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덕종의 아디스 레터를 읽고
언젠가 신문기사를 출력해 한참을 책상 위에 올려놓았던 적이 있다.
그 신문 기사의 제목은, “[유덕종의 아디스 레터] 헬조선? 아프리카에 와서 몇 달만 살아보라”라는 조선일보 기사였다.
유덕종 의사는 1992년 ‘정부파견 의사’ 1기로 선발돼 우간다로 갔고, 그 이후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 아바바에서 의료봉사를 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는 한국의 청년들이 한국을 ‘헬조선’이라고 지칭하는 것을 지적하며, 한국은 헬조선이 아니라 우리의 이전 세대들과 우리들이 만든 훌륭한 나라라고 하고 있다.
그 예로, 한국의 사회기반시설, 수도, 전기, 대중교통 시스템. 그리고 의료시스템 등의 우수성을 들고 있으며, 한국전쟁 이후 원조 수혜국에서 원조 공여국으로 전환한 유일한 국가로 한국은 살기 좋은 나라라고 했다. 그것을 만든 사람들은 바로, 영웅적인 정치 지도자들과 탁월한 경제인들, 그리고 근면하게 일한 보통 사람들이라고 했다.
그가 있는 아디스 아바바에서는, 그리고 아프리카에서는 한국에서 누릴 수 있는 이런 것들을 상상할 수 없다. 그리고 어디에서나 발생할 수 있는 총격사건 등등, 한국은 안전한 나라다. 그러나 그도 역시 단점도 있다고 말하면서, 또한 어느 나라건 완벽한 나라는 없다고 했다.
내가 8-9년 전 미국에서 감기약 처방을 보험 없이 받았을 때 낸 약값은 300달러가 넘었다. 미국은 병원이나 약국이 보험여부 등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물론 미국에서 총성 소리를 듣거나, 지역에서 총기 사건이 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우리나라가 완벽한 유토피아는 아닐지언정, 청년들이 언급하는 지옥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사는 세계를 바라보기 위해서 어느 한 곳에 그 기준을 고정시킨다. 지리학적인 용어로 그것을 지오레퍼런스 georeference라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기 위해 우리는 어떠한 기준을 어디에 고정시킬 것인가.
우리보다 물질적으로 잘 살고 표면적으로 화려한 겉모습에 그 기준을 삼으면 우리는 항상 불행할 수밖에 없다. 그러한 물질을 쫓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기준을 좀 더 근원적이고 근본적이고, 우리 세계를 둘러볼 여유를 갖는다면, 우리가 가진 것들을 기꺼이 나누어줄 수 있는 평안함을 가질 것이다. 결국 물질을 축적하는 끝에는 물질을 더 이상 축적할 수 없다는 결론으로 치닫기 때문이다.
삶이 힘들 때마다 책상 위에 이 문구를 떠올린다. “아프리카에 와서 몇 달만 살아보라.” 물론 아프리카도 사람이 사는 곳이고 그 안에도 사랑과 행복이 있지만, 아프리카에서는 맑은 물을 먹지 못해 죽는 사람들이 많다고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맑은 물을 먹을 수 있고, 숨 쉴 수 있는 우리나라가 얼마나 행복한 것인가.
행복은 고정된 기준이 아니다. 100년 아니 그 보다 짧은 50년, 10년의 삶이라도 우리가 자연의 일부임을 인식할 때 행복에 가까워질 수 있다. 자연은 시들고 또한 재생한다. 그것은 언제나 반짝이는 다이아도 아니고 변하지 않는 금도 아닌, 으스러지는 그 무엇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