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조금 넘게 회사를 다녀서 다행히 퇴직금이 나왔다. 회사 취업 규칙에 퇴사 월에 하루만 근무를 해도 그 달의 월급이 전부 나오는 것으로 되어 있어서 나는 최대한 월초에 퇴사를 하려고 했지만 인사팀에 불려 가서 협박을 당해서 그러지 못했다. 이 퇴직금을 다 써버리기 전에 치의학대학원에 입학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우선 학원을 등록했다.
그리고 학원과 가까운 고시원을 얻었다. 강남에 있었던 학원비는 꽤나 비쌌다. 치대 입학시험이 언어, 생물, 일반화학, 유기화학, 물리 이렇게 5과목이었는데 한 과목에 20만 원 정도였던 것 같다. 그리고 하루 세끼 밥을 모두 강남에서 사 먹으려니 식비도 많이 들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시간이 없으니 돈으로 해결하자는 생각으로 유명하다는 학원을 끊고 책을 왕창 샀다. 한 달에 100만 원 넘는 돈이 생활비로 빠져나갔다.
회사를 그만둔 게 2월이었고 그 해 8월에 시험이 있었다. 6~7개월 정도의 시간밖에 없었다. 원래 공부란 마라톤 하듯이 꾸준히 해야 했지만 이때만큼은 나도 전력질주를 선택했다. 6개월이면 버닝을 해도 내가 타 죽을 것 같지 않았다.
아침 6시에 일어나 아침을 먹고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밥때가 되면 점심, 저녁 먹고 공부하다가 12시쯤 잤다. 대강 아침 먹고 5시간, 점심 먹고 5시간, 저녁 먹고 5시간씩 공부를 이어갔다. 하루 총 15시간을 공부하는 것이다.
하루 24시간 중에 15시간을 책상에 앉아 있었고 나머지 9시간을 쪼개서 밥 먹고 씻고 잠을 잤다.
밥을 먹거나 씻을 때도 머릿속으로는 아까 봤던 내용을 다시 되뇌었고
잠을 잘 때는 누워서 잠들기 전까지의 시간이 아까워서 눈이 감기기 직전까지 책을 보다가 잤다.
늘 행색은 추리닝에 운동화였고 화장도 당연히 안 했다. 머리는 질끈 묶어 잔머리가 내려오지 않도록 똑딱 핀으로 고정했다.
지금 생각해도 참 무식하게 기계처럼 공부했다.
그러나 한 달 정도 지나자 불안감이 밀려왔다. 이렇게나 열심히 하는데 너무 불안했다.
스스로 잘하고 있다고 다독여주었지만 이 시험을 너무 쉽게 본 것은 아닌지 걱정스러웠다.
과연 합격할 수 있을지.
내 무의식이 지금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시그널을 계속 보냈다.
남들은 재수해서 삼수해서 가는 치대를 이렇게 쉽게 간다고? 6개월 공부해서 성적이 나온다고?
치과의사 이렇게 막 아무나 된다고?
불안해서 더 공부했고 그리고 더 열심히 지쳐갔다.
그리고 시험이 한 달 정도 남았을 때 나는 결국 타버려 재가 되었다. 시험 기간 전체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마지막 한 달간의 컨디션 조절 따윈 없었다. 그냥 병자처럼 겨우 버티다가 시험장에 들어갔다.
성적은 곧 나왔고 예상대로 형편없었다.
초라한 성적표지만 그래도 그것을 가지고 전국 6개 치의학대학원의 문을 두드렸다.
저기 어딘가 아주아주 운이 좋다면 나에게 입학 허가를 해줄 치의학 대학원이 있을 것만 같은 그런 환상이 필요한 저조한 성적이었다. 원서비도 만만치 않아서 하나의 치의학대학원에 20만 원가량 들었다. 그래서 총 6개 학교를 지원하니 100만 원가량이 필요했다. 그 100만 원이 없었다. 나의 퇴직금은 강남역에서 6개월 만에 사라졌다. 당시에 남동생이 100만 원을 빌려주면서 한 곳이라도 합격하면 갚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리고 그해 12월쯤 치의학대학원 간 서로 비슷한 시기에 최종 발표가 났고 나는 6번의 불합격의 확인해야 했다. 결론적으로 동생의 100만 원도 갚아야 했다.
2008년의 한 해가 저물며 나는 나에게 몹시 미안했다.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해서 미안했다. 최선을 다했지만 비참하고 초라했다.
자신감이란 어떤 것이었고 어디로 갔을까.
이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