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나를 버티게 해 준사람들

by 라디오


시험공부를 하다 보니 마음이 작아진 것도 같았다.

별것 아닌 걸로 신경 쓰이고 화가 났다.

그리고 사람들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이 들었는데 모두에게 좋은 모습을 보이며 모두와 좋은 관계를 맺으려고 했던 것이 얼마나 무모한 일인지 깨달았다.

남들이 하는 말에 신경 쓸 필요가 없었으며 남들의 처신도 마찬가지였다.

남들이 나를 이렇게, 저렇게 생각할까 봐 신경 쓰지 말기로 다짐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나에게 중요한 사람들이 아니니까.

중요한 사람들은 지금 나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는 사람들이었다.

주변 사람들이 다시 보였다. 늘 외롭다고 생각했었는데 생각보다 내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이 공부를 하면서 많이 외로워졌다.

핸드폰으로 방해받고 싶지 않아서 시험공부를 하면서는 무음으로 설정해두었다.

그리고 걸려오는 전화를 골라서 받았고 저장되어 있던 전화번호도 많이 지웠다.
그러니 외로울 수밖에.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어도 인간은 외로울 수 있다.

외롭지 않은 사람은 주변에 소통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는 사람이다.

그 사람은 외롭지 않다.

나는 인간관계에 조금 소극적인 면이 있다.
예전에 나는 솔직하고 어찌 보면 무례한 편이어서 다른 사람에게 가지는 내 불만을 편하게 얘기했다.
그리고 그것을 고치도록 요구하거나 사과를 바랐다.

너에게 이런 것이 서운했다.

그러면 내가 기대한 대답은 서운하게 해서 미안해. 서운해할 줄 몰랐어. 뭐 이런 종류인데

왜 이런 걸로 서운해하니? 나는 이런 이유로 그랬을 뿐이야. 이런 대답이 돌아오면 마음이 아팠다.

그런 경험이 몇 번 쌓이자 나는 더 이상 다른 사람에게 내 서운한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았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몇 번 더 서운하면 그냥 그 인간관계를 정리해 버렸다.

그 사람은 네가 서운한지도 몰랐을 건데, 이렇게 정리를 해 버린다고?

그렇다.

그래서 주변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내가 이 시험을 준비하며 다 버리고 내 손에 쥔 거 몇 개 중 하나는 자유였다.

보고 싶은 사람보고, 안 보고 싶은 사람 안 볼 자유.

딸랑딸랑 사바사바 안 해도 되는 자유.


힘들 때 만난 사람들은 금방 친해진다.

그 힘든 것들을 공유할 수 있으니까. 서로 응원하고 위로하는 마음까지 있으면 너무 고맙다.

그렇지만 그 힘든 시기라는 게 보통 기간이 정해져 있어서 그 기간이 끝나면 다시 볼일이 없어진다.

특히 누군가는 합격하고 누군가는 불합격했다면 더욱 그렇다.

그래서 지금 친하지만 뭔가 허탈하고 허무한 마음이 든다.


가장 나에게 정신적인 안정감을 준 사람은 단연코 엄마였다.

어린아이가 자라서 소위 성공한 어른이 되었을 때 그 옆에는 그 아이를 무조건적으로 믿어주는 최소 한 명의 어른이 있다고 했다.

나에게는 그런 사람이 엄마였다.


회사를 그만두고 치의학대학원 입학을 하겠다고 했을 때 엄마는 분명 좋아하셨다.

"엄마, 나 합격할 수 있을 것 같아?"

내가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물었다.

"응 우리 진이는 잘하고 열심히 하니까."

뭔가를 할 때 필요한 게 있다면 당연히 저 둘일 것이다. 잘하는 것과 열심히 하는 것.

두 가지를 갖추었다고 하니 나는 겁낼 것이 없었다. 용기와 자신감이 생겼다.

잘하고 열심히 하면 당연히 합격하지 않겠는가.

저 말은 내가 공부를 하는 내내 나에게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원서를 넣어 놓고 결과를 기다릴 때쯤에는 선덕여왕이라는 프로그램을 즐겨 봤다.

그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선덕여왕의 본명인 덕만이 나라를 위해 밤을 새우며 매진하는 모습을 보면 왠지 부끄러웠다.

기껏 국내 치대를 들어가려고 아등바등하고 있는 내 모습이 작게 느껴졌다.

덕만의 앞날도 모를 일이었지만 내 앞날도 그랬다.

난 앞으로 어떻게 될까?

내 계획대로, 내 예상대로 되던 인생은 이미 끝났다.

인생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 깨달았다.

어쩌면 이십 대의 후반이 되어서야 이것을 깨달았으니 그동안 나는 운이 매우 좋았던 것이다.


더 좋은 거 하려고 사서 고생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치과의사라면 전문직의 탄탄대로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겠지만

나는 그저 남들처럼, 멈춰진 내 인생에서 조금 앞으로 가고 싶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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