스트리밍 속으로 버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