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우리는 많은 책을 읽을 수 없다. 또한 많은 글을 쓸 수도 없다. 무한한 성장이 있다면 그 끝은 또 다른 소멸이다. 우리의 키도 청소년의 어느 순간에는 정지하며, 우리의 삶과 생각도 어느 시간과 공간에서는 퇴행한다. 우리가 먹는 음식은 어느 중년의 어느 시기에는 줄어들어 점점 적게 먹고 적게 소화할 수 있는 단계로 나아간다. 따라서 무한정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것은 어떻게 보면 비슷한 글의 나열이거나 중복일 경우가 많다. 어떤 수학자의 말처럼 우리는 배우지 않으면 창조할 수 없다. 이것은 인공지능도 마찬가지이다. 다른 사람의 글을 주의 깊게 읽지 않으면 우리의 글도 주의 깊지 않은 껍질이 될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좀 더 시간을 길게 가지고 그 단어들을 음미해야 한다. 그 단어들은 그 단어 한 가지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시간과 공간, 즉 실재에서 살아 숨 쉬는 행동이다. 따라서 글을 읽고 쓰기 위해서는 뇌의 운동뿐만 아니라 실재하는 경험과 행동이 필요하다.
한 때 알랭 드 보통의 소설을 즐겨 읽었던 적이 있다. 지금은 알랭 드 보통이 예전처럼 소설을 자주 내지 않는다. 그는 언젠가 사랑에 대해 할 이야기가 충분해질 때 다시 사랑에 대한 소설을 쓸 것이라고 했던 것이 기억난다. 사랑에 대한 소설이건, 무엇에 대한 소설이건, 깨달음은 지속될 수도 있겠지만, 그 깨달음의 정리는 어쩌면 정점과 퇴행이 있을 뿐이다. 그것의 반복은 깨달음을 점점 더 멋없게 만드는 것일 수도.
그래서 우리는 좀 더 조용함과 침잠을 필요로 한다. 흙탕물의 현탁액이 든 비커를 흔드는 것보다 어쩌면 가만히 시간을 두고 놓으면 더 투명해지는 것처럼. 너무 많은 인풋은 그저 의미 없는 아웃풋이 될 수 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